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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이 뭐죠? 먹는 건가요?

Chapter 3. 나의 우울증 탈출기(3)

by 온다정 샤프펜

전에는 '자존감'이라는 단어에 별 감흥이 없었다.

아이를 낳고 타의에 의한 집 콕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남편이 가볍게 던진 한마디 말에도 자존심이 상하고, 옆집 아줌마의 악의 없는 농담도 진지하게 받아치게 된다.

아줌마 친구와 작은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밤새도록 안 좋은 상상으로 만리장성을 쌓을 지경이고,

밖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억울한 일이라도 당한 날은 제대로 대처 못한 나를 책망하며 3일 정도 이불킥을 날린다.

정말 나의 소심함이 극에 달해 나조차도 내가 짜증이 날 정도였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원래 이렇게 소심하고 쪼잔한 사람이었나? 이렇게 별것 아닌 일로 오랫동안 혼자 끙끙 알아 눕는 사람이었나?

아니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길에서 누가 시비라도 걸면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응징하고, 무슨 일이 언제 있었냐는 듯 집에서 두 발 뻗고 잠만 잘 잤다.

친구랑 트러블이 있어도 내가 먼저 사과하고 훌훌 털어버렸고 오히려 내가 악의 없는 농담을 심하게 해서 친구들한테 욕먹고 사과할 일도 많았다. 그러니 누가 나에게 심한 농담을 해도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고 나도 같이 받아치면 그만이었다.

그러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살피고 배려하는 세심한 성격이었는데, 그것은 소심함에 남 눈치를 보며 욕 먹을까 봐 하는 행동이 아닌,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자가 가진 자신감과 당당함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배려였다. 그러던 내가,

'이런 찌질이가 된 건 자존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높다'라는 말의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한 의미는 '내가 우주 최고로 잘난 사람'이다. 육아에 찌들어 겉모습도, 정신도, 마음도 망가진 나는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나보다 잘나 보이고 나보다 행복해 보이며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기사에 나오는 성공한 사람들이 너무 부럽고 반면에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 참을 수가 없었다.

'난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고 잘난 거 하나 없는 인생의 패배자야'

라는 생각으로는 우울증 탈피도 다시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다. 집 떠난 나의 자존감을 다시 불러올 방법이 시급했다.


예전의 내가 왜 자존감이 높을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일단 외모를 열심히 꾸몄다. 워낙에 꾸미는 것을 좋아했고 친구들도 열심히들 꾸몄기 때문에 누가 질 세라 20대 청춘답게 미친 듯이 꾸몄다. 일단 여자는 꾸미면 꾸밀수록 웬만해서는 미모가 상승하므로 자연스럽게 자존감도 상승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 일이 있었다. 빡센 회사였지만 어찌 되었던 회사에서 내 포지션이 있었고 그 부분은 타인이 넘어올 수 없는 영역이었고 그래서 내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높은 연봉은 아니었지만 연봉이 오를 때마다 내 자존감도 같이 오를 수 있었다.

꿈을 함께하는 막역한 친구들 무리가 있었다. '넌 특별해! 넌 예뻐! 네 실력은 최고야! 네가 좋아!'라고 말해주는,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친구들과 항상 함께였다.(지금은 구박만 하고 본인만 잘난 줄만 아는 남의 편이 제일 가까이에 있다)

그리고 내가 밖에서 망나니 짓을 해도 언제나 날 믿고 항상 따스한 밥상을 차려 놓고 날 기다리시는 부모님이 계셨다. 부모님이야말로 내 자존감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해준 최고의 존재다.(결혼 후 친정을 떠나 시댁 근처로 오니 외딴섬에 홀로 떠있는 불안한 기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취미생활들은 날 '인생을 꽤 멋지게 사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제 결혼 후 나의 삶을 보자, 내가 나열한 어느 하나도 해당되는 것이 없다.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안 꾸미니 갈수록 못생겨지고, 일이 없으니 연봉도 없고, 친구들도 다 결혼해서 뿔뿔이 흩어져 애 키우느라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고, 친정 부모님은 멀리 계신 데다 전처럼 투정도 못 부리겠고 (속상해하실까 봐) 취미생활은 '개 풀 뜯어 먹는 소리'고.


'이 최악의 상황에서 어떻게 예전의 당당하고 행복한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간단히 한 번에 해결될 만한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우울증에 빠진 것처럼, 다시 돌아가는 것도 엄청난 의지와 기나긴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다. 난 아무리 오래 걸려도, 힘들어도 다시 자신감 뿜뿜한 예전의 나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점부터는 절대, 다시는 내려가는 일 없이 앞만 보고 올라갈 것이다. 결코, 누구도 나를 다시 우울의 나락으로 끌어내리지 못할 거다. (실수로 셋 째가 생기지만 않으면)

일단 이 지긋지긋한 육아 우울증을 탈출하려면 '자존감 회복'이 우선이다.

오늘도 바닥에 깔린 내 초라한 자존감을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버티며 회복 방법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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