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상에 Apr 29. 2024

해고가 시작되면...

인사팀 브이로그

앞서 이야기했던 다양한 상황들을 통해 권고사직의 대상자가 정해지고 나면, 매니저와 인사팀의 팀워크가 매우 중요해진다.


회사마다 방법은 다르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겪어왔던 권고사직의 통보 순서는 이러하다.


권고사직의 대상자를 정하고

법적 문제가 있는지를 검토한 후

매니저가 권고사직을 통보하는 당일 오전 혹은 전날 저녁에 기습으로 직원과 미팅을 잡는다.

그 미팅에는 권고사직 대상직원, 매니저, 그리고 인사팀 직원이 함께한다.


권고사직을 이야기하는 미팅이 그냥 일반적인 미팅이겠거니 생각하고 들어온 직원들은, 인사팀과 매니저가 함께 앉아있는 왠지 모를 무게감에 주춤거리며 자리에 앉는다.


"어... 무슨 일이지요? 인사팀이 들어온다는 이야기는 없었는데..."

그러면 매니저가 힘겹게 이야기를 꺼낸다.

"이번에 회사의 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리 부서에서 한 사람을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 왔어요. 우리 부서의 일부 업무를 통합하기로 했고, 그 과정에 부장 포지션 하나가 없어졌습니다. 오늘 참석한 A 부장님이 그 대상이 되었네요. 회사가 생각한 퇴사일은 다음 달 말까지이고 위로금은 인사팀에서 따로 말씀 주실 거예요"


직원은 고개를 떨군다.

매니저도 고개를 떨군다.

회의실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숨소리마저도 거슬린다.


인사팀인 나는 최대한 이성의 끈을 붙잡고 위로금이며, 퇴사 절차며, 남아있는 복리후생등에 대해 단 하나의 감정을 섞지 않고 전달하며 마지막으로 서류를 내민다.

"설명드렸던 위로금과 권고사직에 동의한다는 서류입니다. 이번주까지 생각해 보시고 저에게 연락 주십시오. 다른 질문 있으신지요?"


보통은 질문이 없다. 이미 직원은 매니저 입에서 "권고사직"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매니저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인사팀이 어떤 설명을 하든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쩌면 회의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왜 내가?

회사가 어떻게 나에게?

우리 가족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래서 나는 꼭 다시 이야기한다.

"지금은 많이 당황스러우실 것 같습니다. 이 미팅 후에도 다른 궁금 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그렇게 미팅이 끝나고 나면 매니저와 직원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준다.

매니저와의 관계가 돈독할수록 둘만의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둘의 관계가 좋지 않을수록 직원은 인사팀과 이야기하기를 원한다.


미팅이 있고부터 며칠 동안은 폭풍 전야와 같다. 그러다 약속이라도 한 듯 사나흘이 지나면 전화와 이메일불이 난다. 권고사직에 동의하는 사람,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사람, 협상을 시도하는 사람,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하는 사람, 하소연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 각기 다른 방법으로 연락을 해온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

직원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회사의 결정을 단호하게 전달하기.

직원의 상황에 공감하지만, 동정하지는 않기.

직원의 힘겨운 부분을 재빨리 알아차려, 회사의 무기로 사용하기.

회사의 무기가 무기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직원이 가지고 있는 일말의 희망을 젠틀하게 꺾기.

개인이 아닌 회사의 입장을 전달하기.

상황에 맞춰 적절한 패를 하나씩 꺼내기.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몇 달 동안 법률적 자문을 바탕으로 다양한 대화의 기술을 실현시켜 간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동정심 혹은 분노 혹은 답답함 혹은 지침 혹은 회의감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회사의 정책으로 인한 냉정한 결정이지만, 결국은 상대방의 마음을 따뜻하게 다스려야 이 해고 업무는 마무리가 된다.

 






이전 04화 회사는 언제 해고를 하나요?(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