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심리상담을 마무리한 뒤로 반년 정도는 스스로를 돌아보는데 시간을 할애하였다. 상담동안 느끼고 배웠던 것들을 정리하고 소화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좋은 상담 선생님을 만남 덕분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기에 충분히 내 생활에 적용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였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들이 있었지만 그러한 시도는 생각보다 효과적이었고, 간혹 찾아오는 우울감을 적당한 범위 내에서 조절하면서 잘 지낼 수 있었다. 당시에 우선 정리해 봤던 것은 내 우울함의 종류였고, 내가 우울감을 느끼는 경우를 3가지로 구분하였다.
1번 :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우울감
2번 : 기질적인 불안이 일으키는 우울감
3번 : 외부 충격으로 발생하는 우울감
1번의 경우는 나에게 있어서 계절과도 같은 것이다. 또는 자연재해와도 같은 것이다. 오는 것을 알면서도 막을 수가 없다.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이 오는 것을 무슨 수로 막을 수 있을까? 거대한 태풍이 다가오는 것을 어떻게 막을까? 이것들은 막고 싶다고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저 대비하고 잘 견뎌서 무탈하게 넘어가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는 것이다. 태풍이 불어오는 바람을 대비하여 날아갈만한 물건들을 잘 묶어두고, 쏟아지는 빗줄기를 대비하여 배수구를 정리하고 제방을 점검하듯이 평상시에 특별한 일만 없이 잘 준비만 한다면, 이러한 종류의 우울은 그다지 힘들지는 않게 잘 흘려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우울감은 갑작스럽게 내리는 소나기가 아니라 천천히 다가오는 장마와도 같이 어느 정도 미리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다만 규칙적이거나 정확한 주기가 있지는 않다. 다음에 찾아오는 우울은 2주 후가 될 수도 있고, 한 달 뒤가 될 수도 있고, 다음 계절이 될 수도 있다.
지방에 내려온 뒤부터 취미로 서핑을 간간히 즐기고 있는데, 서핑에서는 주기적으로 밀려드는 파도 무리를 '세트'라고 표현한다. 잠잠하던 바다에 세트가 오면 짧게는 1~2분, 길게는 10분도 넘게 높은 파도가 몰려온다. 파도는 해변에 가까워지면서 해저와의 마찰로 인해 점점 솟아오르다 윗부분부터 깨어지기 시작하는데, 세트가 올 때 미리 라인업(파도가 거세지는 지점 너머 파도를 기다리는 위치)까지 나가있지 않으면 깨어지는 파도에 속수무책으로 휘말리고는 한다. 파도는 보통 안으로 말리면서 깨어지곤 하는데, 여기에 잘못 말리면 마치 세탁기 속에 있는 듯이 물속에서 빙글빙글 거리게 된다. 이를 서퍼들끼리는 통돌이에 돌았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렇게 파도에서 허우적대다 겨우 머리를 수면 위로 내밀면 그다음 파도가 눈앞에서 깨져 덮쳐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세트에 말리는 것은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다. 주기적으로 밀려드는 우울도 파도의 세트와 같다. 적당한 시점 적당한 위치에서 우울의 파도를 잘 맞이하면 수월하게 넘길 수 있지만, 잘못 말리기라도 하면 고생고생하다 겨우 헤어 나왔다 싶은 찰나에 또다시 우울이 덮쳐올 수 있다. 그렇게 겹겹이 쌓이다 보면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2번은 내 기질적인 부분에 맞닿아 있다. 나는 불안을 쉽게 느낀다. 현재에 대한 불안, 미래에 대한 불안, 관계에 대한 불안, 소유에 대한 불안, 자신에 대한 불안 등 나를 포함한 모든 부분에 쉽게 불안을 느낀다. 불안은 마치 파문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수면과도 같다. 심지어 파문이 일어나는 파원은 한 곳이 아니기에 여러 파문이 얽히고설키다 보면, 중첩이 되어 더 큰 파동이 일기도 한다. 파동의 특성상 중첩과 상쇄가 혼재되어 있어야 하건만, 이 불안과 우울이라는 녀석은 왜 중첩만 생겨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인지 참 이해하기가 어렵다. 마음은 물리 법칙과는 다른 것이고, 수학 문제처럼 풀리는 것이 아니란 것을 새삼 다시 느끼곤 한다.
심리 상담을 통해 가장 도움을 많이 받았던 부분이 바로 이 불안으로 인한 우울이 아니었나 싶다. 해소할 방법을 찾은 것은 아니었지만, 우울의 종류를 구별할 기준이 생겼다. 갑자기 맞는 주먹보다 보고 맞는 주먹이 조금은 덜 아프다고 하는 것 같이 우울의 종류를 미리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찾아오는 우울의 충격에 좀 더 잘 견디고 버텨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보통 우울감이 찾아오기 시작하면, 먼저 주기적으로 오는 우울감인지부터 확인한다. 주기적으로 오는 우울감은 그 결이 조금 다른 편인데, 보통 이런 것이다. 늦은 밤 달이 너무 이뻐서 우울해지기 시작한다거나, 날이 너무 맑아서 우울해지기 시작한다거나와 같이 특별한 이유 없이 울적하기 시작하면 보통 이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녀석인 경우가 많다. 만약 이 경우가 아니라면 빠르게 촉을 돋구어 나와 내 주변 상황을 샅샅이 훑어본다. 내가 불안한가? 혹시 불안하다면 불안을 느끼는 요소는 무엇인가? 이는 내가 해결이 가능한 것인가? 불가능하다면 얼마나 지속될 상황인가? 등 빠르게 상황 인식을 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3번째 종류의 우울은 제일 고약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한 유형이다. 사는 게 순탄하게 흘러가기만 하면 참으로 좋으련만, 삶은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인생에서 평화롭고 무탈한 시기를 찾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 싶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과 퇴근이지만 그 속에서도 참 많은 일들이 있다. 퇴근 후는 그럼 아무 일도 없을까? 퇴근 후에는 나 자신으로 돌아오면서 생길 수 있는 일들이 사방천지에 널려있다. 물론 많은 시간이 지나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새 성숙해진 모습에 담담히 감내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순간 내가 견뎌야 했던 우울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생의 고난이라고 할 것들은 너무나도 많다. 관계의 상실, 관계에서 오는 상처와 좌절, 직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 갑작스럽게 닥치는 사건과 사고까지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발생하는 이 많은 일들은 사람을 힘들고 지치게 만든다. 이겨낼 수 있을만한 고난이라면 다행이지만, 그 순간 이겨내지 못하거나 겨우 버티고 있는 정도라면 조금씩 지쳐가고 무너져가게 된다. 상처 난 마음이 적절한 시기에 새살을 돋우지 못하고 방치되어 덧나게 되면 이는 필연적으로 우울을 불러온다. 이 와중에 1번이나 2번의 우울이 이미 와있는 상태라면 단순히 두 배가 아닌 네 배, 여덟 배 이상으로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마지막 상담 이후 6개월이 지나던 즈음 겪게 된 상황이 바로 그러했다. 이미 불안으로 인한 우울이 목 끝까지 차오른 상태였는데, 사건이 터지고 만 것이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잘 버텨왔던 시간이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그동안 매번 그러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