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나의 우울증 탈출기(4)
둘째가 어린이집에 다니기도 전 여전히 육아 우울증에 시달리던 때였다.
어느 작가의 인터뷰 같은 기사를 읽었는데 내용은 이랬다.
이 짧은 글이 멍해있던 나의 머리를 세게 때렸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작가라, 참 폼 나고 멋있는 단어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지난 기억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책이 너무 좋아서 같은 책을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읽고 또 읽었던 기억.
머릿속에 어떤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올라, 길을 걸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늘 공상 속에 빠져 살았던 기억.
글 쓰는 것이 너무 좋아서 밤새도록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혼자만의 세상에서 행복해했던 중학생 시절의 나.
그러다 언제부턴가 책도 읽지 않고 글도 쓰지 않게 되었다.
고등학교 땐, 공부를 열심히 한 건 아니었지만, 미대입시 준비로, 대학 땐, 학과 과제에 시달리며 시간을 보냈고 남들 하는 대로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그리고 지금은 무기력과 우울증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며 살아가는 평범한 주부가 되었다.
결혼과 육아로 사라져버린 '나 자신'을 그리고 한없이 낮아진, 이제 땅으로 꺼져 보이지도 않을 내 '자존감'을 찾으려 무모한 도전을 해 보려 한다.
책을 열심히 읽은 책벌레도 아니고, 머릿속에 톡톡 튀는 상상력은커녕 어제 먹은 저녁 메뉴도 잘 기억나지 않고, 상식도 없고, 문장을 멋들어지게 만드는 재주도, 심지어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헷갈리는 나지만.
너무 뜬금없는 생각이었지만,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좋아했던 난, 되든 안 되든 간에 어쨌든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것에 마음이 설레었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서른 살의 어느 날 야구장에서 야구 경기를 보다가 시원하게 내리치는 타자의 방망이 소리를 듣고 가슴을 때리는 강한 울림을 느껴서 곧바로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어떤 일에는 분명 그 계기가 필요하다.
내가 그날 우연히 그 기사를 읽게 된 것이 꿈을 꾸게 된 그리고 이루게 된 계기가 될 수 있을까.
그 후 막상 꿈은 생겼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주변에 조언을 구하거나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도 물론 없었다.
글을 잘 쓰려면 '뭐가 되었든 많이 써보는 것이 좋다'라고 예전에 누군가에게 얼핏 들은 기억이 난다.
그래 글을 많이 써보자. 컴퓨터를 켜고 메모장을 열었다. 무작정 육아의 힘든 경험을 써 내려갔다.
단단히 긴장하고 쓴 글은 한 페이지를 쓰는 데 두세 시간이 걸렸다.
쓰고 수정하고를 반복했다. 너무 열심히 쓴 나머지 겨우 한 페이지를 쓰고 진이 다 빠져버렸다.
그리고 다음날도 또 그다음 날도 다음 편을 이어쓰지는 못했다. 낮에는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는 어린 둘째를 봐야 하기 때문에 애들이 잠든 밤 시간을 쪼개서 써야 했다.
겨우 시간을 내어 어렵게 책상에 앉은 날에도, 아직 쓰는 것이 미숙하여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비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몇 주가 흐른 후, 난 컴퓨터 앞에 앉아 기억도 가물가물한 글 들을 읽어보았다.
육아와 살림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만들고 그 일 때문에 내가 얼마나 불행한지... 누가 읽어도 힘이 죽죽 빠지는 구질구질한 넋두리만 한가득이다.
내가 즐겁고 행복하지 않으니 행복하고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후로 스스로에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책상 근처도 가지 않았다.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쓰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작가들은 집 안에 언제라도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놓는다고 한다. 늘 같은 자리에 노트북이나 종이와 펜을 준비해 놓는다. 글의 소재가 떠오를 때 바로 쓸 수 있도록... 글을 쓸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항상 준비해 놓는 것이다.
일단 노트북은 가지고 있다. 글 쓰는 장소는 식탁이라고 해 둘까. 엄청난 영감이 떠올랐다고 치자 이건 쓰기만 하면 베스트셀러고 노벨 문학상 감이다. 막 노트북을 켜서 첫 타자를 치려는 순간. 두 코딱지가 바짓가랑이를 붙들며 밥 달라고 징징거린다.
영감이고 뭣이고 가장 시급한 건 '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