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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자란한뼘 Jul 29. 2024

심리상담 이후 정신건강의학과까지

 마음속에 마치 독구름을 내뿜는 악한 것이 풀린 것만 같았다.

나는  힘들고 괴로운 이야기를 남에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선은 내가 남의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를 듣는 것을 정신적으로 꽤나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지만, 그러는 동안 그 아픔, 슬픔, 걱정, 괴로움에 마음이 적셔져 땅끝까지 내려앉는 기분이 들곤 한다. 그렇기에 내 힘든 이야기를 듣는 다른 이도 나처럼 피곤하고 지치지 않을까 정된다. 게다가 특별히 해결책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단순히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더더욱 말을 아끼게 된다. 굳이 말해봐야 무어하나.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정말 가깝고 의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말하기는 하지만, 바닥을 보여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단 한 번 바닥을 드러낸 적이 있다면 그건 바로 상담 때였을 것이다. 그런 내가 이렇게 브런치에 힘들었던 이야기를 정리하기 시작한 것은 꽤 흥미로운 변화이다. 어느 정도 상태가 좋아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 다른 해결 방법을 찾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처음 마음이 무너진 후 반년 간 심리상담을 하고, 반년의 개인 정비 후, 다시 마음이 무너져 현재까지는 병원에 다니며 약을 처방받고 있다. 심리상담을 받기 전 마음이 무너질 때까지 벼랑 끝에 내몰린 이유를 생각해 보면 두 가지가 있었다. 바로 과도한 업무로 인한 번아웃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인한 우울이었다.


회사는 항상 적은 인력으로 많은 일을 하려고 한다. 필요한 만큼의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여 일을 진행하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많은 회사들이 그러할 것이라 본다. 소요비용에서 가장 아끼기 쉬운 것이 바로 인건비이니까. 참, 그렇다고 대게 많은 직장인들이 1인분 이상의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일은 꼭 한쪽에 몰리는 경향이 있는데, 노는 사람은 놀고 일에 치이는 사람은 치이는 것이다.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높은 책임감과 성취욕이 있지 않을까 싶다. 대게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 일을 많이 하는 편이고, 그러한 사람들은 또 일 욕심이 적당히 많은 편이다. 내가 일을 잘한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해야 하는 일은 많았다.

 

보통 내가 일하고 있는 영역에서는 한 사람이 1개에서 2개 정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비해, 나는 어쩌다 보니 이미 4개의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힘들고 까다로운 프로젝트를 하나 하고 있었는데, 원래 그 일은 내 사수인 책임 연구원분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분께서 2년간 잠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하여 팀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분의 일을 내가 2년간 대신 맡아주기로 하였다. 꽤나 힘들고 어려운 프로젝트라 부담스러웠지만, 사수와의 관계가 워낙 좋았고, 2년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엄청난 착각이었다.) 그리고 내가 거부한다고 답이 나올 문제도 아니었다. 이미 떠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을 붙잡는다고 될 일도 아니고, 누군가는 받아서 해야 할 일인데 나 밖에 할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참 좋았다는 점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인간관계를 힘들어하는 것에 비해 나는 복 받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게 쏟아지는 일들로 인하여 서서히 지쳐가는 시기가 시작되었다.


일이란 것은 참 희한하다. 끝이 없다. 끝이 났다고 방심하는 순간 새로운 일이 고개를 내미 들고 다가온다.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다. 그것도 서로 다른 프로젝트의 일들이 줄줄이 다가올 때면 숨이 턱 막히고는 한다. 나는 적당히 완벽주의 성향도 있어서, 일을 하나 할 때 꼼꼼히 하려고 신경 쓰는 편이다. 그러한 결과물들도 나쁘지 않았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일이 몰려들기 시작하니 말 그대로 일을 쳐내기에 급급해졌다. 평소에는 안 할 실수들이 늘어나고, 어떻게 이런 실수를 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사소한 실수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같이 일하는 분들은 내가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에 많이 배려를 해주시고 이해를 해주셨지만, 나 스스로는 이를 용납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더 잘할 수 있는데, 더 잘하고 싶은데 물리적으로 상황이 받쳐주지 않는다는 것. 내 능력이 한계가 명확히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나에게도 나름 도전이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무리해서는 안 되었다. 한 번 고장 난 마음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 내가 고장 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았어야만 했다.


그렇게 일의 홍수 속에 허우적대며 지내는 동안 무언가 분명히 나에게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5년간 만나오던 사람과 미래는 점점 불확실해지기 시작하였다. 당연히 결혼까지 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생각과 같이 흘러가지는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결국 끝까지 가지 못한 것은 나의 문제일 수도 그 사람의 문제일 수도 현실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긴 연애를 마무리하면서 마음과 정신은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 일이 파묻혀 있으면서도 '곧 사수가 돌아올 것이다. 곧 2년이 다가온다.' 하며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다. 실제로 사수와 간간히 식사를 할 때도 제 때 돌아오라고 신신당부를 하곤 하였다. 그리고 돌아오기로 한 시점 2주 전에 연락이 왔다. 미안하다고, 자신이 하고 있는 그 일을 더 해보고 싶다고.

 

마음속 심지에 불이 붙었다. 그리고 터져버렸다.


분노가 가득히 피어올랐다.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웃으면서 돌아올 것이라 말하더 사람이 복귀 2주 전에 못 가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다. 거짓된 사람이다. 모두를 속이고 기만하였다. 자신의 말에 책임도 못 지는 사람이다. 마음속에서 부정적이고 해로운 감정들이 끊임없이 솟구쳐 올랐다. 그 자체로도 마음이 견디기 어려웠다. 마음속에 마치 독구름을 내뿜는 악한 것이 풀린 것만 같았다. 맑은 물에 한 방울 떨어진 잉크와 같이 어지러운 마음은 점점 어두워져만 갈 뿐이었다. 팀에서도 그 책임 연구원이 돌아오겠다는 말을 믿고, 따로 인력 충원을 하지 않고 기다렸기에 모두가 당황스러 뿐이었다. 절망이었다. 2년간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이제 좀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것만 보고 최근 6개월을 건강하게 버텨왔는데. 상담 후 애써 쌓아 올리던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2년만 더 있다가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저 사람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며칠 동안 무너진 마음을 추스르려 애썼다. 연차를 내고 쉬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마음이 버틸 수가 없다고 느꼈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 느꼈던 무기력함과 우울함을 넘어서 이건 정말 위험하다고 느꼈다. 위험하다고 느끼는 그 감정조차 무서웠다. 더 이상 내가 알던 내가 이 마음을 가지고 다시 상담을 하러 간다고 한들 나아질 수 있을까? 지난 상담을 통해 나를 많이 이해하게 되었기에 확실히 느낌이 왔다. 이건 상담으로 해결될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내 마음이 그 정도까지 오래 견뎌주지 못할 것임을 말이다. 조치가 필요하다. 나는 확실히 고장 났다.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렇게 네이버 지도에 정신건강의학과를 검색하였다.


이전에 심리상담센터를 찾았을 때는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였다면, 지금은 그냥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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