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아기 고양이는 무릎냥이보다는 배냥이에 속한다.
앉아 있을 때에는 그렇게 달려와서 깨물려고 하는데 누워버리고 나면
배 위에 또는 머리맡에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어찌나 자세가 안정적인지 이때부터는 누워있는 내 몸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나는 태생이 몸에 찬기가 많은 편인데 고양이가 올라와 있는 배는 체온이 맞닿아 점점 따뜻해져 온다.
아직은 어린 고양이라서 그런지 적당한 안정감이 있는 무게감이라 딱 좋은 느낌이지만,
벌써부터 나중에 체중이 더 늘면 무겁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생각해 보면 나도 어릴 적 아빠의 품에 안겨 잠드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딱 지금 아기 고양이와 같은 시절에 말이다.
그때는 엄마의 품도, 아빠의 품도 세상에서 가장 따듯하고 큰 공간이었다.
품에 안기면 쏙 들어가는 내 작은 몸은, 그곳에서 따스함과 안정감을 느꼈었다.
이제는 비등해진 혹은 더 커져버린 몸으로 부모님을 마주하기에 평상시 안기고 싶다거나 안긴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요즘 나는 아기 고양이 덕분에 자면서 에어컨을 필수로 틀고 있다.
날씨가 더운 것도 있지만, 얌전한 얼굴로 잠을 자다가도 잠에서 깨면 놀아달라고 풀파워로 달려드는
아기 고양이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서 긴바지를 입고 전신에 이불을 꼭 덮고 자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같이 살 때에는 부모님이 내주는 집세와 관리비 덕분에 덜 아끼며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혼자 살고 난 이후부터는 내가 숨 쉬는 순간순간이 모두 돈이라는 생각이 들어,
여러 가지 면에서 스스로를 희생하는 일이 잦았다.
대표적인 예로 혼자니까 조금 더워도 뭐~ 조금 추워도 뭐~ 참자 하는 생각을 하며 에어컨과 난방 가동을 최소화했었다. 그리고 챙겨 먹는 것도 귀찮다는 이유로 대충 먹었다.
가장 소중한 나를 참 소중히 대하지 못했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아도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아무도 뭐라고 안 하니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기 고양이를 데려와서 키우면서부터 나는 아기 고양이에게 사랑을 주는 만큼 나 자신을 더 소중히 대하게 된 것 같다.
누군가는 사랑을 받아 보아야 사랑을 줄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 반대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주어 보아야 사랑을 받을 줄도 아는 것 같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낄 대상을 하나라도 가져보고 사랑을 해보아야 사랑할 줄 알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아끼고 소중히 하는 아기 고양이에게 보다 좋은 환경을 갖춰 주고, 보다 좋은 것을 먹이려고 하는 것처럼 나 자신도 비슷하게 돌보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피곤하다고 핑계를 댔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에너지도 하나도 아깝지 않게 느껴지고 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나에게 소중한 것을 챙기는 방법,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는 것 같다.
나에게 깨달음을 주는 존재인 아기 고양이는 어리지만 어쩌면 나에게 내려온 내 인생의 스승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