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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웨이브 Jul 10. 2022

그 시절, 나는 왜 첫 해외여행으로 인도를 택했는가

느림의 시작


그 시절, 대학 졸업을 앞두고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렇게 졸업해도 될까? 나는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된 걸까?


이렇게 첫 해외여행으로 인도가 나에게로 왔다.





40일간 홀로 떠난 첫 해외여행, 인도



  인도가 궁금해서라기보다는 나 자신이 궁금해서 떠난 여행이었다. 사회로 나가기 전에 홀로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40일 정도, 주말과 방학에 열심히 일하며 학비를 내고 생활까지 하고 절약하며 조금씩 모은 돈 120만 원이 전부였다. 그렇게 나는 10여 년 전, 나를 찾기 위해 인도로 떠났다. 나에겐 가장 멀었고, 가장 쌌고, 가장 모르는 곳이 인도였기 때문이다. 그곳이라면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를 찾았는가? 그 당시에 40일이라는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통해 심사숙고해서 정한 '그 길'을 지금 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인도는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느림이란 단어를
내 삶에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인도를 가본 적 있나요?



  영어도 못하고 해외로 가는 비행기도 타본 적 없는 내가 인도를 간 계기는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이라는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 책을 보고 인도를 간 사람이 꽤 많으리라..)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삶의 속도와 방향을 지닌 그들이 궁금했다. 책에 나온 '차루'라는 뚝뚝이 기사가 주는 울림처럼 인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드라스를 떠나는 날 아침, 마지막으로 차루를 만났다. 작별 인사도 할 겸, 그동안 타고 다닌 릭샤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차루는 또 손을 흔들며 허풍을 떨었다.
' 돈은 주고 싶은 대로 주세요. 전 아무 문제없습니다.'
내가 일부러 정색을 하면서, 그럼 1루피(30원)만 줘도 되겠느냐고 묻자 차루는 외쳤다.
'노 프라블럼!'
그러면서 차루는 당당하게 덧붙였다. 1루피만 줘서 내가 행복하다면 그렇게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자기의 친구이니까, 자기한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내 행복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나의 행복이 아니라 돈을 준 나 자신이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달라고 했다. 영리한 차루, 얄미운 차루, 못난 차루...... 마드라스를 떠난 뒤에도 오랫동안 차루의 인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생일 살면서도 '노 프라플럼!' 을 외치며, 푸웅푸웅 고무 나팔을 울리며 세상 속으로 달려가는 차루! 많은 걸 갖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집착과 소유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내게 그는 잊지 못할 훌륭한 스승이었다.
  - 류시화,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중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내가 마주한 인도는 책과는 달랐다.
그것도 아주 많이

40일의 계획을 여행 3일 만에 철회하다



  첫 해외여행이기에 모든 것이 설레면서도 두려움이 앞섰다. 특히 영어도 못하는데 혼자 외딴곳에 떨어져야 하니 나에게 필요한 것은 계획이었다. 시간은 있지만 적은 예산으로 혼자 살아남을 수 있는 계획을 치밀하게 세웠다. 그런데 인도에 도착해 공항에서부터 사기를 당하고, 책과는 전혀 다른 인도의 이미지와 사람들을 마주했다. 인도에 도착해 3일 정도 되니 그제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여행은 관광 목적이 아니었으니 많은 곳을 가기보단 한 곳에 며칠씩 머무르는 일정들이었기에 가능했다. 그저 인도에 놓였을 뿐이었다.


  인도에 온 지 3일째 작은 식당에서 아침을 먹다가 우연히 한국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인도에 명상센터라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에 가면 10일 동안 명상을 하는데 서로 이야기를 하거나 시선을 교환해서도 안된다. 어떠한 책이나 글을 읽거나 써도 안된다. 술과 담배와 같이 나를 취하게 만드는 것도 안된다. 오로지 걷고, 명상하고, 먹고, 자는 곳이라고 했다. 비용도 자신이 얻은 만큼 주고 싶은 만큼 알아서 내면 된단다. 나와 딱 맞는 곳이었다.


위빠사나 명상센터의 규율


돈도 없고 말도 못 하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온전하게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참 좋았다. 이곳이라면 나와 마주하러 떠난 인도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곤 남은 37일의 일정은 모두 지우고 맥그로드간즈에 있는 위빠사나 명상센터를 중심으로 여행을 바꿨다.



내 인생, 첫 명상



  그전까지 명상을 해본 적도 없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엄청난 일정이었다. 지금까지 삶에서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일상이었다. 일상은 거들뿐 그저 명상이 하루의 전부였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단체로 명상을 하고, 아침을 먹는다.
그리곤 단체로 명상을 하고 점심을 먹는다.
또다시 명상을 하고 저녁을 먹는다.
테이프로 법문을 듣고 명상을 한다.
그리고 잔다.
  - 명상센터에서의 일정


  이렇게 10일을 보낸다. 물론 테이프로 듣는 법문의 내용이나 단체 명상을 할 때 앞에 있던 선생님의 말씀은 달라졌지만 하루일과는 그대로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낼수록 몸과 마음이 차분해졌다. 아마 인생을 통틀어 가장 고요한 시기였으리라. 하루 종일 좌선을 하고 나와 마주한 시간이 어렵기는 했으나 이내 잠잠해지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때의 속도는 느림 정도가 아니라 나중에는 멈춰 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인도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나의 짝꿍과 지인들이 나를 만나고는 말과 행동이 너무 느리다며 신기해하면서도 불편해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 이후 나는 짧게라도 계속 명상을 해오고 있다. 다양한 크고 작은 일들을 하면서 문제가 생겨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은 그때의 경험이 이어져서 인 것 같다.


Calm 어플의 내 프로필





  이렇게 다시 떠올려보니 인도에서의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지금은 누구보다 바쁜 일상을 살아내고 있지만 '살아내는 것'이 아닌 나에게 중요한 것들로 나답게 '살아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앞으로 느림에 대해
좀 더 생각하고 읽고 써볼 생각이다.
그리고 글만이 아니라
작은 실천들로
세상을 좀 더 의미 있게, 느리게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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