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러던어느날 Oct 12. 2024

서른다섯의 나 (1) _ 회사는 변하지 않는다.

서른다섯, 다시 무기력에 맞서다.

선물과도 같은 행복을 느끼는 중에도 현실은 가끔씩 나에게 경고했다. '그래도 현실은 변하지 않아.'라고. 회사라는 전쟁터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기이한 현상이 지속되고 있었지만, 혼자 생각에 잠길 때면 나는 '이 행복도 언젠가는 끝날 거야...'라고 항상 자신에게 긴장감을 주었다. 내가 속한 작은 조직에 대한 큰 애정과 책임감이 나를 움직이고는 있었지만, 회사라는 거대한 조직은 여전히 나와 맞지 않았다. 


열심히 일했다. 밤늦게 퇴근하는 건 다반사고 주말 출근은 일상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공황장애 진단받기 전이랑 다를 바가 없는 일하는 로봇이었겠지만, 그때처럼 회사에서의 입신양명이 내 동력이 아니었다. 단지 이 행복함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이러나저러나 열심히 일한 만큼 성과도 좋았고, 인정도 받았다. 구성원을 팍팍 밀어주는 상무님 덕에 나름의 유명세도 얻었다. 누군가는 부러워할 수도 있는 회사에서의 상승가도를 달려가고 있었지만, 다행히도 타이밍 좋게 발현된 나의 메타인지 능력은 주변의 도움과 운이 작용했음을 나에게 자꾸 각인시켰다. 시기적절하게 탑재한 겸손함은 나의 이미지를 더 좋게 만들어주었다. 흔히들 말하는 조직의 '이너서클'로 합류할 수 있는 입구 즈음에 운 좋게 서보면서, 왜 조직을 유기체라고 하는 것이며 라인, 정치라는 것이 왜 생기는 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흥미로웠다. 왜 누군가에게 목숨 줄 잡힌 듯 휘둘리는지, 보이지 않는 카르텔 내부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왜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망가뜨릴 수밖에 없는지, 고작 한 방울 찍어 맛본 어른들의 세상의 경험만으로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확실하게 깨달았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고, 그런 삶을 버텨낼 깜냥도 안된다는 것을. 


인사팀에서 한 달에 한두 번은 상무님한테 문의가 왔던 것 같다. 승진도 하고 평판도 괜찮으니 커리어개발계획에 맞춰 전사나 대단위조직으로 보내야 한다는 요청이었다. 아직은 아니라고 상무님이 거절을 하긴 했지만, 그 소식을 듣는 매 순간 내 심장은 내려앉았다. 수시로 일어나는 조직개편에도 내 거취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그럴 때마다 제발 다른 데로 옮기지 말아 달라고 속으로 기도했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끝나는 순간, 새로운 지옥이 펼쳐질 것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적 욕심은 여전했다. 물론 더 적은 연봉으로도 훌륭하게 경제적인 전략과 계획을 실행해 나가는 대단한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내 힘으로 더 벌어보고 싶은 사람이었으니까.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고, 작은 돈이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일군 사업으로 돈을 벌어봤기 때문에, 이어서 나는 자연스럽게 더 큰 목표를 세웠다. 누군가에게 회사는 안정감을 주는 존재일지 몰라도, 나에겐 언젠가는 깨고 나가야 하는 알 같은 존재였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조직 생활을 잘 해낼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일은 계속 많아졌고, 더더욱 많은 책임이 어깨에 올라왔다. 여전히 회사 어른들이 즐겨 쓰는 보직 임명, 고과, 인센티브 등의 반협박식 동기부여에 치가 떨렸다. 고과 좀 잘 줬다고 상전 대접을 당연한 듯 바라는 리더들, 당사자는 모르게 뒤에서 일어나는 인사이동 관련 중상모략들, 그것이 그들의 권력이라고 착각하는 일부 어른들, 큰 비밀이라도 알려준 것처럼 철저하게 내 입단속을 시키는 사람들의 모습이 웃기지도 않았다. 앞으로도 회사에 종속된 삶을 살아간다면, 나라고 뭐 다를까? 자신 없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매일매일 안고 살아야 하는 불안감과 책임감, 회사에 갈아 넣는 시간과 에너지를 상쇄할 만큼 큰 보상을 회사는 해주지 않는다. 물론 회사에서의 권력과 영향력이 우선이라면 이야기는 다를 수 있다. 언젠가 우연히 임직원 명절 선물 발송을 위한 집주소 리스트 전체를 본 적이 있었는데, 내가 속한 본부 수 백 명 중 서울의 아파트나 다 알만한 지역의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당연히 아파트가 부의 척도가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에겐 회사를 위해 저들처럼 살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가 되기엔 충분했다.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한 고민은 더더욱 커져갔다. 대기업의 특성상 체계가 잘 잡혀있고, 개개인의 R&R이 명확하다. 내가 맡은 일을 열심히는 하고 있지만, 이렇게 십 년 한다고 해서 내가 무언가에 대한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 회사에서는 임원으로 올라가지 못한 팀장님들이 수시로 보직해임이 되거나 현장 발령이 난다. 반 백 살이 채 안된 건강한 사람들이 순식간에 자존감을 잃고 쥐 죽은 듯 마지막을 준비한다. 백이면 백 그들이 찾는 길은 조금 작은 회사로의 이직이다. 이런 현상을 계속 지켜보면서, 대기업이라는 조직에 특화된 직장인으로 오래 일할 수록, 역할 분담과 프로세스가 잘 잡혀있는 회사로만 이동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나는 온라인 사업을 하면서 대단한 성과를 내진 못했지만, 온전히 새로운 것들 배우고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주 작은 것부터 내가 계획을 세워나가고, 많은 전략들을 배워서 실행하는 것도 재밌었다. 누구나 뛰어드는 만큼 망하는 사람도 많지만, 가장 많은 기회가 있는 거대한 판이 온라인 시장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무엇보다 내가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가장 큰 교훈은, '회사에서 잘리더라도 스스로 밥 벌어먹고 살 방법은 많다.'는 것을 직접 체험한 것이다. 적어도 내가 그리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나에게 필요한 건 회사원으로서의 커리어가 아니라 바깥세상에서 강해질 수 있는 나만의 무기이고 경쟁력이었다.  




회사는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고,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회사를 위해 일하는 직원들을 책임지기 위해 생명체처럼 진화해야만 한다. 능률이 없어진 사람들을 잘라내고, 능력이 좋은 사람은 보상해 주고 지켜야만 한다. 그러다가 효율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더 능력 있는 사람으로 대체되어야만 한다.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나는 회사가 잘못됐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한 때 입사만 시켜주면 인생을 걸겠노라 다짐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원했던 것이 이 회사였고, 지금의 이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도 회사 덕분이라는 걸 잘 안다. 


회사는 단 한순간도 변한 적이 없다. 내가 변했을 뿐. 회사에 인생을 갈아 넣어서 일했던 나 자신을 원망했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나에게 그렇게 일하라고 한 적이 없다.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게 해 주겠다고 약속한 적도 없으며, 그저 내가 잘못된 생각으로 많은 것을 기대했을 뿐이다. 

 

완전히 바뀌어버린 나의 생각에 공감해 주는 직장 동료들은 거의 없다. 오히려 대기업이 주는 안정감에 취해 딴 맘 품고 헛소리나 하는 이상한 놈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렴 어떤가, 내가 세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 다시 쭈구리처럼 회사를 다닌다고 하여도, 내가 가진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잠시 잠깐 느끼는 지금의 행복감 뒤에도, 여전히 내가 느꼈던 절망과 불안감은 그대로 있다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