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매우 바빴다. 일단 토요일에 907 기후정의행진이 강남에서 있었는데 민스니가 참여한다기에 나도 용기 내어 첫 집회 참여를 해보았다. 뙤약볕에 달궈진 아스팔트 거리에 앉아있는데 땀이 줄줄 흘렀다. 친구 따라 강남 간 나는 집회의 무대에서 발언하는 목소리를 경청했고 어떤 부분은 공감했으며 새로운 사실들도 알아가며 더위를 견뎌냈다.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고 선했다. 그 사람들 주변에 서있는 많은 깃발들은 진행자의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자신의 의지를 담은 피켓을 머리 위에 든 사람들이 길에 펼쳐져 있었다. 긴 더위를 참고 약간의 행진 후 우리는 강남역에서 모교로 향하는 빨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두 시간 가까이 이동한 우리는 진정 오랜만에 모교에 도착했다. 최소 10년 만이었다. 정문에서부터 후문까지 학교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우리가 지나온 세월처럼 서서히 노을이 졌지만 우리는 시간을 역행하듯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갔다. 본관에 수업을 들으러 갈 때마다 지났던 다리, 동아리방 때문에 본관보다 익숙한 5호관의 지하, 후문 쪽의 식당, 술집들. 민스니와 나는 올해 가장 기억에 남을 순간일 것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학교에서 추억여행을 하고 민스니가 알아뒀던 수제 맥줏집에 갔다. 이제 채식 일기에 걸맞은 이야기를 하자. 그곳은 인천 차이나타운 근처에 있는 #호랑이굴 이라는 피맥집이었다. #인천맥주 라는 수제 맥주 브랜드의 술을 파는 곳이었는데 맥주 애호가인 민스니의 픽이었다. 우리는 둘 다 채식 지향의 식사를 하기에 고기가 안 들어간 트러플폭탄피자를 시켰는데 버섯의 향과 치즈가 어우러진 환상적인 맛이었다. 거기에 수제 생맥주의 시원함은 오늘 내가 받은 자외선들을 모두 씻어내버리는 개운함까지 느끼게 해주었다. 민스니와 함께 가 아니라면 버섯피자를 고를 수가 있었을까. 살짝 느끼할 수 있는 피자와 시원한 맥주의 조합은 가히 최고였다.
짧은 하루 안에 이토록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기후행진부터 모교의 방문,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와의 술 한 잔. 이 시간을 누리기 위해 다시 강남 한복판에서 땀을 흘려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응할 수 있을 것 같다.
민스니와 호텔로 돌아가 마라엽떡에 인천맥주를 마시며 2차를 즐기고 꿀맛 같은 잠을 잤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인천의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 또 한 번의 회포를 풀었다. 아, 인생은 즐거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