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무언가 이상을 느끼기 시작할 전까지 나는 단순히 적당하게 우울한 사람이었다. 사실 정말 힘들어지고 상담을 받기 전가지 그것을 인지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기뻐도 너무 기쁘지 않고, 즐거워도 세상 즐겁지 않은, 적당한 온도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다 매년 때가 되면 돌아오는 계절과 같이, 마치 약속된 시기가 된 것 마냥 적당한 우울감이 찾아오고는 했다. '적당한'이란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세상에 우울함으로 너무 괴로운 사람들이 많아 보였고,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울감에 무너져 도저히 내게 주어진 하루를 견디어낼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우울하다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조심하고는 했다. 마치 그 감정과 표현이 내 것이 아닌 것 마냥 '주기가 왔다'라던가 '사이클이 돌았다'라던가의 표현으로 에둘러 말하고는 했다.
하지만, 그 적당한 우울감은 꽤나 성가신 것임에는 분명했다. 마치 손톱 아래 작은 가시가 끼여있는 것만 같았다. 말 그대로 우울이 깊어지거나 심해지면 그동안 열심히 유지해 오던 나의 생활 루틴을 가볍게 무너트리고 삶의 의욕을 지워버리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내가 항상 해변가에 지어놓은 모래성 같다고 생각했다. 물에 묻은 모래로 성을 쌓아 올리면서 꽤나 단단하다 착각을 하고 괜히 뿌듯했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어느새 밀려든 파도에 스르르 한 켠이 휩쓸려가고, 그다음 파도에 형체가 무너지고, 그 마지막 파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그런 바닷가의 모래성 같았다. 그렇게 삽시간이 모래성이 바다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나면은 남는 것은 허망함과 공허함이었다. 그리고는 며칠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 괴롭힘은 어느 정도 순서가 정해져 있었는데 보통 시작은 자기혐오였다.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할까. 나는 왜 이런 모습 이런 형태로 겨우 버티어 가고 있는 것일까. 나에게는 하루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왜 이 고통의 굴레 속에서 끊임없이 괴로워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난 것일까 하고 생각하다 스쳐 지나가는 부모님 얼굴에 아차하고 괜스레 죄송한 마음에 정신을 차리곤 했다. 그리고 빈자리에는 서글픔이 밀려들었다. 괴로움은 말 그대로 괴롭다. 이 괴로움을 겪는 나 자신이 서글프고 불쌍했다. 휘청이는 스스로가 안쓰럽게만 느껴졌다. 그러는 동안 내 생활은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상태가 된다.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내가 간단한 정리정돈도 하지 못하고 물건들을 방치해 놓고, 건강히 챙겨 먹던 식단은 쌓여가는 배달 용기로 대체되었다. 정성 들여 쓰던 다이어리의 공백은 늘어만 갔다. 그렇게 방바닥에 먼지와 주방에 플라스틱 용기들이 점차 하늘 높이 쌓여가는 모습에 차마 치우지는 못하고 바라보기가 두려워 애써 시선을 외면하곤 했다.
이런 상태가 끝도 없이 계속되며 지하로 내려다가 어느 이상 더 내려가지 못하고 멈추는 순간이 온다. 나는 그러한 순간을 보통 '바닥을 쳤다'라고 표현하곤 했다. 이런 순간은 번개처럼 찾아온다. 신기하게도 그러고 나면 가장 처음 하는 것은 깨끗하게 샤워를 하는 것이다. 그간 쌓여왔던 부정한 것들을 다 씻어내려는 듯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나서는 청소를 시작한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청소를 한다. 쌓여있던 배달 용기들을 정리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분리수거를 한다.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을 닦고, 묵혀있던 빨래를 돌린다. 그렇게 정신없이 땀을 흘리며 청소를 끝내놓고 나면, '그래 이번에도 쉽지 않았지만 잘 지나갔구나' 하고 마음을 다독인다. 마치 태풍이나 홍수와 같은 천재지변이 지나간 것 같이 말이다. 그렇다. 나에게는 나도 모르게 찾아오는 이 우울감이 천재지변과도 같았다.
피할 수 없이 견디고 살아남아야 하는 그런 자연재해와 같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적당한 우울함의 무게를 양 어깨에 언제나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내가 주기적으로 온다고 생각했던 여러 적당하 우울감은 아무 이유 없이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 천재지변은 항상 불안이라는 징조로 신호를 보내왔었다. 그저 그동안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었다. 남의 눈치나 기분은 귀신같이 알아채면서 정작 나 자신의 감정에는 관심도 없었던 것이었다. 뒤늦게 상담과 검사를 통해 이를 알아차렸을 때는 나에게 미안하기도 하면서, 허탈하기도 하였다. 내가 그동안 나를 이해해 보겠다고 했던 수많은 행동이 이마에 답을 적어놓고 주변만 뒤지고 있던 꼴과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행동들이 모두 헛되다 할 수는 없었다. 많은 책을 읽고 글도 쓰면서 나를 이해하려 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나에게 좋은 영양분으로 작용했다 믿고 있다.
이런 기질적인 이유로 여름날 감기처럼 지독하게 통증을 겪고 지나기를 여러 번 어느 순간 체념하고 그러려니 살곤 하였다. 이번에는 좀 더 심하네, 이번에는 좀 덜하네 평가를 하면서 매번의 우울감을 씹어 삼키곤 했다. 하지만 내 주변 상황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불안이 극에 달했을 때, 이번만큼은 단순히 감기로 끝나지 않겠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바닥을 이제 슬슬 찍을 때가 되었는데 싶어도 끝도 없이 추락하는 나의 기분은 그 어느 것으로도 붙잡을 수 없었다. 오히려 가속에 가속을 더해 가파른 속도로 침전할 뿐이었다. 적당히 찾아오던 우울감의 무게는 어느덧 내 세계를 무너트릴 정도로 불어나 있었다. 그렇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심리상담센터였다.
그동안 여러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면서 많이 좋아졌다고 느낀다. 후술 하겠지만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뒤늦게 풀어놓은 그 시간들은 지금 와 돌이켜보아도 꽤 끔찍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겨우 그 정도일 수도 있을 적당한 우울감이 터무니없이 불어난 홍수와 같이 밀어닥쳤을 때의 마주한 두려움을 떠올리면 지금도 여전히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다. 하지만 이제와서는 알고 있다. 그 어디도 도망칠 곳은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마주하고 부딪쳐야 한다는 것을.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을 망정 싸워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것을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그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글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