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상한 목공방 1]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제 이야기는 아이고요.^^
이전할 공방 자리로 권리금 없는 골목의 빈 상가를 찾아보았다. 12평도 안 되어 보이는데 주인은 12평이라고 우긴다. 건축물대장을 떼어 보니 9.98평이다. 대부분 이런 식이다.
18평 빈 상가가 있다는 말에 기대 없이 따라나섰다. 지은 지 3년 된 빌라 1층 상가다. 싼 값의 오래된 건물만 봐서 그런지 튼튼하고 깨끗한 것만으로도 좋아 보였다. 초등학교 후문 앞이다. 좁은 입구에는 문구점 간판이 그대로 달려있었고 안으로 들어가니 꽤 넓다. 권리금도 없고 월세도 저렴한데 지하철역도 가깝다.
주인아주머니는 순하고 조용한 사람이다. 임대기간 내내 고생을 시켰던 전 건물주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다행이었다. 상가도 주인을 잘 만나야 한다.
내부를 둘러보는데 덩치 큰 두 남자가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긴 팔에도 목부터 팔목까지 선명하게 새겨진 문신은 가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담배를 다 피우고는 건물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부동산 사장에게 물었다.
"여기 빌라에 조폭 살아요? 방금 밖에서 담배 피우다 올라간 남자들 보셨어요?"
"아! 좀 전에 그 사람들? 조폭 아니에요! 중국 사람들인데. 착해."
"착한 거 맞아요? 중국사람들 무섭다던데? 시끄럽다고 연장 들고 쳐들어오는 거 아니에요?"
나는 순간 굵은 팔뚝에 문신을 새긴 두 남자가 쇠붙이를 휘두르며 작업실을 때려 부수는 험한 상상을 하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부동산 사장은 남에 속도 모르고 그저 착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아냐! 착한 사람들이야. 괜찮아요!"
"사장님 너무 성의 없이 대답하시는 거 아니에요? 진짜 착한 거 맞아요? 딱 보기에도 무서운 사람들처럼 생겼잖아요!"
"에이~ 사람 겉만 봐서 어떻게 알아요? 내가 여기 소개해준 사람들이에요. 덩치 큰 사람들이 문신까지 해서 보기에는 조금 무서워 보일지는 몰라도. 말하는 거 보니까 꽤 순진하고 착하더라고. 걱정 안 해도 돼요."
아까보다 조금은 성의 있는 대답에 그래도 마음이 놓였다.
"그래요?"
부동산 사장은 지난번 공방자리 소개할 때도 재개발은 2년 후에나 될 것이라 말했었다. 그의 말대로 딱 2년 후에 재개발이 되었다. 덕분에 보상도 받고 더 좋은 조건으로 이전할 수 있게 되지 않았던가? 착하다는 그의 말을 한번 믿어 보기로 했다.
상가는 여러 가지로 만족스러웠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뒤에 원룸이 붙어 있다는 것이다.
"기계 돌리면 소음이 심할 텐데. 원룸이 딱 붙어 있어서 어떻게 해요?"
"주인아주머니가 그러는데 기계는 낮에만 돌리면 문제없데요.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 밤에나 들어오니까."
원룸 쪽 벽을 보니 두께가 상당하다.
"그나마 벽은 두꺼워서 다행이긴 한데..."
"주인이 자기가 살려고 직접 지은 건물이라. 신경 써서 튼튼하게 잘 지었어요."
"그러게요. 튼튼하긴 한데. 그래도 바로 뒤에 사람이 산다니까 좀 신경이 쓰이네요?"
"정 신경 쓰이면 방음공사를 살짝 하든가?"
"에이... 그것도 다 돈인데..."
"여기는 주택가라 어쩔 수 없어요. 다 똑같지. 방음 신경 쓰이면 외지로 나가야지."
"그렇긴 하죠."
"어떻게? 계약할 거예요?"
"글쎄요... 하루만 시간을 주세요."
"마음에 들면 일단 계약금을 조금이라도 걸어야죠. 그래야 주인이 기다리겠죠?"
"10만 원만 드려도 될까요?"
"그래요. 그거라도 걸어요. 내가 주인한테 말 잘해 볼 테니까."
"알겠습니다. 내일까지 연락드릴게요."
동네 골목에서 더 들어간 외진 곳 안쪽에 위치한 자리다. 자리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월세를 아낄 수 있었고 다른 상가들보다 깨끗하고 넓다. 원룸 사이 방음공사는 필요해 보인다. 어차피 주택가에서 기계 돌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내 돈 들여 공사하는 것은 아깝지만 투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상가 주변을 더 둘러보았다. 초등학교 옆으로는 새로 지은 아파트가 보였다. 오래된 동네지만 새로 지은 건물들도 꽤 많았다. 걷다 보니 길고양이들과 자꾸 눈이 마주친다. 지나가는 고양이에게 인사를 했다.
"냐옹~~ 고양이 안녕?"
발걸음을 멈추고 자세를 낮춘 녀석은 나를 잠시 응시하는가 싶더니 이내 제 갈길을 간다.
다음날 바로 계약을 했다. 드디어 새 공방자리를 찾은 것이다.
공방 첫 오픈 때 셀프 인테리어로 힘들었었다. 다음에는 전문가를 부르겠다 굳게 다짐했건만 페인트 칠과 내부수리는 직접 해야 했다. 돈을 아끼려니 별 수 없다.
벽에 차음재와 충전재를 붙이는 공사를 하고 석고보드 공사를 했다. 전기공사와 바닥공사는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페인트 칠을 위해 석고보드 이음새에 망사테에프를 붙이고 타카 자국에 핸디코트를 발라 사포질을 했다. 일요일이었다. 남편이 섞어준 젯소를 벽에 바르니 줄줄 흘러내린다.
남편을 쏘아붙이며 말했다.
"이거 왜 이래? 비율 제대로 섞은 거 맞아? 왜 젯소가 줄줄 흘러?"
"왜?? 설명서에 있는 대로 했는데?"
"1:1로 섞었어?"
"아냐! 여기 봐봐! 물 5%만 섞으라고 쓰여 있잖아! 그대로 했어!"
"500ml의 5%면 25ml잖아! 물을 얼마나 부었는데?"
남편은 종이컵에 물을 가득 담아와서는 조금 전보다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만큼 부었는데?"
"거 봐! 많잖아! 어딜 봐서 이게 25ml야? 아... 이제 어쩔 거야? 다 줄줄 흘러내리는데?"
당당하게 큰소리치던 남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물 많이 안 넣은 것 같은데... 이상하다... 왜 흐르지?"
"아 진짜! 이 씨!!"
눈을 흘기며 남편을 째려봤다. 남편은 아이처럼 입을 삐쭉 내밀고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하지? 다시 가서 사 올까?"
"오늘 페인트 가계 문 안 열었거든요."
"그러면... 혹시. 마트에 팔지 않을까?"
"그래? 마트에 안 팔면 너는 오늘 죽는 거야?"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뭘 또 그렇게 말하냐?"
"아~ 또 일부러 타령이네! 그래! 일부러 그런 거 아닌 거는 알겠는데! 떡하니 여기 쓰여 있는데 그걸 보고도 모른다는 거. 그게 문제라고!"
"그렇긴 하지...... 쯧. 마트 갔다 올게."
풀이 죽어 마트로 향했던 남편은 한껏 밝아진 표정으로 봉지를 흔들며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참 웃을 수도 없고. 그래도 사 왔으니 남편의 기분에 맞춰 반색을 하며 물었다.
"마트에 팔아?"
나의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 남편은 눈을 크게 뜨고 과하게 웃어 보이고는 한껏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팔던데?"
"그래? 마트에서도 젯소도 파는구나! 다행이네."
젯소 작업을 마치고 나니 저녁때가 이미 지났다. 배가 고팠다.
"아이고~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네~ 이제 시작인데 큰일이다!"
"그래! 내가 마누라 잘 만나서 이게 무슨 개고생인지 모르겠다."
"그래! 고생했다! 더 고생할 거니까 고기 먹으러 가자!"
"그래? 그럼. 소주 한 잔 하는 거야?"
"으이그. 술도 못 하면서 소주 타령은?"
"고기하면 소주지~"
"콜~~"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곁들여 기분을 풀고 몸도 풀었다.
일주일 뒤 주말에 페인트 칠을 했다. 천정 페인트 칠을 두 번 했다가는 목 디스크로 몸져누울 것만 같다. 내부 공사만 또 한참 걸렸다. 안쪽에 작은 방과 화장실이 있다. 방문에 페인트를 칠하고, 손잡이를 교체했다. 벽지를 바르고, 곰팡이 가득한 화장실 세면대와 변기를 새것으로 교체했다.
화장실에는 온수가 나오고 방에는 난방이 된다. 이제 꼬맹이와 귀티도 따뜻한 방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인테리어 공사 내내 구내염에 걸린 길고양이가 공방 주변을 맴도는 것이 신경 쓰였다. 주변 사람들은 길고양이 급식도, 구조도 이제 그만두라고 말렸다. 나도 지쳤다. 길고양이 돌보는 일은 그만해야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녀석도 모른 척해야 했다. 하지만 녀석의 몰골과 불쌍한 표정을 보니 마음이 한없이 약해진다.
나더러 어쩌라고 녀석은 배고프다며 계속 야옹거린다. 어디서 얻어먹어 본 경험이 있는 모양이다. 구내염으로 제대로 먹지도 못했는지 비쩍 말라있다. 약만 줘도 금세 좋아질 텐데 챙겨주는 사람 하나 없으니 저리 고생을 하는 게지. 나는 또 녀석을 외면하지 못하고 캔을 가져다 약을 비벼 일회용 그릇에 담아 주었다. 다행히 아주 잘 먹는다. 가을이 다 가고 날은 점점 추워지는데 녀석은 공방 안으로 들어올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했지만 나는 또 녀석이 걱정돼서 공방 옆에 조그만 박스를 두고 안에 밥을 챙겨 주었다. 녀석은 부실한 박스를 집으로 삼을 모양이다. 지낼 곳도 없이 길에서 지내는 녀석을 나는 길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삿날이다. 짐은 많지 않아도 조심히 옮겨야 할 것들이 있어 포장이사를 불렀다. 귀티 친구 치즈도 데려가기로 했다. 확장이전을 하는 기쁜 날이지만 그 많은 길고양이들을 다 두고 세 마리만 데려가야 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이사 후 혹여나 고양이들이 예전 살던 동네로 찾아갈까 봐 며칠 공방에 가둬 두기로 했다.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다. 며칠을 적응시키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문을 열어 주었다. 밖으로 나온 녀석들은 다행히 멀리 가지 않고 공방 주변을 탐색하다 들어왔다. 이미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고양이들이 있으니 함부로 돌아다니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모르는 고양이가 한 마리라도 보이면 겁 많은 녀석들은 공방으로 쪼르르 도망쳐 들어와 밖의 동태를 살핀다. 녀석들의 긴장을 나는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내 곁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엄마 치마폭에 숨은 아이들을 보는 것만 같다. 묘한 따뜻함으로 충만해지고 기분 좋은 책임감이 더해진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사 온 놈이 적응하는 것은 당연한 룰이니 너희들이 적응해야지 어쩔 수 없다.
치즈가 사라졌다. 문을 열어준 첫날 나가서 들어오지 않았다. 예전 공방 자리로 가 보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캣맘들에게 수소문해 보니 녀석은 재개발 지역으로 돌아가 잘 지낸다고 했다. 역시 녀석을 데리고 있는 것은 무리였나 보다.
새로운 곳에서의 시작이다. 이 동네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솔직히 큰 기대는 없다. 하지만 괜스레 설레는 마음은 나도 어쩔 수 없다.
아이고 좋아라~~~
작가의 말---
한 주만 쉬고 2권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2권 연재 시작은 10월 31일(목)입니다.
(쉬는 동안 '이뻔소 - 에피소드'를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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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은 고양이를 따라 목공방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더 재미있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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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되면 연재 코너에서는 사라진답니다 ㅎㅎㅎ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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