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 화) 답은 도서관에 있었다.

글 쓰고 싶은 자, 글이 있는 곳으로 가라.

by 옹봉
⏱️ 출근 준비: 6:30 기상 / 7:00 조식 / 8:00 외출


6시 반쯤 눈을 떴다. 잠을 깊게 못 잤다. 푹 자고 싶었지만, 낯선 공간에서 내 무의식이 밤새 경계 태세였던 것 같다. 조식을 먹고, 조금 일찍 숙소를 나섰다. 숙소 양 옆에 크게 있는 스타벅스를 산책하듯 지나갈 생각이었다. 회사원들의 아침 풍경을 보고 싶어서. 정신을 깨우기 위해 모닝커피 한 잔씩 사들고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자극받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장인 관성을 탈피하고자 이런 실험을 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직장인이 모인 아침은 활기차다. 분주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저마다의 이유로 우리 모두는 일에 쫓기듯 살아가니까.



아직 개관 전인 서울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9시가 얼마 안 남은 시각, 바쁜 걸음으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바라보며 이상한 기분이 든다. 불과 지난주까진 나도 분명 저 세계에 있었는데, 오늘만큼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온전히 내 선택으로 시작하는 하루에서, 내리쬐는 태양만큼 강렬한 자유의 감각을 느꼈다.


⏱️ 도서관 출근: 9:00 서울도서관 → 9:30 손기정도서관


도서관이 문을 연다. 열린 문 사이를 경쾌하게 지나 1층, 2층ㅡ 짧은 서울도서관 구경을 마치고. 오늘의 목적지인 손기정문화도서관으로 곧장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나의 인생 공간을 마주한다.



황홀하다는 표현이 알맞겠다. 책들에 둘러싸인 멋진 기분을 느끼며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이곳저곳 위트 있는 자리 배치가 특히나 인상적이다. 혼자서 오롯이 집중 가능한 원목의 1인용 원형 테이블, 중세시대 귀족 가문의 집에서 가져온 듯한 긴 식탁, 널찍하게 사용 가능한 캠핑 의자 4인석, 노트북이 가능한 자리, 신발 벗고 편하게 앉아 읽을 수 있는 자리 등 다양하다. 특히 1인석 자리 배치 중 멋진 곳이 많은데, 나는 앞의 창을 통해서는 초록 잎이 보이고, 양 옆과 등 뒤로는 사방이 온통 책인 자리를 골랐다.



모양도 색깔도 키도 두께도 제각각인 컬러풀한 책들에 둘러싸여 글을 쓰는 기분이란... 말로 표현이 힘들 정도로 좋다. 황홀하다ㅡ라는 표현이 알맞으려나. 내가 이렇게 책을 좋아했던가? 잔뜩 기분이 들떠서는 평생을 읽어도 다 읽지 못할 책들을 구석구석 구경한다. '우와ㅡ 우와ㅡ' 연신 감탄하면서.


⏱️ 오전 집중 근무: 9:30 ~ 12:00 손기정도서관



'글쓰기'로 검색해서 나오는 책들 중 마음에 드는 걸로 6권을 골랐다. 수많은 책들 중 내가 원하는 걸 딱 정해서 쏙쏙 찾아내는 기분도 참 좋다. 한 권은, 위험하다고 추락 주의라고 써붙여진 사다리까지 서슴지 않고 턱턱 밟고 올라가 집어 내렸다. 왠지 용감해진 기분에 우쭐해진다.


모든 과정이 글쓰기에 영감이 된다. 그저 글 쓰는 것에 집중하고 싶어서 찾은 공간인데, 잔뜩 영감을 받아 30분 만에 글 하나를 뚝딱 써 내려간다. '글 쓰려는 자, 글이 있는 곳으로 가라'는 말이 떠오른다. 도서관의 모든 것, 거기에 있는 모든 요소들이 나의 글쓰기를 돕는다.


'작가의 루틴' 책을 읽으면서는, 기성 작가들도 루틴에 대해 이토록 고민하는구나ㅡ 하며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낀다. 아직 글 쓰는 사람도 아니고, 작가라도 부를 수도 없지만 왠지. 나도 지금 나만의 루틴을 짜보겠다고 이렇게 고군분투하고 있으니까. 맞게 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며 등단하여 활동 중인 시인과 나를 동일시해 본다.


정서경 작가의 '나의 첫 시나리오'의 프롤로그만으로, 나는 감화된다. 그녀의 말속에, 내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전부 담겨있다.


나는 어쩌면, 그녀가 미국에서 깨달은 것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이름도, 나이도, 부모도, 다니는 학교도 다 지워지고 나니…… 갑자기 깨닫게 되는 게 있었다.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그런 것들이 나 자신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지워질 수 있는 것들이었어. 다만 꿈은 지워지지 않았다. 내가 만약 시나리오도 쓸 수 없다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


나 역시도 지워보고 싶은 것이다. 당연히 내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 빛나는 것들. 화려한 것들. 불행한 것들. 억울한 것들. 성질나는 것들. 나에게 점철된 모든 것을 싹 다 걷어냈을 때, 나에게 무엇이 남는지ㅡ 실험해보고 싶은 것이다. 그때 나에게 남는 것이 진짜 ‘글쓰기’가 맞는지. 작가의 꿈은 진정 내 것인지.


⏱️ 조기 퇴근: 오후 12시 반. 회사의 긴급 업무 발생으로 작가 루틴에 오후 반차.


뜻밖의 공간에서 한없이 벅차오르던 그 순간, 어김없이 위기가 발생했다. 회사에서 급한 메일이 왔다. 휴가 중이지만, 당장 해결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작가로서의 루틴은 오전 근무 만으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 새벽까지 업무를 처리했다.


예상치 못한 현실 개입이었지만, 나는 지금 작가로 살고 있기 때문에ㅡ 갑작스레 조기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심지어 엘리베이터에서도 책 읽기를 놓지 않았다.


비록 오전의 에너지를 오후까지 이어가진 못했지만, 나에게 가장 강력한 글쓰기 동력을 발견한 소중한 날이었다.


그리고, 작가로 살고 싶다는 생각. 창작자로 살고 싶다는 생각에 확신이 든 날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이 되기로 결정하면, 못할 일은 없다.” ㅡ 정서경, '나의 첫 시나리오' 프롤로그 중.


나는 지금, 진짜 나로 살기 위해 이 실험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는 확신했다. “나는 쓰는 사람이고 싶다.”


Day 2 요약 키워드

출/퇴근: 09:30 -> 12:30 손기정 문화 도서관

근무시간: 총 3시간 (조기 퇴근)

생산성: 글 3편 + 독서 6권 탐색

✅오늘의 깨달음: 환경이 루틴을 만든다. 책에 둘러싸인 감각이 최고의 생산성 트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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