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확진된 정신과 의사의 뇌과학에 기반한 조언
전 국민의 5분에 1 이상이 코로나에 감염되었다고 한다. 감염되지 않은 사람이 80% 정도는 된다는 뜻이었다. 얼핏 유리해 보이는 확률 싸움에서 나는 끝내 이기지 못했다. 얼마 전 코로나 19 양성 확진을 받았다. 일상에서 벗어난 일주일의 자유를 꿈꿨지만, 일주일 동안 일상적이지 않은 전투를 치뤄야 했다. 몸살이 심했고, 고열에 시달렸다. 가볍게 지나간다거나, 무증상 감염 등은 남의 이야기였을 뿐이다. 나는 그저 먹고, 뒹굴거리고, 잠만 잤다. 나와 1살짜리 영아는 몸집 외에는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나의 퇴행 행동을 받아준 가족의 인내심 덕에 현재는 완쾌되었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환자 분들이 겪는 코로나 감염은 현재 진행형이다. “저도 갔다 왔어요.”(요즘 이렇게 표현한다)라고 하면, 걱정하면서도 이상하게(?) 반가워하는 눈치다. 동지애를 근간으로 공감을 잘 전달할 수 있으니, 병치레에서 얻은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려스러운 건, 감염성 질환을 앓고 난 뒤 우울감이 심하고 오래간다고 호소하는 분들이 꽤 있다. ‘병에 걸려 스트레스가 많았으니 당연히 더 우울하겠지’라고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감염성 질환의 증상과 통증, 격리에서 오는 고립감 등에서 오는 심리적 스트레스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감염으로 유발된 염증 자체가 우리 뇌에 직접 작용하여 우울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염증과 정신과 질환에 관한 최근 뇌과학의 발견은 괄목할만하다. 우울증 분야에서 지난 15년간 가장 많이 인용된 의학 논문 (다시 말해 학자들이 가장 많이 본 인기 논문)은 ‘사이토카인이라는 염증성 물질과 우울증의 메타분석 연구’였다 (주 1). 특히 2010년 이후 신경면역학 분야에서 새로이 밝혀진 사실들은 의대 교과서의 상당 부분 내용들을 다시 바꿔 써야 할 정도이다. 특히 면역계는 그동안 뇌와 분리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뇌혈관장벽이 뇌를 면역계에서 독립되어 있는 특별한 기관으로 보호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이런 통념을 깨뜨리는 수많은 근거들이 축적되어왔다. 특히 수백 년 동안 의대 교과에서는 해부학적으로 뇌에 림프관(면역 세포의 이동통로)이 없다고 가르쳐왔다. 사람 몸에 의학적으로 발견하지 못한 구조가 더 있을 거라 생각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2015년, 뇌를 둘러싼 막 안 쪽에 촘촘하게 수많은 림프관이 깔려 있음이 발견되었다. 또한 뇌는 미세아교세포와 같은 면역세포들이 가득한 정교한 면역 장기라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뇌는 신체의 면역계와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쉬지 않고 소통하고 있었다. 우울증이 염증반응에 의해 유발된다는 생각은 2010년대 초반만 해도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제는 우울증의 적어도 1/3 이상이 염증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특히 감염성 질환이나 자가면역 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우울증을 조심해야 한다. 코로나 19에 확진될 경우, 심한 심한 염증반응을 겪기 때문에 우울증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 감염 이후 우울한 기분이 느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환경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감염에 의한 염증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 즉, 신체적인 염증반응을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염증반응은 사실 매우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감염이라는 비상상황에 대처하여 몸이 저항하고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뇌의 첫 번째 기능은 생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몸의 에너지 대사를 최적화하는 것이다(주 2). 감염으로 염증반응이 일어나면, 우리는 ‘아플 때의 행동(sickness behavior)’를 보인다. 잘 살펴보면, 이 행동은 우울증상과 매우 유사하다. 매사 흥미가 없고, 무기력하며, 활동이 줄어들고, 혼자 있으려고 하며, 식욕이 떨어진다 (주 3). 신체의 모든 자원을 낫는데 우선적으로 투입하라고 뇌에서 지시하는 일종의 전략이다.
그러므로 푹 쉬어야 한다. 이미 쉬고 있어도 더 격렬하게 쉬어야 한다. 휴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해야 염증 반응이 줄어들면서 몸이 편안해진다. 뇌도 데프콘 같은 비상발령을 풀고 경계태세를 낮추어 안정을 찾게 된다. 그간의 보고들에 따르면, 코로나 19의 감염 후 염증반응은 상당히 오래가는 편이다. 빨리 회복하려는 욕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마찬가지로 염증반응을 줄이는 치료가 중요하다. 팍스로비드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 외에 이부프로펜같은 NSAID 계열 진통제도 항염증 치료제로써 신체적인 염증을 줄여주므로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가벼운 운동도 좋다. 기본적으로 적당한 신체활동은 염증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다만, 힘든 운동은 오히려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어 염증반응을 악화시키므로, 독이 될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한 자가격리가 끝나고 1주일이 지났을 때였다. 운동과 재충전을 목적으로 아내와 함께 평소처럼 산행을 다시 가기로 했다. 여느 때처럼 교외의 가까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평소와 달랐다. 얼마 되지 않아 몸은 쉽게 지쳤고, 즐거운 기분도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의욕이 없었다. ‘정상 정복’이라는 작은 목표도 덧없게 느껴졌다. 나의 등반 경력(사실 6개월 남짓)상 처음으로 중도하차라는 오점을 남겼다. 하지만 나의 몸이 진정 원한다면, 정신력으로 극복할 게 아니라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염증성 우울증은 일반적인 우울증과 다른 특징이 있다. 울적한 기분보다는, 무쾌감증(Anhedonia)이라는 증상이 흔히 나타난다 (주 4). 뇌에 전달되는 염증반응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세로토닌 저하라는 우울 기전과 달리 도파민이 저하되는 기전으로 많이 작용한다. 도파민은 동기부여와 행복, 학습과 보상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이다. 그래서 매사 흥미가 없고, 의욕이 떨어지는 증상이 흔하다. 브레인 포그라는 인지기능 저하도 종종 나타난다. 이는 코로나 감염 이후 진료실에서 흔히 보고하는 롱 코비드 후유증과 일치한다. 내가 산에 올랐을 때, 평소와 달리 의욕이 떨어지고, 상쾌한 기분이 잘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다. 물론 내 경험을 우울증 증상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이런 증상이 심해져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면, 감염 후유증으로 인한 우울증을 조금 더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염증으로 인한 우울증은 일반적인 우울증보다 치료가 더디고 증상이 더 심한 경우가 많다. 일반적인 SSRI 계열 항우울제로는 치료 효과가 떨어진다 (주 4). 따라서, 빠른 회복을 위해서는 전문가와 함께 자신에 맞는 적절한 치료법을 찾아야 한다. 우울증은 흔히 ‘마음의 감기’라고들 하지만, 감기처럼 쉽게 끝나지 않을뿐더러, ‘몸의 감기’로 인해 더 심하게 찾아올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은 몸을 행동을 관장하지만, 몸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뇌는 결국 몸의 일부이다. 제발 의지로 이겨내라는 말로 서로를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코로나 감염의 후유증이 심하다면, 충분히 쉬면서 염증 상태의 몸을 회복해야 한다. 무기력하고 의욕 없이 우울한 기분이 2주 이상 지속이 된다면, 우울증으로 더 긴 시간 동안 일상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기 전에 빨리 가까운 정신건강 전문가와 상의해보기를 권유한다.
나는 다음 주 한라산 백록담을 오를 예정이다. 조심스레 내 몸의 반응을 살피며 도전해보려 한다. 지금 내 마음만큼은 엄홍길 대장과 같다. 다만, 엄홍길 대장님은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으셨다는 전제 하에.
주 1) Evolution and Emerging Trends in Depression Research From 2004 to 2019: A Literature Visualization Analysis (2021)
주 2) An active inference theory of allostasis and interoception in depression (2016)
주 3) Depression as sickness behavior? A test of the host defense hypothesis in a high pathogen population (2015)
주 4) Immune targets for therapeutic development in depression: towards precision medicine (2022) Nature Reviews Drug Discov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