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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미래 Jul 26. 2024

나의 전부였던 너에게.

Part 2. 사랑

한 때, 나에겐 내 꿈이 나의 전부였다.


내 꿈은 셰프였다. 나는 오븐에서 구워지는 쿠키들과 빵을 사랑했다. 내 학창 시절의 주된 관심사는 요리였다. 먹는 게 좋았고, 음식을 만드는 게 좋았고,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사람의 반응이 좋으면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제과제빵실의 냄새를 사랑했고 멋있는 조리복을 입은 내 모습을 사랑했다. 꿈을 찾아 헤매는 친구들 틈에서 확신을 가지고 앞으로 직진하는 내 모습 또한 열렬히 사랑하고 나 자신을 지지했다. 요리를 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믿었고 실제로 그랬다. 그런 나에게도 실연의 아픔은 찾아왔다.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설레고 두근거리는 기간이 종지부를 찍어버렸다. 더 이상 요리하는 게 즐겁지 않았고, 셰프가 되어 주방을 날아다니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마냥 가슴이 떨리는 그 시간이 지난 후엔 막연한 믿음과 단단한 뚝심이 나를 지켜줄 줄 알았다. 하지만 상상과 다르게 그때의 내 모습은 한숨 한 번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민들레 홀씨와도 같았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모든 것에는 권태로운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늘 좋을 수만은 없다. 그때의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조금만 자리를 지키고 권태로운 순간을 이겨낸다면 전보다 더 단단한 뿌리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나는 어린 티를 내기라도 하는 듯 모든 것을 놓았다.


나는 내 꿈을 사랑했다. 그걸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꿈이 사라지고 움푹 파인 그 자리에는 한참을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정말이지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권태롭다는 말이, 지겹다는 말이, 다 부질없다는 말이 숨 쉬 듯이 내 안을 맴돌았던 때였다. 그렇게 나는 내 세상이자 전부였던 꿈과 이별을 택했다.


한 바탕 소동이 끝난 후에야 나는 이 이별이 나에게 꼭 필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꿈과의 이별 덕에 나를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었고, 조금 더 생각할 수 있었고,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게 뭔지 다시 한번 알아갈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쉴 새 없이 앞만 보고 직진한다고 모든 일이 한 방에 풀리는 것은 아니니까. 가끔은 아프게 넘어져 무릎이 깨져도 괜찮고, 미친 사람처럼 사방을 헤매다 길을 잃어도 괜찮다. 우리에겐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사랑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습이 바뀐다. 때론 휘발되기도 한다. 그 과정은 당연한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까. 그 당연한 순리를 막으려 들면 오류가 생긴다. 모든 것을 잃은 기분을 느낀다던가, 의욕을 상실한다던가. 사랑을 위해 뜨겁게 나를 태웠다면 나를 식히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 순리를 깨닫게 해 준 나의 옛 꿈에게 오랜만에 애틋한 인사를 보내고 싶다.


치열하게 사랑했고, 영원히 기억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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