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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Jan 08. 2022

이제 그만 둘러볼까

불안한 이들에게 '전념'만한 특효약이 있을까

수험을 앞둔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감정, 그건 바로 자유에 대한 갈망이다. 과거의 나 또한, 이 수능만 끝나면, 대학만 간다면 내 앞에 자유가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수능이 끝나고 나는 어른이 되었고, 캠퍼스에서 자유를 만끽할 생각에 들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자유를 마주했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혼란 그 자체였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전공은 건축학이라고 정해졌지만, 교양도 내가 선택할 수 있었고 내가 어떤 동아리에 들어갈지 어떤 활동들을 하며 대학교 생활을 할지 온전히 나의 '선택'에 달려있었다. 그렇게 바래왔던 방학에도 모든 게 내 선택이 중요하게 작용했고 나는 그런 사치를 누리며 괴로운 감정이 든다는 게 나만이 느끼는 이상한 감정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참이 지나 그 때의 감정을 떠올려보면 그 때의 나는 자유에 '압도'되었었다고도 볼 수 있다. 바로 피트 데이비스의 <전념>에서 말하는 '무한 탐색 모드'에 압도되어 괴로움을 느낀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그 당시 영화를 보는 것에 푹 빠져있던 나는 수많은 영화관을 다니며 팜플렛을 모으는 걸 즐겼다. 엄청나게 많은 팜플렛을 모으며 계속해서 여러 선택지를 열어두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게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했고 괴로웠다. 이 불안이라는 목마름이 어떻게 해소가 될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더더욱 탐색을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시기를 지나 나는 이상하게도 신기한 개념이 마음 속에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바로 '제약이라는 행복'이었다.



나에게 육아가 힘들거나(물론 힘들 때도 있다) 내 경력이 막힌 것과 같은 답답함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 좋은 책임감'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내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는 일을 끊임없이 고민했고 그걸 고민했기에 지금 얻은 게 훨씬 많았다. 아이없이 자유롭게 나의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삶에 대한 동경은 없었다. 오히려 대학생 때 정말 기한없는 자유를 만끽하고 보니 그게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 당시에 나는 어느 하나에도 몰입하기 힘들었다.


피트 데이비스의 <전념>을 읽으면서 내가 대학생 시절 느꼈던 괴로움의 정체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탐색했었다. 탐색'만' 한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하나에 진득하니 붙어있는 걸 오히려 두려워했었다.


이게 내 only one이 아니면 어떻게 하지?


라는 두려움을 안고서 말이다. 그게 연애든 결혼이든 커리어든 내가 속한 커뮤니티든 마찬가지였다.



외로움과 커뮤니티

내가 처음부터 몰입과 전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커뮤니티였다. 최소 10개 이상의 커뮤니티를 경험했고 그 속에서도 외로움을 느꼈다.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다. 하지만 그게 하나의 커뮤니티에 온전히 전념하지 않아 찾아온 외로움이라는 건 한참 후에서나 알았다. 그렇게 나는 내가 주도해서 모임을 만들게 되었고, 지금은 그 모임도 유지하면서 내가 전념할 수 있는 커뮤니티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게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멘토 또한 마찬가지다. 모두들 멘토로 삼을 사람이 너무 많아 길을 헤맨다.

https://m.blog.naver.com/onekite1025/222147578249

하지만 나에게는 길잡이 별같은 멘토가 두 분이나 계신다. 게다가 책이라는 엄청난 어벤저스급 멘토도 있다. 다들 고립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면서 어떤 이들과의 특별한 유대조차 만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그걸 조금씩 극복하고 있다 생각한다. 내가 스스로 아주 작은 모임이라도 만들면서 유대를 쌓아나가는 경험을 하고 있다는 점이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언어 씹어먹기>를 만든지​ 2년이 지났다. 이젠 아주 소수의 분들과의 모임으로 바뀌었지만 이 또한 내가 성장하고 배우는 단계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특정 모임에 전념을 하다보면, 다양한 모임에 발만 걸칠 때와는 또다른 세상이 열린다.



몰입과 시간관리

단순한 반복 업무를 하면서도 몰입의 경험을 할 수 있다. 몰입은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준다. 예전에 나는 시간관리에 관심을 가졌었다가 너무나도 빡빡하게 사는것 같아 그런 Time management류의 서적과는거리를 두었다. 그러다가 알게 된 <초집중>​과 <몰입flow>​은 나를 신세계로 데려다주었다.


몰입, 전념이라는 개념을 모른채로 시간관리 운운해도 더 바빠질 뿐이다. 우리에게는 어느 한 가지에 푹 빠져서 시간의 깊이를 만들어내는 경험이 필요하다.



전념하지 않는 삶에 대한 두려움

이제는 무한 탐색만 하던 때의 느꼈던 두려움이 아닌 다른 형태의 두려움이 생긴다. ‘내가 이렇게 계속 탐색만 하다가는 나의 시간을 그저 허공에 흘려보낼 수 있겠다’라는 엄청난 두려움말이다. 저자가 책에서 말한 예시들이 이미지로 다가와 이해하기가 무척 수월했다.

이들(장인)은 특정한 무언가와 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거기에 오랜 시간과 노력을 할애함으로써 관계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이를 위해 복도로 연결된 문을 닫고 다른 선택지들을 기꺼이 포기한다.(...) 전념하기의 영웅들은 매일, 매년 꾸준하게 시간과 노력을 쌓아 스스로 극적인 사건 그 자체가 된다.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용은 일상이 주는 지루함, 다른 방도 기웃거리고 싶은 유혹, 그리고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불안이다. - 피트 데이비스 <전념> p.25

무한 탐색 모드에 있는 이들에게 캠프파이어의 경험이 특별하게 각인되는 이유를 나는 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간의 힘>은 강력​하다. 대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갔던 1달간의 유럽 여행. 그리고 단 1박2일이었지만 짐없이 갔던 국내 여행의 기억​이 미친듯이 뇌리에 새겨져있다. 그건 왜였을까. 무언가에 온전히 푹 빠져서 다른 걸 둘러볼 선택지가 제거되었을 때 느끼는 묘한 해방감이었다.


제약이라는 행복. 자유라는 족쇄.


나는 이렇게 상반된 두 단어들이 주는 느낌을 생생하게 느끼게 되었다.



전념이 필요한 이유

전념하기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첫걸음이다.(...) 변화는 느리게, 서서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의미있는 일에는 시간이 걸린다.(...) 변화에 꾸준함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변화를 만드는 일이 전투 전략을 짜고 시행하는 것보다 관계를 일구고 유지하는 일에 가까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기계적이기보다는 유기적이고, 계획적이기보다는 즉흥적이다. 그래서 변화의 길에는 우리가 '단순화'하거나 '조정'하거나 '자동화'할 수 없는 과정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기관과 공동체와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과 관계를 맺는 것뿐이다. 그들의 뉘앙스를 배우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을 정도의 신뢰와 흐름을 가져야 한다.- <전념> p.36~37

내가 2년간 <언어 씹어먹기>라는 습관모임을 만들면서 느낀게 그거였다. 재테크(주식, 부동산 등), 올리브나무 키우기, 육아, 습관, 그 무엇하나 변화가 바로 지금 당장 일어나는 건 없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바로 지금 당장 변하는 것만 원하고 자신이 원하는 빠른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바로 자리를 떠난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무한 탐색 모드를 하며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발전의 길은 절대 일직선이 아니다. 일정하게 앞으로 나아가는듯싶다가도 어느샌가 장애물에 부닥치고 길은 굽어진다.(...) 나는 계속 앞을 향해 걷고 있는데 목적지는 오히려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아예 목적지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도 있다. 그러나 사실 당신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곧 아까보다 훨씬 더 가까운 거리에서 목적지가 다시 등장할 것이다. - <전념> p. 37,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저서 내용을 인용한 부분

위의 마틴 루서 킹 주니어가 말한 부분을 읽으면서 속이 울렁울렁 묘한 기분을 느꼈다.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속에서 무언가가 끌어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특정한 비전과 가치에 꾸준하게 헌신한 사람들이 중요하다. 어떤 전략, 마케팅, 성공 비법이 아니라. 내가 애덤 그랜트의 <기브  테이크> 나의 기본 마인드셋으로 가지고 가려는  또한 이런 이유다.



신뢰, 시간, 돈

'신뢰는 유기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변화를 일으킬  있는 사람은 똑똑한 엔지니어가 아니라 끈기있게 마음을 다하는 정원사다.'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 이런 사람이고 싶다.'라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모두를 움직이는 > 생각 났다.

만약 우리 세계가 진짜로 끝을 맞이한다면 그 원인은 무언가 꾸준히 유지하는 데에 실패했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 <전념> p. 38


나는 그 누구보다 불안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불안과 조급함이 독서와 글쓰기, 매일 달리기, 자동시스템이라는 습관, 몰입, 실행으로 많은 부분 해소가 되었다. '전념하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와 삶을 불안해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자꾸만 맴돈다. 나는 불안함을 떨치기 위해서 전념하기를 선택했다. 몰입하면 적어도 이런 두려움이 희미해진다는 점(p.40)때문에 explore만 미친듯이 하던 내가 몰입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놀이공원이 문닫기 전에 거기에 있는 놀이기구를 전부 다 타보려는 사람처럼'(p. 40)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만족하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더 많은 선택지를 살펴보는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니라, 전념이 필요하다. 빡빡한 시간관리가 아니라 전념이 필요하다. 삶의 깊이를 통제하기 위해서 말이다. '한정적인 시간을 인정하는 대신, 제한 없는 깊이를 추구하겠다는 결정'을 우리는 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용기 이상으로 자신에 대한 확신도 필요하다. 내 선택이 잘못될 수도 있지만 그 또한 큰 배움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말이다. 실패하지 않는 인생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아무 것도 시도조차 하지 않고 끝나버리는 인생이 더 슬프다. 선택지가 많아져서 더 행복해졌다고 말하는 어르신들도 있지만 내 생각은 그 반대다. 오히려 우리는 더 위태롭고도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정신 바짝 차리고 무언가에 전념하는 경험을 단 한 번이라도 해봐야 한다.


스크롤 그만 내리고


일단 영화 하나를 고르고


끝까지 몰입하고


그리고 그 감정을 온전히 기록으로 남겨보는 시간


그게 지금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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