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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벼리 Sep 26. 2024

차 보닛 안으로 들어간 새끼 고양이

소설 [이상한 목공방 1]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제 이야기는 아이고요.^^


 봄꽃은 지고 나무마다 무성해진 푸른빛으로 반짝 거린다. 한낮 따가운 햇살에 그늘을 찾게 되는 5월이다. 해마다 봄가을이면 공방 주변은 길고양이 새끼들로 시끄럽다. 올해도 어김없이 공방 옆 창고에서 꼬물거리는 새끼 고양이들 소리가 들려온다.


 아침 출근길 공방 앞 골목으로 들어서자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려온다. 창고에서 들리는 소리는 아닌데 어디서 나는 소리지? 울음소리를 따라가 보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다. 가만히 차에다 귀를 대 보니 차 보닛 안에서 나는 소리다.

녀석은 어쩌다 차 안으로 들어간 걸까? 꺼내주면 내가 또 책임져야 할 텐데... 책임져야 할 녀석들이 집에 세 마리요 공방에 두 마리다. 밥 챙겨주는 녀석들도 한 둘이 아니다. 이제는 좀 모른 척하고 싶다.


 공방 문을 활짝 열었다. 고양이들 밥그릇에 사료를 더 채워주고 물그릇을 씻어 새 물로 갈아 주었다. 녀석들이 밤새 싸 놓은 대소변 모래를 치우고 작업실 바닥에 떨어진 톱밥을 쓸었다.

자르고 남은 나무들은 자투리 나무 상자에 가지런히 꽂아 두고 오븐렉을 만들기 위해 재단해 둔 나무들을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앞치마를 두르고 컴퓨터를 켠 다음 산뜻한 봄 느낌의 재즈를 틀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를 듣기 위해 커피 한잔 타 들고 현관 앞으로 나왔다. 나뭇잎 소리는커녕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만 여전하다. 고요한 아침의 평화는 사라지고 없다. 시선이 자꾸 고양이가 있는 차에 꽂힌다.

"아...... 진짜! 바쁜데... 또 귀찮게 됐네!"


 엄마를 잃은 새끼 고양이의 애절한 울음소리를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결국 나는 또 소리가 나는 곳으로 와 서있다.

 녀석을 어떻게 구조해야 할지 고민이다. 스스로 들어갔다면 스스로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어미를 찾고 있으니 어미 목소리로 유인하면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암컷인 꼬맹이의 울음소리로 유인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공방 문을 열리자마자 뛰어 나갔던 꼬맹이는 어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불러도 대답도 없다. 멀리 놀러 갔나 보다. 꼬맹이는 포기하고 아쉬운 대로 아직 늘어지게 자고 있는 귀티를 쓰다듬어 깨웠다.

"귀티야~~ 일어나 봐! 엄마 좀 도와주라! 어? 일어나 봐~~"

녀석은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다리를 쭈욱 뻗어 기지개를 켜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나쁜 새끼! 들은 척도 않네?"

츄르를 하나 꺼내 들고 코앞에서 살살 냄새를 풍기니 벌떡 일어나 앉는다.

"귀티! 이리 와! 츄르 먹자!"

손에 든 츄르를 확인한 녀석은 캣타워에서 가볍게 뛰어내려와 작업대 위로 올라오더니 잠 덜 깬 부스스한 얼굴로 입맛을 다시며 츄르를 기다린다.

"귀티야! 일단 잠 깨게 반만 먹자! 네가 새끼 고양이 부르는 거 도와주면 나머지 또 줄게~"

남은 츄르 반을 들고 귀티를 안고 새끼 고양이가 있는 차 앞으로 갔다. 차 안에서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자 귀티가 관심을 보이며 차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살펴봐도 고양이가 보이질 않자 귀티가 몇 번 야옹거린다.

"그래! 그래! 아이고 잘한다! 우리 똑똑한 귀티! 새끼 고양이 빨리 나오라고 얼른 좀 불러 봐!"

하지만 수컷 어른 고양이인 귀티가 야옹거리자 새끼 고양이는 엄마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단방에 알아차리고 갑자기 울음을 멈췄다. 녀석은 오히려 위협을 느꼈는지 한참 조용하다. 금세 호기심을 잃은 귀티는 남은 츄르는 잊은 채 후다닥 뛰어 공방으로 들어간다.

"엄마가 아닌 걸 알았나? 수컷이라 안되나? 아! 어쩌지? 꼬맹이 이것이 좀 도와주면 좋겠구먼!

아니! 꼬맹이는 암컷인데 왜 새끼 우는데 관심이 없어? 모성애가 부족한가? 새끼를 안 낳아 봐서 그런가?

아냐! 귀티도 저렇게 새끼한테 관심을 보이는데. 들은 척도 않는 걸 보면 꼬맹이는 확실히 모성애가 부족한 거야! 에이~ 밥만 축내는 것들. 도움도 안 되네!"


 보닛을 열어야 할 것 같았다. 차량 앞에 붙은 차주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옆 빌라에서 걸어 나온 남자는 귀찮다는 듯 심드렁 한 표정으로 차 보닛을 열었다. 남자는 한마디 말도 없이 구경만 하더니 금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쳇! 자긴 찬데 뭐 저렇게 관심이 없어?"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보닛 안을 살피며 새끼 고양이를 불렀다.

"야옹! 고양이~ 어디 있니? 야옹! 이리 나와 봐! 어디 있는 거야? 안 보이는데?"

그 모습을 보고 지나가던 동네 캣맘 A가 쪼르르 달려온다.

"어머! 사장님! 뭐 하시는 거예요?"

"새끼 고양이 소리가 분명히 여기 안에서 들리는데... 보이지도 않고 나올 생각도 않네요!"

"어머나! 새끼가 어떻게 차 안에 들어갔지?"

"자동차 밑으로 들어갔나 봐요."

겁을 잔뜩 먹고 깊숙이 숨은 녀석은 쉴 새 없이 엄마를 찾으면서도 밖으로는 얼굴 한번 내밀지 않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옆 가계 사람들까지 나와 차를 삥 둘러 서서 구경을 한다.

"새끼 고양이가 안에 들어갔어요?"

"네! 아까부터 안에서 울고 있는데 안 나와요."

"어디?? 안 보이는데?"

"깊숙이 숨었나 봐요. 얼굴도 아직 확인도 못했어요!"


옆집 슈퍼 아주머니가 뭔가를 아는 듯 갑자기 아는 척이다.

"아! 어제 그 새끼 고양이가 이리 들어갔구나!"

구경 나온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아줌마에게 향했다.

"고양이가 여기 들어가는 거 직접 보셨어요?"

"아니! 그러니까 이 고양이가 그 고양인지는 확실치는 않은데... 어제 새끼 고양이가 차 밑으로 들어가는 걸 내가 봤어!"

"조그만 새끼 고양이 같은데 왜 혼자 돌아다녔데요?"

"여기 옆집 창고에서 살던 고양이야!"

"에? 또 창고에 사는 고양이예요? 안에서 살던 새끼가 왜 또 밖으로 나왔어요?"

"그러니까! 어제 저 집 아줌마가 이사 간다고 창고 정리를 하더라고. 그 안에 있는 걸 다 끄집어내서는 이 좁은 골목에다 아주 난장판으로 늘어놓길래. 내가 한마디 하려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지!

그랬더니, 아줌마가 창고 치우다가 고양이가 보이니까 막 다 내쫓더라고! 어미랑 새끼들이 도망가느라 난리가 났지! 근데 어미가 급하니까 한 마리를 못 데리고 간 거야! 새끼 한 마리만 남아서 혼자 돌아다니더라고!

어휴! 저 집 아줌마도 참 어지간해! 그 조그만 새끼가 뭘 어쩐다고. 불쌍하지도 않나? 그냥 두면 어미가 와서 물어 갈 텐데. 그 쪼그만 새끼한테 빗자루를 막 휘두르니까. 새끼가 또 놀라가지고! 차 밑으로 기어 들어갔지!

그래서 나는 걱정돼서 요렇게 들여다봤지! 근데 아무리 봐도 안 보이는 거야! 그래서 나는 차 안으로 숨었는지는 모르고. 어디로 도망갔나? 했지."


"에이... 그 아줌마 진짜! 그냥 어미가 데려가게 놔둘 것이지. 왜 새끼를 내쫓아가지고는!"

"저 집 아줌마는 원래 고양이를 안 좋아해!"

"그러나 저러나 이거 어떻게 해요? 이 놈이 차에서 나올 생각을 않는데?"

"내버려 둬 봐! 배고프면 기어 나오겠지!"

"차가 움직이면 새끼가 위험하잖아요!"

"차 주인한테 며칠만 움직이지 말로 기다리라고 해야지 뭐!"

"에이! 아까 보니까. 차주는 되게 인정머리도 없어 보이던데!"

"그러면 어쩌냐?"

새끼 고양이 구조에 별다른 진전이 없자 모여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캣맘 A와 둘만 남았다.

"차 밑에 먹을 것을 좀 가져다 두면 어떨까요?"

"그럴까요? 배고프면 나와서 먹겠죠?"

따뜻한 물에 불린 사료와 물을 차 밑에 두고 한참을 기다려도 녀석은 빽빽 울기만 하지 나올 생각을 않는다. 캣맘 A도 가고 나도 공방으로 들어와 늦게까지 오븐렉 조립을 하다가 퇴근했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공방 앞 자동차를 살폈다. 이상하다.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질 않는다.

"밤새 어딜 갔나? 어미가 데려갔나? 어쨌든 당행이네! 에이~ 이제 내 일이나 열심히 하자!"

공방으로 들어와 앞치마를 두르고 일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모르는 할아버지가 작은 라면 박스를 들고 공방 안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오셨어요?"

할아버지는 말도 없이 가만히 서있다가 가벼워 보이는 라면박스를 아주 조심스럽게 작업대 위에 내려놓고는 무뚝뚝한 말투로 대뜸 하는 말이

"고양이 가져가요."

"네?"

"여기 박스 안에 고양이. 가져가라고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잠시 생각을 하다 고양이라는 말에 일단 박스를 열어 보았다.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박스 안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이 고양이는 뭐예요? 왜 데리고 오셨어요?"

"어제 우리 아들 차에서 잡은 고양이요!"

"네?? 아~~!!!! 이 녀석이 어제 그렇게 울던 그 녀석이에요?? 어떻게 잡으셨어요?"

"차 뚜껑 열고 잡았지! 고양이 들어갔다고 어제 전화했다면서요! 가져가요. 고양이!"

"아...... 근데 제 고양이는 아닌데요."

"그럼 왜 전화했어요?"

"새끼 고양이가 차 안에 들어갔으니까 차가 움직이면 위험하잖아요. 그러니까 구조하려고 전화한 거죠!"

"그래서 내가 꺼내 왔으니까 데려가요!"

"아......"

"그럼 나더러 어떻게 하라고? 내다 버려요?"

'이미 할아버지는 손으로 만졌을 테고... 창고는 난리가 났으니 창고에 다시 넣어 줘도 소용없을 테고... 어미가 돌아오지 않는 걸 보니 이 녀석을 포기한 게 분명한데...'

"아니에요...... 잘하셨어요. 알았어요! 제 고양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어떻게 해 볼게요."

무뚝뚝한 할아버지는 어제 그 남자의 아버지였다. 부자가 얼굴만 닮은 것이 아니라 성격까지 꼭 닮았다.


 상자 안에는 물이 담긴 일회용 플라스틱 그릇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새끼 고양이를 꺼냈으니 아침이 밝으면 공방에 데려다줄 생각으로 녀석을 상자에 넣어 두었겠지? 하지만 녀석이 밤새 울어대는 통에 '뭐라도 줘야 되나?'하고 고민했을 것이고, 새끼 고양이에게 뭘 줘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계속 울어대니 신경 쓰여서 물이라도 먹으라고 넣어 줬겠지! 무심한 듯 그릇을 조심스럽게 넣어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라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하! 무뚝뚝하기는 한데. 영 모진 사람들은 아닌가 보네!"

새끼 고양이를 보고 있자니 한숨만 나온다.

"아이고~~~ 너를 또 어쩌면 좋니? 미치겠네!"


 이동용 케이지에 배변 패드와 작은 이불을 깔아 새끼 고양이를 옮겼다. 고양이용 습식 사료를 사다가 물과 함께 넣어주고, 케이지 위에 담요를 살짝 덮어 조용한 방 한 구석에서 두었다.


 다음날 출근해서 보니 새끼 고양이는 케이지를 박박 긁으면서 꺼내달라고 울어대고, 꼬맹이와 귀티는 새끼 고양이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우는 소리가 커진 것을 보니 밥을 먹고 힘이 좀 난 모양이다. 케이지를 열고 쓰다듬으려 하자 쪼그만 녀석이 하악질이다.

"야! 쪼그만 게 성질머리 하고는! 그럼 너 혼자 있어!"

케이지를 닫고 멀리 떨어지니 또 나를 보며 야옹거린다.

"아니! 이래도 싫고, 저래도 싫으면 어쩌라는 거야? 그만 좀 야옹거려. 이 땅꼬마 새끼야! 너네 엄마는 너 두고 도망간 지 오래야! 조용히 좀 해! 신경 쓰여서 어떻게 일을 하니?"

"야옹! 야옹! 야옹! 야옹!......"

"아이고~~ 미치겠네! 바빠 죽겠는데... 신경 쓰여서 작업은 또 어떻게 하냐?

아~~ 저놈에 옆집 창고 진짜! 내가 못살겠네!"


 어제 함께 남아 있던 캣맘 A가 다시 공방으로 찾아왔다.

"사장님! 새끼고양이는 어떻게 됐어요? 차에서 울음소리가 안 들리는데?"

"잡았어요!"

케이지를 들고 나와 캣맘 A에게 보여주었다. 새끼 고양이를 본 그녀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아~~~ 어떻게 해!! 너무 귀엽다!! 어머! 어머! 어머!!! 야~~~ 너 왜 이렇게 귀엽게 생겼니???"

"저번에도 옆집 창고에서 다리 똑 부러진 새끼 고양이를 구조한 적이 있는데요. 베니라고. 그 녀석은 지금 저희 집에 살고 있거든요. 아마 그 녀석 엄마가 또 새끼를 낳은 것 같아요."

"아니! 그럼 베니랑 형제인가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

"어머나! 형제를 또 구한 거예요? 이야~ 이게 무슨 인연이야?"

"아~~ 인연이고 나발이고! 내일까지 오븐렉 작업을 마쳐야 되는데! 또 급하게 스윙도어 만들어달라는 주문까지 들어와서 엄청 바쁜데! 아우!! 이 녀석 때문에 신경 쓰여서 작업을 할 수가 없어요. 큰일 났어요! 어쩌면 좋냐고요! 아... 미치겠네! 정말!"

"그래요? 요즘 많이 바쁘시네요? 바쁘면 돈 많이 벌고 좋죠! 바쁘신데 새끼 고양이가 와서 어쩌나? 음......"

"아침에. 어제 그 차주 되시는 분 있잖아요? 그분 아버지가 떡! 하니 두고 가시더라고요.

아니! 내 고양이도 아닌데 왜 나한테 데려오냐고! 나더러 어쩌라고!

이 동네 사람들은 왜 고양이만 보면 다 나한테 데리고 오냐고요!"

"그러면... 제가 입양처 생길 때까지만 임보(임시보호)라도 할까요?"

"에?? 진짜요?? 와우~ 그러면 저야 너무 좋죠!

아우~ 고마워요~~ 제가 너무 바빠서 지금 돌볼 여력이 없었는데. 너무 고마워요! 잘됐네요!"


 고양이를 다섯 마리나 키운다는 캣맘 A는 입양처가 생길 때까지 임보 해 주겠다며 새끼 고양이를 데려갔다. 고양이 구조 소식을 어디서 들었는지 옆 빌라에 사는 젊은 남자가 찾아와 아내를 위해 새끼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다시 연락하겠다던 남자는 며칠 연락이 없더니 입양을 포기해야겠다는 문자만 달랑 남겼다. 아마도 아내와 상의 없이 입양을 결정했던 모양이다. 새로운 입양처를 알아보느라 또 한주가 흘렀다. 그 사이 임보를 자청해던 캣맘 A가 새끼 고양이와 정이 들었는지 도저히 다른 집으로 보낼 자신이 없다며 입양을 결정했다. 녀석은 캣맘 A 집에서 다섯 마리의 형님들과 함께 치유라는 이름으로 살게 되었다.




 동네 사는 캣맘 B가 공방으로 찾아와 빈 아파트에 고양이 가족이 사는데 같이 가자며 재촉이다. 동네 사람들이 떠나도 캣맘들은 고양이 걱정에 이사를 미루다 보니 심심하면 공방으로 찾아온다.

"자기야! 빨리 와봐! 내가 보니까 새끼 고양이가 좀 아파 보여! 어미가 같이 있기는 하는데. 새끼 한 마리가 꼼짝도 안 해! 길고양이 밥은 내가 많이 줘봤지만 병 같은 거는 잘 모르거든. 그러니까 자기가 좀 가서 봐 줘!"

"어미가 같이 있으면 그냥 두셔도 될 텐데요!"

"아냐! 어미도 새끼 아프니까 도와 달라고 나를 이렇게 불쌍하게 쳐다보더라고! 가까이 가도 새끼 옆에서 꼼짝도 안 해!"

"근데 왜 하필이면 저를 부르시냐고요!"

"아이~ 내가 혼자 어떻게 해! 같이 좀 가자! 응? 빨리 와~~"

이미 끌려가고 있으면서도 나는 계속 투덜대고 그녀는 나를 끌고 가고 있으면서도 미안했던지 계속 설명을 한다.


 공방 근처 오래된 아파트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사를 가고 몇 집 남지 않았다. 사람도 차도 없이 아파트는 휑하기만 하다. 1층 반지하 창고 앞 작은 공간에 널따란 스티로폼 위로 새끼 고양이 세 마리와 어미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녀석들은 우리가 다가가도 피하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어? 이 녀석들 뭐지? 치유랑 닮았는데?! 치유 형제들인가? 오... 그러고 보니 너! 베니 엄마 맞네!"

베니 어미는 해마다 창고에 새끼를 낳았는데 이번에 쫓겨나는 바람에 급하게 이곳에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야! 베니 엄마! 너! 잘 만났다. 내가 너한테 할 말이 좀 많은데?

너는 좀!! 어? 네 새끼들 좀. 잘 챙길 수 없니?

왜 자꾸 새끼를 흘리고 다녀? 어? 왜 자꾸 새끼를 흘리고 다녀서 나한테 책임지게 만드는 거야?"

"뭐야? 또 무슨 인연이 그렇게 복잡해?"

"그러니까요!"

"에이! 자기야 어미랑 독대는 나중에 하고! 잘 봐봐! 저 조그만 새끼 좀 보라고!

눈도 못 뜨고 꼼짝도 못 하고 며칠째 저러고 있다니깐!"

가까이 다가가자 베니 어미는 경계를 하면서도 새끼 곁을 떠나지 못하고 근처에 주저앉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다새끼 두 마리는 구석으로 숨는가 싶더니 이내 어미 곁으로 나와 장난을 치며 논다. 한 녀석은 눈곱이 심해 눈도 뜨지도 못하고 쪼그려 앉아 쥐 죽은 듯 꼼짝도 않는다.

어미의 눈빛이 왠지 처량하다. 정말 도와달라는 걸까? 이대로 두면 새끼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은 뻔하다.

하는 수 없이 새끼 고양이를 손으로 잡아 들었다. 힘없고 가벼운 녀석은 반항도 제대로 못하고 작은 소리로 겨우 한 두 번 야옹거릴 뿐이다.

"아우~ 너를 또 어쩌면 좋니?"

"병원에 데려가야 하나? 상태가 심각한 건가?"

"어린 새끼라 이대로 두면 죽을 거예요. 밥도 못 먹는 것 같은데?"

"저거 봐! 어미는 자기가 어떻게 못하니까 도와달라고 불쌍한 표정으로 앉아서 지켜보고만 있잖아!"

"와! 되게 감성적이시네요?"

"내가? 하하하! 그거 칭찬이야?"

"글쎄요. 알아서 생각하세요.

야! 너는 병원부터 가자! 아이고! 내 팔자야!"


 녀석은 병원에서 허피스 진단을 받았다. 눈만 못 뜨는 것이 아니었다. 밥도 제대 먹지 못해 영양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약을 일주일 정도만 먹어도 좋아질 거라고 했다. 어미가 사람을 경계하지 않으니 다시 돌려보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일주일만 치료하고 녀석을 어미에게 다시 돌려보내기로 했다.


 금세 돌려보낼 녀석이다. 정을 주지 않기로 했다. 첫날에는 밥도 먹지 못하더니 허피스 약을 먹고 상태가 좋아지자 배가 고팠는지 베니 구조했을 때처럼 왕왕 소리를 내며 밥을 먹는다. 새끼를 계속 혼자 둘 수 없어 집으로 데려와 목욕을 시키고 곁에서 잠을 재웠다. 씻기고, 먹이고, 같이 잠을 자다 보니 귀여운 꼬물이에게 나도 모르게 자꾸 마음이 간다. 아! 이런... 어쩌면 좋지? 녀석은 어미가 없으니 내게 붙어서 떨어지질 않는다. 녀석의 애교에 마음이 또 사르르 녹는다. 정 주지 않기로 해 놓고서 나는 또 녀석에게 나무라는 이름까지 지어 주었다.


 베키와 베니는 새끼고양이가 무섭다고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근처만 맴돈다. 엣지는 나무의 보디가드를 자청하고 안 그래도 소심한 형님 고양이들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나무는 그런 엣지가 좋은지 졸졸 따라다니다 엣지 집에서 잠도 잔다.


 어린 새끼 고양이는 손이 많이 간다. 케이지에 데리고 다니면서 옆에 두고 살피며 작업을 해야 한다. 베니 어미와 남은 형제들에게도 밥을 챙겨주기로 했다.

"이거 보세요~ 베니 어머니? 너 이뻐서 밥 챙겨주는 거 아닙니다!

베니 형제들이라서 챙겨주는 거니까! 새끼들 독립할 때까지만 밥 챙겨 드립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신세 지시고! 애들 또 흘리고 다니지 마시고!

어디 가지 마시고! 여기서 잘 키우시라고!!!

나중에 급식소 데리고 와서 먹든가 말든가! 그건 네가 알아서 하시고!

나는 새끼들 클 때까지만 챙겨 줄 거니까! 이번에는 새끼들 버리지 말고 끝까지 책임지고 키워라! 알겠니??

또 새끼 버리고 다니면 내가 너 꼭 잡아서 중성화 수술 시켜 버린다!

아이고~ 남에 속도 모르고 맛있게 잘도 처먹네!"


 나무는 며칠 동안 나와 함께 출퇴근을 하고, 손님을 맞이하고, 수강생과 수업을 했다. 녀석은 누가 있건 없건 책상 위에서 개방정을 떨며 뛰어논다. 누가 베니 형제 아니랄까 봐 벌써부터 활동량이 어마어마하다.


 20대 아가씨 수강생이 첫날부터 나무의 매력에 푹 빠져 수업은 뒷전이고 나무랑 같이 노느라 정신이 없다. 아가씨 수강생은 나무와 놀면서 내내 고민을 했나 보다. 수업이 끝날 무렵 자기가 나무를 데려가도 되겠느냐는 말을 꺼낸다. 꼭 데리러 올 테니까 아무에게도 보내지 말고 일주일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이왕 손을 탔으니 재개발로 거취가 불안해진 어미에게 보내는 것보다 누군가 입양해 준다면 차라리 잘 된 일이다. 걱정 덜어주니 나야 고맙지! 그깟 일주일 기다리는 것이 뭐 대수겠는가?


 일주일 뒤 아가씨 수강생은 공방에 들어서자마자 나무부터 찼는다. 고양이를 한 번도 키워 본 적 없는 아가씨 수강생은 나무를 데려가기 위해 책을 사서 공부를 하고 일주일 동안 고양이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했다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녀는 그날 나무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2주 동안 품에 안겨 있던 녀석에게 나는 또 정들고 말았다. 나무를 보낸 날 밤 그동안 찍어 놓은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


 며칠 뒤 아가씨 수강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잘 적응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뿌듯하고 기뻤다. 녀석을 무사히 입양시킨 것에 안도했다. 그런데 괜히 씁쓸하다. 그렇게 나만 따르던 녀석이 나 없이도 잘 지낸다니... 괜히 배신감이 들고 서운하다. 하지만 서운함은 속으로 삭여야지 어쩔 수 없다. 내가 다 키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나무 사진을 보면서 나는 또 괜히 눈물바람이다.


그래. 어미도 잊고, 형제도 잊고, 나도 잊어라!

그리고 그 집에서 예쁨 받으면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길 바란다.



작가의 말---

저도 고양이를 키우기 전에는 잠들기 전 아깽이 사진을 감상하며 하루를 마치고는 했었습니다.

지금은 말랑한 뱃살 늘어진 냥이가 제 옆에서 잠드니 아깽이 사진을 끊은 지 오래입니다.^^
최대한 빨리 자야 합니다. 해 뜨기도 전에 녀석은 배 고프다며 깨울 거니까요 ㅠㅠ

아깽이는 정말 사랑스럽고 예쁘지만 부담스러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초보 집사들은 특히 키우기 쉽지 않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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