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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렌 Jun 07. 2024

요리가 주었던 풍미

최근 3개월간 운동을 하며, 자연스레 먹는 것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이왕이면 몸에 들어가는 것도 좋은 걸 넣고 싶은 욕심이 생긴 거다. 젊은 이들은 빠르게 먹을 수 있는 대체 식품을 찾는다. 그중 가장 유명해진 것은 단백질쉐이크와 양념 있는 1팩 닭가슴살이다.


한 달 전에 양념 닭가슴살은 끊었다. 식비를 줄이기 위해 만 원도 안 되는 노브랜드의 1kg 냉동 닭을 시켜 먹다가 <아무튼, 비건>을 본 뒤로 닭가슴살을 볼 때마다 닭 대가리가 칼에 잘려 날아가는 게 생각나서 선뜻 사 먹기가 어려워졌다. 날 것의 음식이 단백질쉐이크에 비할 바가 못된 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직도 새벽 6-7시에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지 못해 바꿔야 할 대상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음식을 도파민 분비체로 이용하고 있다. 근래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은 오만가지 맛이 다 나는 라면이었다. 마라탕과 짜장면을 합친 거였는데, 혓바닥에 면이 닿는 순간 자극체가 내 혓바닥을 후려 갈기는 느낌이 났을 뿐, 맛있다 맛없다고 표현하기도 어려운 통각을 내주었다.


효율을 밀어붙이는 사회에서 나는 거꾸로 압축을 포기했다. '빨리 가는 건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거겠지.'라는 믿음 속에서 홀로 빠져나와 하나씩 단계를 밟아보았다. <아무튼, 비건​>을 보면 우리가 육류로 단백질을 채워야 한다는 정설은 사실이 아님을 밝힌다. 이는 마케팅 수법이고, 실제로 전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은 채식주의자라고 한다. 단백질 함량이 높다는 닭가슴살을 주구장창 찾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보다 나은 선택지가 없는지 갈구했다.


그래서 내 선택은 두부였다. 살면서 두부를 좋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찌개 안에 있는 두부도 먹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동물의 대가리가 날아가는 영상이 내 머릿속에 박혔기 때문에 선뜻 먹을 수가 없다. 육류가 아닌 두부를 선택했을 때 얻는 환경적/신체적/정신적 이점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두부를 좋아하게 된다. 구워 먹고, 얼렸다 녹여서 먹고, 으깨서 먹고, 다른 두부를 찾는다.


오늘은 검은콩과 찰현미를 샀다. 내 집에 내 손으로 콩을 들고 오는 날도 생겼다. 유제품에 미쳐있던 내가 <아무튼, 비건>에서 소가 우유를 짜내기 위해 착취당한다는 것을 배운 뒤로 이것도 멀리하게 됐다. 우유 느낌 나는 것을 찾다가 오트밀 우유와 두유를 알아냈다. 사 먹으면 충분히 해결되지만, 그렇게 좋아하는 아몬드 브리즈에도 설탕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그냥 내가 만들자는 실행 원동력이 되었다.


아침 출근길에는 다이어터의 식단을 살펴보고 저녁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식단을 찾아보다가 잠든다. 검은콩은 물에 12시간 불려야 하며, 물에 끓였을 때 거품이 나오면 걷어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그럼에도 내가 하려는 이유는 나에게 식재료가 주는 풍만함을 선물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껏 요리가 싫다는 말로 나를 대변했는데, 실제로는 마음이 급해서 요리에 집중할 시간이 없어 포기하는 거라는 걸 검은콩을 사 오면서 깨달았다.


마음을 넓히려고 해야 세상이 넓어 보인다. 요리가 가진 가치를 단지 먹는 것에만 두지 않고 나를 넓혀주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조승연의 탐구생활을 보면서 음식의 역사를 배우면, 더 요리가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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