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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오미 Mar 13. 2024

분리불안 심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엄마껌딱지

우리집에는 엄마껌딱지, 아주 왕껌딱지가 살고 있다.


산후조리원에서부터 손이 타서 엄마 품에서 내려올 줄 몰랐던 딸은, 걷기 전까지는 아주 바닥이 뜨겁기라도 한지, 등만 닿이면 울고 불고 난리가났다.


보통 돌 전후에야 온다는 낯가림도 백일 정도부터 시작되어서, 아빠에게도 절대 안기지 않았다. 오직 엄마, 엄마!!!


그렇다고 내가 또 모성애가 절절하게 넘치는 사람이냐면 그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체력이 좋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저질체력중에 저질체력이 바로 나다.


그리고 나는 왕왕왕내향인으로서,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인데, 이게 안되니 사람 미칠 것 같았다. 엄마들 산후우울증의 원인 대부분이 이것 아닐까 싶다.


이 작은 생명체는 모든 이들을 마다하고 오직 엄마 엄마 하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아닌가.


남편은 한참 지방 출장이 많을 때였고, 있다해도 아이가 가지 않았으므로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했다.(물론 남편은 집에 있을 때에는 아이 보는 것 외에는 다 했다)


나는 아이 보는게 힘든데, 남편이 아이를 봐줄 수 없으니(애가 안감!!!!) 이를 어쩐다.


결혼하고 부산에서 경기도로 이사를 와서 아는 사람도 없지, 잠깐이라도 아이를 맡길 사람이 없어서 24시간 아이랑만 붙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마치 섬(집)에 갇힌 여자같았다.


이렇게 엄마랑만 붙어 있던 아이는 24개월이 되어서야, 엄마 없이 아빠와 단 둘이 슈퍼마켓에 갔다 오는 역사를 이루었다. 나도 남편도 그날은 정말 감동의 도가니탕이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버텨가던 중 어느 날 갑자기 허리에 통증이 심하게 왔다.


병원에 물리치료를 가려해도 아이 때문에 갈 수가 있어야지.


그 때 아이가 4살, 허리 치료를 위해 급하게 가정 어린이집을 보내게 되었다, 등원 첫 날 어린이집을 다녀온 아이 양쪽 눈밑에 상처가 나서 이게 뭔가 싶었더니 손등으로 눈물을 얼마나 훔쳤던지 눈 밑에 상처가 난것이었다.


교회에서도 4살이 되면 유아예배를 드릴 수 있다. 보통 아기들은 엄마나 아빠와 함께, 예배실 한켠에 유리로 된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거나, 아예 다른 공간에서 화상으로 예배를 드린다.


4살이 되면 드디어 아이와 떨어져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기쁜 날인가!


그러나 우리 딸이 보통 딸인가!!!! 당연히 울고 불고 생난리가 났다.


걱정스런 마음으로 예배 마치고 내려가니 딸을 따로 봐주시던 권사님이 계셨고, 빵을 줬더니 빵을 먹으면서 엉엉 울더라고 말씀해주셨다. 지금도 그 권사님은 고등학생인 딸을 보며 니가 그때 그랬다고 웃으신다.


유아 여름성경학교를 하면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있다가, 아이들만 따로 활동을 하고 엄마들끼리 따로 교육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다~ 아이들 반으로 가는데 우리 애만 끝까지 안가고 내 곁에 남아 엄마 교육 시간에 함께 있었다.


'넌 대체 왜이럴까...왜 이렇게까지 할까...' 참 여러모로 어려웠다.


아이가 5살쯤 부산 외할머니댁에 가서 며칠 머물면서 뭔가가 달라졌다.


골목에 있는 집이라 여기 저기 다른 할머니 댁에 놀러 다니는 일상을 보내게 된 것이다. 집에서 엄마랑만 놀던 아이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엄마랑 몇 시간 떨어져 있기도 하며, 몇 주를 보냈다.


부산에서 내가 잠시 외출 할 때에는 손흔들고 인사하고, 내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이제 엄마한테 가보까?" 를 계속했다고 한다.


부산에서 몇 주를 보내고 경기도 집으로 다시 올라 왔을 때, 교회 선교원(유치원) 선생님께서 아이가 뭔가 많이 활발해진게 느껴졌다고 하셨다.


기질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환경적인 것도 참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어쩌랴.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 이런것을.



둘이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지고 볶고 그 시간을 흘러 보내고 초등학생이 되었지만, 잠시라도 집에 혼자 있는 건 안되는 일이었다.(이건 겁많은 이유도 겹친다)


초1때 다른 엄마들과 점심먹고 커피를 마시다가도 아이 올 시간이 되면 째깍 집으로 달려가야 했다. 잠시라도 집에 혼자 못있는 아이는 정말 우리아이 밖에 없었다.-_-


그러다 아이가 4학년때 내가 갑자기 영어학원 일을 다시 나가게 되었다. 아이는 집에 잠깐은 혼자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끝에 강아지를 입양했다.

안녕, 라떼 :)


엄마 대신 강아지와 함께 엄마 없는 시간을 이기는 훈련을 했다.


문제는 둘이 그렇게 있을 수 있게 되긴 했는데...내 아이 엄마껌딱지 좀 떼라고 강아지를 데려왔더니, 강아지도 껌딱지였다. 화장실까지 졸졸 따라다녔다. 예전에 애 안고 화장실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혹떼려다 혹붙였다.



아이가 없을 때 외출했던 것 말고, 아이가 집에 아빠랑 있을때 나 혼자만 외출을 본격적으로 한건  아이 초등학교 6학년쯤 되어서였다.(남편이 내 외출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것도 한몫했다) 그전까지는 나랑 아이, 아님 가족 셋이서 맨날 붙어 있었다.


중, 고등학생이 되어서 아이는 당연히 혼자 있을 수는 있지만, 별로 그 상황을 좋아하진 않는다. 그리고 왜! 꼭! 내가 좀 멀리 외출이라도 한 날엔 꼭 애가 어디 아프냐고!!! 하아...


지금도 나는 아이를 왕껌딱지라고 부르고, 아이도 순순히 인정한다. 어릴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지금은 놀리는 재미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그리고 생색을 엄청 낸다.


이런 엄마 없다.

잘해라.



*분리불안 심한 아이로 인해 힘든 부모님들, 모두 화이팅입니다. 시간이 좀 오래..오래...걸리지만, 결국 지나는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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