그리고 그가 30년 넘게 반복해서 읽은 단 한 권의 책
스레드와 인스타그램에서도 만나요 @theyogacurator
세기의 천재, 혁신의 아이콘, 난폭한 리더, 희대의 경영자 등 그를 수식하는 말은 많습니다.
그렇지만 제게 그는 ‘요가를 평생 수련한 인물’ 입니다.
1982년 그의 우드사이드 저택에 앉아있는 잡스 @Diana Walker
스티브 잡스가 왠 요가냐구요?
오늘 이야기를 읽고 나면, 아마 그가 좀 다르게 보일 겁니다.
1972년 열아홉 잡스가 자유로운 학풍으로 유명한 리드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미국엔 히피 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었죠.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때라, 젊은이들이 요란한 옷을 걸치고 자유와 평화를 외치며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LSD와 같은 환각제를 통한 정신 개조를 권장하며 (약을 통해) “turn on, tune in, drop out 흥분하라, 주파수를 맞춰라, 빠져 나오라” 라는 수위 높은 구호가 횡행하는 가운데, 기존 체제에 무조건 반항적인 것이 쿨한 것으로 여겨지던 시대였습니다.
스티브 잡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반항심으로 가득찬 고등학생 잡스는 한 학년 아래의 여자친구와 뜬금없이 산 속 오두막에 들어가 동거를 하는가 하면, 대학교에 가는 날 고향 샌프란시스코에서 포틀랜드까지 차로 열 시간 넘게 운전해 데려다 준 부모님께 인사도 하지 않고 교문으로 쌩 들어가버리죠.
고아처럼 보이고 싶었던 거예요. 기차로 전국을 부랑자처럼 떠돌다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막 도착한 고아, 뿌리도 연고도 배경도 없는 고아이고 싶었거든요. 『스티브 잡스』 p. 69
대학생이 된 잡스는 학교 근처 선불교 센터와 힌두교 사원에 자주 걸음하며 당시 히피 사이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던 동양 사상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도서관에 가서 관련 책을 탐독하는가하면 친구 집 다락에 인도 그림과 초, 향, 방석으로 꾸민 명상실도 마련했죠.
잡스는 도서관을 다니며 선에 대한 책들을 파고들었고, 좋은 책을 발견하면 (친구) 콧키에게도 읽어 보게 했다. 스즈키 순류의 『선심초심』,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어느 요가 수행자의 자서전』, 리처드 모리스 벅의 『우주 의식』, 초감 트룽파의 『마음 공부』 등이 그것이다. 『스티브 잡스』 p. 70
잘 알려져있듯 대학 과정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 잡스는 대학교를 중퇴합니다. 이후 부모님 댁으로 돌아와 한 게임회사에서 시급 5달러짜리 야간직원으로 일하며 돈을 모았어요.
구루 마하라즈 지*를 만나러 인도로 가기 위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하라즈지 Maharaj Ji: 힌두교의 구루. 실명은 님 카롤리 바바 Neem Karoli Baba. 마하라즈 지는 사랑과 헌신이라는 박티요가적 메세지를 전하며 1960년대 히피들에게 구루로 통하는 인물이었다. 잡스는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침실에 마하라즈 지와 아인슈타인의 액자 사진을 자신의 침실에 두고 매일 보았다. 지는 이름 뒤에 붙어 존경하는 스승을 일컫는다.
잡스는 드디어 1974년에 유럽을 거쳐 인도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마하라즈 지가 사는 히말라야 기슭의 마을에 도착하고서야 그가 이미 1년 전에 소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대신, 잡스는 아주 특별한 책을 다시 한 번 만나게 됩니다.
(인도에서) 잡스는 바닥에 매트리스가 놓인 방을 하나 빌렸는데, 집주인 가족들이 채식 식사를 제공함으로써 그의 회복을 도와주었다. “전에 묵었던 여행객이 『어느 요가 수행자의 자서전』 영어판을 한 권 남기고 갔어요. 달리 할 일이 없어서 그 책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어요.『스티브 잡스』 p. 90
아이패드에 저장된 단 한 권의 책
잡스가 미국과 인도에서 반복해서 읽은 이 책 『어느 요가 수행자의 자서전』은 지금으로부터 약 80년 전 출간되었습니다. 한국어로는 <요가난다, 영혼의 자서전> 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있죠.
제목 그대로 요가난다라는 1893년생 인도의 수도승이 쓴 자전적인 글입니다. 8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지만 신비로운 문체로 쓰인 요가난다의 글은 지금 읽어도 매혹적인데요.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좀 의아해지기도 합니다. 힌두교의 성자인 크리슈나, 예수 그리스도, 부처, 알라가 함께 등장하거든요. 인도 고대문헌과 성경 구절이 교차하며 인용되기도 하구요.
요가난다는 종교를 초월한 진리의 보편성을 설파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과학을 배척하는 일부 종교인들과 달리, 신이 인류의 진보를 돕기 위해 과학자들에게 되려 힌트를 주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죠. 이런 그의 융합적인 사상은 서양에서도 쉽게 받아들여졌고 비틀즈 멤버 조지 해리슨, 엘비스 프레슬리 등 내로라 하는 유명인사들이 그를 찾아오게 했습니다.
인간이 깨우친 단계에 따라 신은 적절한 시간과 장소에서 자신이 이루어 놓은 창조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도록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준다. 현대에 이루어진 수많은 발견 덕분에 우리는 이제 우주를 한 가지 힘, 곧 신성한 지혜가 인도하는 빛의 다양한 표현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요가난다, 영혼의 자서전』 p. 443
동양사상과 서양의 기술을 깊게 탐구하던 잡스의 귀에 요가난다의 가르침은 아름다운 음악처럼 들렸을 겁니다. 그렇게 『어느 요가 수행자의 자서전』 은 잡스의 아이패드에 저장된 단 한 권의 책이 됩니다.
요가난다는 크리야 요가* 수련을 통해, 개개인이 보다 고차원적인 “인생의 목적”을 깨닫고 자신을 실현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요가는 신체를 우선적으로 수련하는 '바디 요가'와 정신적 수련을 우선시하는 '마인드 요가'를 모두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몸을 움직이는 요가는 전자, 여기서 말하는 크리야 요가는 후자에 속한다.
잡스가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에서 “아직 그 일을 못 찾았다면 계속 찾아보고, 안주하지 마세요 Keep Looking, Don't Settle.” 라고 힘주어 말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죠.
크리야 요가는 라자 요가, 또는 왕의 요가라고도 불리기도 하는데요. 주의를 한 데 집중하거나 떠오르는 생각들을 바라보는 명상법과는 달리, 마음의 활동들이 점차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명상법입니다. 잡스는 본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마음이 불안하고 산란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잠재우려 애쓰면 더욱더 산란해질 뿐이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마음속 불안의 파도는 점차 잦아들고, 그러면 보다 미묘한 무언가를 감지할 수 있는 여백이 생겨납니다. 바로 이때 우리의 직관이 깨어나기 시작하고 세상을 좀 더 명료하게 바라보며 현재에 보다 충실하게 됩니다.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고 현재의 순간이 한없이 확장되는 게 느껴집니다. 또 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는 밝은 눈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수양이며, 지속적으로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 p. 93
잡스의 인도행 그리고 동양사상 탐닉은 20대의 치기어린 행동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목소리를 일찍이 분명하게 듣고, 죽을 때까지 그것을 실현하고 지속하려 애썼죠. 특히 잡스는 인도에서 배운 '직관'의 힘을 생애 전반에 걸쳐 강조했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지력 (intellect)을 사용하지 않지요. 그 대신 그들은 직관력 (intuition) 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직관력은 세계 어느 곳의 사람들보다 훨씬 수준이 높습니다. 제가 보기에 직관에는 대단히 강력한 힘이 있으며 지력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이 깨달음은 제가 일하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티브 잡스』 p. 93
잡스는 돈에 대해서도 크게 탐닉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1997년부터 2011년까지 연봉을 1달러만 받은 일화는 유명하죠. 보유하고 있던 애플 주식 500만 주도 팔지 않았구요. 물론 그도 한 인간이었기에 말을 바꾸기도 하고, 종종 이중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으나 물질적 소유가 삶을 풍성하게 하기보다는 방해한다고 믿고 가족과 소탈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어떤 '초월성'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점 때문이었을지도 몰라요.
잡스는 바닥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요가 자세를 보여줄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는 선각자 같은 그 아우라를 갖고 있었어요. 미성숙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성격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요. 잡스는 자기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고 있었고, 그 꿈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찾아 다녔습니다."노먼 시프
2011년 가을, 잡스는 그를 몇 년 간 괴롭히던 희귀병으로 인해 56세에 사망합니다.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한 장례식 이후,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추도식이 열렸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마지막 길마저도 그다웠다고 말합니다. 그가 생전 사랑하던 음악과 유머가 추도사와 잘 섞여 있었거든요.
눈물과 웃음이 뒤섞인 추도식을 마치고 300여 명의 조문객들은 나가는 길에 뜻밖의 상자를 건네 받게 됩니다. 조심스레 열어본 상자 안에는, 바로 '그 책'이 들어있었죠.
나가는 길에 갈색 상자를 하나씩 나눠 주더군요. 그 안에는 요가난다의 『어느 요가 수행자의 자서전』이 들어있었습니다. (...) 그는 마지막까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거예요. "자신을 실현할 것" 그리고 "직관을 믿을 것". 잡스를 그리고 그의 성공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랍니다. 특히 당신이 사업가라면요. 세일즈포스닷컴 CEO 마크 베니오프
요가를 수련하는 솔로프리너인 제게 <우리 사랑의 언어, 요가> 1호로
스티브잡스라는 인물보다 더 좋은 주제는 없었습니다.
오늘도 세상에 무언가를 내놓기 위해 애쓰는 여러분,
마음을 가라앉히고 본인의 직관을 믿어보세요.
놀라운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요.
스레드와 인스타그램에서도 만나요 @theyogacura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