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상한 목공방 1]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제 이야기는 아이고요.^^
신축 빌라를 분양받았다. 목공방까지는 차로 5분 거리다. 구 빌라는 천천히 팔기로 하고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분양 날짜에 맞춰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삿날 아침 은행에서 보내준 대출금으로 분양 사무소에 잔금을 치르고, 법무사를 통해 세금을 처리하고 수수료를 지급했다. 돈 달라는 곳은 왜 이렇게 많은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사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던가? 막상 이삿짐 싸는 것은 신경도 쓰지 못했다. 꼼꼼하고 친절한 이삿짐센터 사람들은 먹다 남은 과자까지도 고이 싸서 옮겨다 놓았다. 소파와 식탁을 미리 버려 짐이 좀 줄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11년 사는 동안 구석구석 쌓아 둔 물건들이 꽤나 많았던 모양이다. 또 버려야 할 물건들이 산더미다.
도시가스, 에어컨, TV 케이블방송 설치 기사까지. 종일 사람들로 번잡스럽다. 짐을 직접 옮긴 것도 아닌데 이삿날은 왜 이리 피곤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이 모두 가고 남편과 종일 차에 갇혀 있던 개와 고양이들을 집에 풀어놓았다. 이제 녀석들은 새집 탐색에 분주하다.
거실 한가운데에 시야가 탁 트인 커다란 테라스가 있다. 이 집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집안이 조용해지자 이제서 거실 밖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창문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붉은빛이 거실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홀린 듯 테라스로 나가 저녁노을을 감상했다. 이런 것이 소소한 행복일까? 테라스를 어떻게 꾸밀지 고민하는 일도 즐겁다. 천정에는 햇빛과 비를 막아줄 접이식 어닝을 설치하고, 바닥에는 조립식 우드데크를 깔고, 크고 작은 화분들도 나란히 두어야지! 바람을 맞으며 커피나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작은 2인용 테이블과 의자도 한쪽에 두어야지! 개와 고양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안전 가림막도 설치해야겠다! 예쁘게 꾸며질 테라스를 상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연식이 오래된 옛집을 파는 일이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터무니없이 값을 깎으려고만 했다. 깨끗하게 수리한 다음 수리비만큼 집값을 올리기로 했다. 때 마침 딱 좋은 지인 찬스도 있지 않은가? 공방 위층 도배사장에게 도배를 부탁했다. 도배사장은 그동안 마신 커피 값이라며 비용을 깎아 주었고 아는 수리 업체까지 소개해 주어 옛집의 환골탈태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깨끗해진 옛집은 금세 팔렸다.
목공방 운영으로 모은 돈이 새 집 사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사람들은 목공 해서 밥이나 벌어먹고 살겠느냐며 걱정을 했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밥 값 좀 벌었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밥 값 아끼라던 남편의 구박도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당당하게 한솥 도시락 베스트 메뉴 매화도시락을 사다가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보냈다.
"오늘 점심이야! 나는 이제부터 한솥 베스트 메뉴! 제~~ 일 비싼 매화도시락을 먹을 거야!
네가 밥 값 아끼라고 구박했던 거 똑똑히 기억하거든? 그때. 내가 반드시 목공방에서 번 돈으로 매화도시락 사 먹을 거라고 이를 갈았지! 이제는 내가 매화도시락을 먹든. 해바라기 도시락을 먹든 상관 마셔!
덤으로 사이드 메뉴 김치찌개까지 사 왔지롱! 음하하하하!!!! 약 오르지롱?"
"그래 좋겠다. 돈 잘 버는 마누라~ 맛있게 드셔! 주말에는 나도 사줄 거지?"
"어림없는 소리! 너는 딱!! 5,000원짜리 치킨마요나 먹어!!!"
"힝...ㅜㅜ 나도 사주세용~"
이후로도 해바라기, 진달래, 개나리 도시락까지 골고루 사 먹으며 깨알같이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보냈다.
늦은 저녁. 작업을 마치고 퇴근 준비가 한창인데 분식집 사장과 웬 아가씨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공방으로 들어왔다.
"아직 퇴근 안 했네?"
"네! 이제 퇴근하려고요. 웬일이세요?"
"있잖아! 이 아가씨가 길 잃은 개 한 마리를 데려왔거든?"
"어디서요?"
"저기 사거리 입구에서 이 개가 혼자 돌아다니길래. 다 돌아다니면서 물어봤데. 그랬더니 편의점 알바가 주인을 봤데! 어떤 아가씨가 개 잃어버렸다고 막 울면서 찾았다는 데!! 근데? 연락처는 모른데! 그래서 주인을 못 찾았데!"
"그 아가씨는 바본가? 개를 찾으러 다니면서 왜 전화번호도 안 남겼데? 아니! 근데! 왜 개를 이리로 데려 오셨어요?"
"응! 있잖아... 이 아가씨는 여기 동네 사람이고. 우리 집 단골인데. 우리 가게 와서 도와 달라고 하길래."
"......"
"주인 찾을 때까지는 당장 누가 데리고 있어야 할 거 아냐? 근데 우리 집은 지금 개가 세 마리나 있어. 며느리가 두 마리를 맡기고 가서 집에 들어가면 개 세 마리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 남편은 집안이 개판이라고 난리도 아냐! 그래서 우리 집은 안 되는 상황이고. 저 아가씨는 개를 데리고 있을 형편이 못된다네? 공방사장이 어떻게 좀 해봐!"
분식집 사장은 다 들리는대도 굳이 귀에다 대고 조그맣게 말하는 시늉을 한다.
"저 아가씨는 집안 사정이 엄청 안 좋아. 딱한 아가씨야. 그래서 내가 이리 데리고 온 거야."
"사장님? 저희 집에도 개랑 고양이가 세 마리고요? 공방에도 두 마리가 있으니까 총 다섯 마리거든요?"
"그래! 아이고 미안해~ 키우라는 게 아니고. 잠깐만 데리고 있으면서 주인 좀 찾아 주라고~ 나는 식당일 하느라 바쁜데. 개 주인 찾아 줄 정신이 있겠어? 어떻게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똑똑한 자기가 좀 찾아봐!"
"왜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려서는 저한테 떠넘기려고 그러세요? 저도 요즘 일 많아서 바빠요!"
부탁을 단칼에 거절하자 분식집 사장은 당황한 눈치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가씨가 커다랗고 맑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사정을 한다.
"사장님... 어떻게 안될까요? 제가 집안 사정이 안 좋아서. 데리고 있을 수가 없어요."
"하......"
"여기저기 물어봤는데 다들 모른다고 하셔서...... 개를 다시 밖으로 내 보낼 수도 없고. 어떻게 하죠?"
"아니! 뭐 그렇다고 울 것까지는 없잖아요? 주인이 개를 찾고 있다니까. 일단 사진 찍어서 전단지 붙이고, 지역 커뮤니티 카페 같은 곳에 글을 올리면 금방 연락 오니 않을까요?"
"그래! 우리는 그런 걸 못하는데 공방사장은 배운 사람이라 잘하잖아! 나는 컴퓨터를 하나도 할 줄 몰라! 자기가 하면 주인 금방 찾을 거 같으니까 애 좀 써 봐~~"
"하......"
"알았지? 자기만 믿는다~ 개 여기다 두고 갈게?"
"아! 진짜!! 사장님~~~~"
녀석은 갈색 털을 가진 푸들이다. 미용 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몸에는 향긋한 샴푸냄새가 남아있다. 예쁨 받으면서 자란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주인이 녀석을 애타게 찾고 있겠지? 그래. 주인 찾기는 시간문제다. 얌전하고 순한 녀석이니 엣지와 싸우는 일은 없을 테고, 고양이들은 좀 놀라겠지만 집에 며칠 있는다고 큰 문제는 없겠지?
나는 결국 녀석을 임시보호하면서 주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집으로 가는 퇴근길 차 안. 품에 안긴 녀석은 세상 얌전하기만 하다. 엣지는 차만 타면 난리법석인데 엣지와는 전혀 딴판이다. 남편도 녀석을 신기한 듯 쳐다본다.
"가정교육이 잘된 애 인가 봐?"
"그러게? 되게 얌전하고 순해! 이렇게 예쁜 놈을 잃어버렸으니 주인은 얼마나 찾고 있을까?"
"야! 너네 엄마는 어디 갔니? 곱게 자란 놈이 왜 혼자 밖에 돌아다녀서는 길을 잃고 그래?"
녀석은 아직 자기 처지를 모르는 것일까? 주인을 잃으면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 보통인데 너무 조용하고 얌전한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다음날 아침 사진을 넣은 전단지를 뽑아 발견됐다는 사거리 근처와 동네 여기저기를 돌며 붙였다. 커뮤니티 카페에도 개 주인을 찾는다는 글을 올렸다.
며칠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전화도 없고 제보도 없다. 혹시 주인이 개를 찾는 글을 올리지 않았을까 싶어 찾아보았지만 이 동네에서 최근 갈색 푸들을 찾는다는 글을 올린 사람도 없다. 유기견센터에도 연락해 보았지만 갈색 추들을 찾는 전화는 없었다고 한다. 유기견 접수를 할 거냐고 묻길래 일단 더 기다려 보겠다는 대답을 하고 끊었다. 유기견센터로 가게 되면 녀석의 운명은 뻔하다. 아직 어린 녀석을 그런 곳에 보낼 수는 없었다. 며칠만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망할 놈에 분식집 사장 같으니라고. 이 동네 사람들 오지랖은 여전히 풍년이다. 그래도 그 집 떡볶이는 맛있었는데... 새로운 떡볶이집을 찾아봐야겠다.
주인을 잃은 갈색 푸들은 개와 고양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금세 활기를 되찾았다. 우리 생각과는 다르게 눈치가 빠삭했던 녀석은 주인을 잃은 슬픔과 낯선 사람들에 대한 경계와 긴장감으로 며칠 얌전한 척했던 것이다. 엣지와 베니가 가지고 놀던 파란 곰인형을 줬더니 종일 물고 다니면서 씨름을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불구불한 갈색 털로 덥인 녀석은 만화 둘리에 나오는 마이콜을 닮았다. 집에 있는 동안 녀석을 마이콜이라 부르기로 했다.
마이콜은 생후 7 개월 정도 된 수컷인데 아직 어린 티가 난다. 천방지축 뛰어다니다 놀아달라며 형님들을 귀찮게 한다. 유난스럽고 까다로워 아무에게나 곁을 주지 않는 베키는 마이콜을 피해 일주일째 베란다 생활 중이다. 가을 밤바람이 찬데 베키의 고집은 아무도 꺾을 수 없다.
마이콜이 종일 뛰어다니니 조금 컸다고 점잖아졌던 베니도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둘은 낮에 뛰고도 밤에 침대 위에서 또 뛴다. 결국 엉덩이를 한 대씩 맞아야 조용해진다.
마이콜 주인은 대체 마이콜에게 뭘 먹인 것일까? 사료나 캔은 안 먹고 사람 먹는 것만 달라고 조른다. 이틀을 안 먹고 버티길래 어쩔 수 없이 계란을 주었더니 허겁지겁 먹는다. 닭가슴살도 삶아주니 게걸스럽게 먹는다.
이런... 젠장! 식습관 안 좋은 상전이 들어왔네!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면 마이콜이 가장 먼저 뛰어와 반긴다. 흥도 많고 애교도 많은 녀석이라 금세 정이 들었다. 남편도 그런 눈치라 슬며시 물어보았다.
"자기는 네 마리중에 누가 제일 예뻐?"
"마이콜!"
"그렇지? 그런 거 같아서 물어봤어."
"그럼 자기는?"
"응. 나는... 엣지를 내보내고. 마이콜을 키우고 싶어."
"크흐흐흐 나도 그래!"
전력질주로 놀자고 덤비는 마이콜만 보면 기겁을 하던 베키도 이제 좀 익숙해졌는지 마이콜이 덤비지 못할 적당히 높은 곳으로 피해 다닌다.
가만 보니 네 마리의 성격은 모두 제각각이다. 까다롭고 예민하지만 나름 착한 엣지, 얌전하고 순하지만 새침하고 정 없는 공주 베키, 정 많고 애교 많은데 호기심까지 많은 사고뭉치 베니, 그리고 흥 많은 에너자이저 겁쟁이 마이콜까지.
마이콜은 산책을 가면 자기보다 몸집이 작은 개와 마주쳐도 도망치느라 바쁘다. 마이콜 때문에 우리는 야간 산책을 하거나 인적 드문 길을 찾아다녀야 했다.
엣지도 마이콜이 싫지 않은 눈치다. 여전히 예민하고 까다로운 녀석이지만 마이콜이 오고부터 불안증세도 덜하고 집에 사람이 없어도 울지 않는다.
천방지축 마이콜은 매일 혼이 난다. 마이콜을 혼내면 베니가 다가와 마이콜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쓱 문지르며 위로를 한다. 버럭 소리를 지르다가도 마이콜을 위로하는 베니를 보면 화가 사르르 녹는다.
그렇게 사이좋은 녀석들도 내 품은 양보할 수 없나 보다. 마이콜은 질투가 심하다. 베니가 내 품을 차지하고 있으면 못마땅한 표정으로 옆에 앉아 한참을 노려본다. 그래도 잘 때는 사이좋게 배 위에 올라와 잠든다. 묵직한 것이 둘이나 올라와 있으니 숨 쉬기도 불편하다.
마이콜의 애정표현은 가끔 과할 정도로 격해진다. 그러면 남편은 화를 낸다. 마이콜은 또 그런 남편 옆에 앉아 한참을 노려본다. 사랑스러운 녀석이지만 질투와 고집에 예사롭지 않은 카리스마까지. 보통 놈은 아니다.
병원에 데려가 건강점진을 받았다. 중성화 수술은 되어 있고 않고 잠복 고환이라고 했다.
"그러면 수술 안 해도 괜찮은 건가요?"
"수술 안 하면 나중에 종양으로 변할 수도 있어요."
뭐지? 마이콜 주인은 개를 폼으로 키웠나? 왜 미용에만 신경을 쓴 것 같지?
마이콜 주인은 끝내 찾지 못했고 녀석을 유기견센터로 보낼 수도 없었다. 결국 식구가 하나 더 늘었다.
작가의 말---
오늘은 남편 이야기입니다.
자바리~ 자바리~ 노래를 부르던 낚시광 남편이 휴일 새벽부터 낚시를 가서 드디어 자바리를 잡아왔습니다.
떠도는 말로는 자바리는 키로에 20~30만 원이나 하는 값 비싼 생선이고, 수도권에서는 맛보기도 힘들고, 환상적인 맛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해산물은 좋아해도 생선회는 별로라서... 그래봤자 회 맛이겠죠?
그래도 남편이 그렇게 바라던 자바리를 드디어 잡아왔으니 소주 한 병에 말동무라도 해 주어야겠습니다. 아마도 자바리 낚시 경험담만 한 시간 이상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