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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던어느날 Oct 08. 2024

서른넷의 나 (5) _ 성숙한 행복을 배우다.

서른다섯, 다시 무기력에 맞서다.

입사 초창기부터 한 번의 무너짐을 경험하기 전까지의 나는 꽤 높은 행복감을 느끼며 살았다. 태생적으로 부족했던 자존감을 회사로부터 충족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염치없지만, 나는 회사에서 꽤나 인정받았다. 미친 듯이 일을 했으니까. 우수사원 상장도 받았고, 글로벌 패밀리사 응대 및 그룹사 행사 차출 등 다양한 행사에 뽑혀가며 나름 '뽕'을 주입했다. '역시 잘하네', '너만 한 애가 없다' 같은 상사들의 칭찬을 들으면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마치 장밋빛 미래를 다 그려놓은 사람처럼, 내 시간과 건강을 갈아 넣으며 인정 욕구를 채워 넣었다.


행복했다. 아니, 행복함을 느껴야만 했다. 이곳이 내 희망이고 다른 대안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혼자서 행복했다. 1년 차 사원 때부터 9명의 구성원을 이끄는 파트리더를 맡아야만 했을 때도, '인간적인 신뢰형성'이 아니라 '압도적인 업무역량'으로 거리감을 두는 쪽을 택했다. 그게 내 성향에도 맞았다. 성격에도 안 맞는 스몰토크, 할 말이 없는 저녁 회식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그저 조금 모자라는 내 능력을 시간으로 극복하기만 하면 됐다. 내 주변 사람들보다 뛰어나다는 조금의 우월감을 느끼는 순간이 유일한 행복의 순간이었다.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일이 잘 풀리거나 성과가 좋으면 내가 더 잘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느끼는 이 행복감은 전혀 다르다. 내가 주인공이 되고자 한 적이 없다. 한 조직의 중간관리자로서 조직이 잘 돌아가게끔 맡은 바 임부를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다. 예전 같은 열정을 가지고 시작하지도 않았고, 압도적인 업무역량에 대한 욕심도 없었다. 그런데 모든 결과가 좋아졌다. 발탁 승진을 하고 여러 사람의 축하는 받는 그 순간에도, 다 내가 잘해서 그런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맘 편히 사이드 프로젝트에 더 집중할 환경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모든 욕심은 내려놓고, 나의 역할인 '중간관리자'로서 딱 한 사람 몫만 해내는 것에 집중했다. 그것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나를 데려간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소통의 창구가 되려 했다. 조직 최고 의사결정자의 첫 번째 강조사항이었으니까.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고, 고민했다. 리더들이 알아야 할 내용은 사실 그대로 보고하고, 다른 건 맘 속에 품었다. 반대로 리더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였다. 매주 월요일 아침에 진행되는 간부회의에서 나오는 말을 최대한 부드럽게 구성원들에게 전파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늘렸다. 그래야 오히려 내가 더 편했기 때문이다. 유관부서에서 취합요청받은 그대로 구성원들에게 전달하지 않고, 내가 먼저 채울 수 있는 건 다 채웠다. 양식도 좀 편하게 바꿔서 전달했다. 그래야 내가 편하니까. 어렵지 않았다. 시간을 더 쓰는 거야 이전부터 했던 것이고, 조금 더 고민하는 것이 어려운 건 아니니까.


좋은 구성원들을 만났다. 선배들은 조금이라도 개선해 보려고 뭐라도 하는 후배가 귀여웠는지 잘 협조해 줬고, 후배들은 선배라고 해코지 안 하는 나를 좋게 봤는지 잘 따라와 주었다. 중요한 일은 충분히 상의하려 했고, 미안한 일에는 사과를 먼저 했고, 해야만 하는 일에는 양해를 구했다. 조직의 실적이 좋아졌다. 나는 실적을 내는 사람이 아니니까, 양심적으로 모든 공은 당연히 구성원들에게 돌렸다. 어쩜 이런 당연한 것들이 그들에게는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놀랍게도 매번 나를 지지해 주는 구성원들을 보며, 혼자서 조용히 느끼던 행복감과는 비교할 수 없는 벅차오름을 느꼈다.


좋은 리더를 만났다. 당신의 색깔을 조직 전체에 입히려는 나를 많이 지지해 줬다. 고민 끝에 올린 보고를 허투루 듣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피드백을 주었다. 구성원들의 업무 고민은 빠르게 의사결정 해주었다. 물론 전쟁터 같은 임원의 세계나 정치의 영역에서는 전혀 다른 맹수 같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적어도 본인 조직의 구성원들에겐 얼굴 한 번 붉히지 않았다. 당연히 조직 내 구성원의 지지는 전폭적이었고, 주변 조직의 부러움은 덤이었다. 상무님은 '누군가 끌어올려주는 건 운이고, 어느 정도까지 올라가면 그런 건 없어. 다 실력 있는 사람들만 남아있으니까. 그때부터는 동료들, 후배들의 지지가 훨씬 중요하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나에게 했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압도적인 업무역량 또한 욕심내지 않았다. 그저 내 자리에서 딱 내 역할만큼만 하려고 했을 뿐이다. 처음에는 내 목표인 퇴사를 위해 응당 그래야만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시작했던 모든 변화가 이상한 방향으로 나에게 행복감을 주었다. 예전처럼 나 혼자 모든 걸 하려고 발버둥 치는 걸 그저 포기했을 뿐이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내 시간을 갈아 넣어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을 포기했을 뿐이다. 그랬더니 주변 동료들의 유능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조직에서 진짜 필요한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라는 것을 인정했을 뿐이다. 그랬더니 오히려 그들이 날 인정해 주었다. 온전히 제기능을 하는 서포터가 되기로 했을 뿐이다. 그랬더니 오히려 날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었다.


이전에는 전혀 몰랐던 감정이다. 시상식에서 울면서 주변에게 감사를 표하는 스타들을 보면, '속으로는 다 자기 잘났다고 생각하겠지.'라고 생각했었다. 남들에게 공을 돌리는 사람 또한 다른 꿍꿍이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3년 한 해 동안 나는 그게 진심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인정받아보겠다고 발버둥을 치던 이 전의 나보다, 훨씬 더 큰 인정을 받고 보상을 받은 건 온전히 주변 사람들 덕분이다.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도움을 주고받으며 더 큰 성과를 내 본 경험도, 나 혼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니까.


인간적으로 성숙해짐을 느꼈다. 물론 회사 생활에서 이런 경험을 한다는 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는 걸 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절 또한 오래가지 않을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 시간이 끝나면 이전 같은 무기력함과 퇴사 욕구로 가득 찬 하루하루를 보낼 것은 눈에 보이듯 뻔했다. 여전히 나의 목표는 퇴사이고, 사이드 프로젝트는 분명히 계속되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 선물 같은 시간을 열심히 즐겨보기로 했다. 모두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성숙한 행복감을 살면서 처음으로 배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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