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작가의 프라하 여행기
베셀레 바뇨체(Vesele Vanoce)! 즐거운 성탄 전야입니다. 이토록 특별한 밤에 이 광장에 계신 걸 보니 분명 오랫동안 이 날을 꿈 꾸셨을 것 같은데, 제 추측이 맞았나요? 실은 제가 오늘을 간절히 기다려 온 터라 반가움에 물어봤습니다. 다른 날도 아닌 12월에 24일에 구시가 광장 (Staroměstské náměstí)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천문 시계(Pražský orloj) 위에서 어깨 부딪힌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니까요.
그나저나 발 아래로 보이는 축제 풍경이 정말 아름답지 않습니까. 동유럽 그 중에서 프라하의 겨울밤은 보고 있으면 어쩐지 몽롱합니다. 빨강이라 해도 좋을 진한 주홍빛 가로등 조명이 이른 오후부터 도시 전체를 덮고 있으니까요. 광장의 불빛은 마치 도시 전체에서 흘러 들어온 붉은 강물이 고여 있듯 선명하고 화려합니다. 이 광경을 볼 수 있는 건 역시 이 천문 시계탑뿐이죠.
올라가기 전에 정시마다 펼쳐지는 이벤트도 감상하셨습니까? 금색의 닭이 울고 두 개의 문으로 12 사도들이 돌아가며 얼굴을 비추는. 이 시계가 완공된 것이 1410년. 700년이 넘었으니 그간 몇 번이나 닭이 울었을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았을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군요.
인파로 꽉 찬 전망대를 벗어나니 좀 살 것 같군요. 후회 없이 감상하셨나요. 시계탑은 내일 다시 올라갈 수 있지만 광장의 축제는 오늘이 절정일 테니까요. 늦었지만 제 소개를 해볼까 합니다. 저는 여행하는 사진가입니다. 내년이면 십 년이니 길다 할 수 없지만 그간 제법 많은 곳들을 다녔고요. 흔히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하나의 고향이 있다고 하죠. 여행자로서의 자신이 태어난 또는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도시. 저에게는 이곳 체코 프라하가 그렇습니다. 왜, 남자는 평생 첫사랑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십 년간 여러 곳을 여행하며 종종 이곳을 그리워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올 거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죠. 그리고 그날이 크리스마스이길 줄곧 열망해왔습니다. 아쉽게도 함께 오자고 약속했던 이는 진작에 제 곁을 떠났지만 혼자라도 이렇게 꿈을 이룬 것이 얼마나 기쁜지요.
조금 전 시계탑에서 광장을 내려다보는 데 아홉 해 전 봄날과 오늘이 연결되어 있는 것만 같더군요. 그 사이의 일들은 그저 이 순간을 위한 과정인 듯. 어쩌면 나는 오늘을 위해 여행한 게 아닐까, 이 날을 위해 태어났는지도 몰라. 하하, 너무 거창한가요. 조명 탓입니다. 사람을 쉽게 취하게 만들어요. 술에도, 감상에도.
꼭 저와 같은 꿈을 꾸지 않으셨더라도 크리스마스 시즌에 프라하에 있다니, 대단한 행운입니다. 전 세계에서 이만큼 크고 화려한 크리스마스 마켓은 드무니까요. 신기하죠. 시끌벅적한 축제 속에 들어와 있으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데 새해가 되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니. 게다가 여행자들에겐 오늘 하루가 축제의 첫날이자 마지막날이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 먹거리와 마실거리, 체코 전통 수공예품 그리고 흥겨운 거리공연까지 부지런히 즐기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동유럽 겨울 날씨가 꽤 매서운 편이지만 따뜻하게 데운 와인(svarak)잔 손에 쥐고 홀짝대다 보면 축제의 불 꺼지는 밤 열 시 까지는 끄덕 없지요. 오히려 눈이 내려 분위기 돋워 주길 기대합니다.
프라하는 처음 그리고 짧게 머문다고 하니 둘러볼 만한 곳들을 몇 곳 추천해 드릴게요. 도시를 반으로 가르는 블타바(Vltava) 강을 중심으로 왼쪽에선 프라하 성과 그 주변, 오른쪽은 역시나 구시가지가 볼 만합니다. 도시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우아한 건물은 사실 성이 아니라 성 비투스 대성당(Katedrála Sv. Víta)입니다. 사암으로 만들어져 거무튀튀한 성당의 내외부를 감상하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저는 알폰스 무하(Alfons Mucha)가 만든 스테인드 글라스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간다면 눈여겨보길 바랍니다.
참, 체코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이 뭔지 아시나요. 바로 맥주입니다. 물론 족발 요리 꼴레뇨(Koleno), 굴뚝빵 뜨르델닉(Trdelnik)도 있지만, 세계에서 맥주를 가장 많이 마시는 체코 사람들의 맥주 사랑과 자부심을 보면 맥주를 꼽을 수밖에요. 체코 맥주를 제대로 경험해 보려면 프라하 성 근처 400년 업력의 스트라호프 양조장에 방문해 보세요. 그 앞에 있는 스트라호프 정원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전망대입니다.
블타바 강에 놓인 다리 중 가장 유명한 카를교(Karlův most)는 이미 아실 테죠. 1402년 완공돼 1841년까지 양쪽을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였습니다. 늘 화가들의 작품과 거리 악사들의 공연 그리고 관광객들로 북적여서 하루에도 몇 번을 왕복하곤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다리가 곧지 않고 조금 휘어진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것인데, 이 덕분에 강한 물살에도 무너지지 않고 70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죠.
유명 관광지 외에 제가 좋아하는 곳은 프라하 시민 회관 1층에 있는 카페입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한 프라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입니다. 크리스마스 장식도 되어있을 테니 저도 다시 가 봐야겠네요. 마지막으로 하나 더, 리그로의 과수원(Riegrovy sady)입니다. 프라하 중앙역 너머 있는 언덕 위 공원인데 언젠가 과수원으로 운영됐었나 봅니다. 여기서 보는 프라하 뷰가 일품이더군요.
실은 며칠 전 프라하에 도착했을 때 예약해 둔 호텔이 난 데 없이 사라져서 무척이나 당황했습니다. 한겨울에 낯선 도시에서 노숙을 할 판이었으니까요. 급히 수소문을 해서 민박집에 묵게 됐는데 그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매일같이 와인 파티를 하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알려 드린 리그로의 과수원 전망대 역시 사장님의 추천이고요. 어찌 보면 호텔에 묵지 못한 게 행운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해프닝이 여행의 묘미 아닐까요. 물론 정말로 노숙을 했다면 얘기가 다릅니다만. 하하.
오늘 저와 나눈 대화도 그쪽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되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낭만 가득한 광장에서 남은 크리스마스도 행복하게 보내시길, 앞으로의 여행에도 행운이 따르길 바랍니다.
이 글은 여행 포토그래퍼 김성주 작가가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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