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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Sep 12. 2021

소식, 이것만 있으면 됩니다

6년째 소식(小食)을 하고 있습니다 -제4화-


지난 화에서는 소식을 하면 좋은 점을 이야기해보았는데요, 오늘은 소식에 필요한 준비과정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금 당장 소식을 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해요. 이 세가지만 있으면 됩니다.


수첩, 집게, 작은 그릇


첫 번째는 수첩입니다. 우선 수첩을 펼치고 페이지 상단에 오늘 날짜를 적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기 전까지 먹은 모든 음식을 적습니다. 시간 순서대로 먹은 음식과 그 양을 적으세요. 잠들기 전에 한꺼번에 적으려고 하면 기억이 잘 나지 않으니 그때그때 기록하는 게 좋습니다. 저는 식사일기를 적을 때 아침, 점심, 저녁은 기본이고 중간중간 간식으로 먹은 것도 다 적었습니다.


식사일지를 적을 때 포인트는 구체적으로 적는 것입니다. 방울토마토 3알, 비스킷 1개, 케이크 4입, 고기 4점 이런 식으로요. 한번 비교해볼까요.


떡이 5개 놓인 접시 하나를 비웠다고 가정해보지요. 그러고 나서 떡 1 접시라고 적었을 때와,  떡 5개라고 적었을 때 어떤가요? 느낌이 다르죠. 똑같은 양을 숫자만 바꿔 적었을 뿐인데 떡 1 접시라고 하면 많이 먹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1 접시 더 먹어도 될 것 같은 기분마저 들어요.


한 접시밖에 안 먹었네 vs 5개나 먹었어의 차이. 더 먹고 싶다 가도 떡을 5개나 먹었으니 그만 먹어도 되겠다면서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이 차이, 이해되셨지요?


식사일기를 적으면 어떤 점이 좋을까요? 먼저, 내가 무엇을 얼마나 먹었는지 알 수 있어서 식사량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평소에 음식을 다 기억하면서 먹지 않습니다. 어제저녁에 뭘 먹었는지 질문을 받으면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고 생각을 해야 하는 것만 봐도 그렇지요. 입이 심심해서 먹은 간식은 어떨까요? 꽤나 곰곰이 생각해야 기억이 납니다.


저는 식사일기를 쓰면서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혹은 더 자주 음식을 먹고 있었음에 놀라곤 했는데요. 돌이켜보면 그 놀란 경험 자체가 소식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충분히 먹었는데 또 뭔가를 먹으려고 하고 있음을 '인지'하게 되는 건 '기록'을 한 순간부터이니까요.


이렇게 구체적으로 식사일기를 적는 데는 중간점검의 기능도 있습니다. 배고프지 않은데 먹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자제하는 계기가 되어 세 번 먹던 간식을 두 번으로 줄일 수 있고, 다음 끼니때 먹을 양을 결정하는데도 참고가 됩니다. 소식을 시작하신다면 곁에 두고 때때로 펼쳐 보면서 소식이 자리 잡혀 습관이 될 때까지 쓰시는 걸 추천합니다.


두 번째는 집게입니다.

어떤 모양이나 크기가 되었든 다 좋습니다.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는 집게를 깨워 소식에 활용하세요. 집게의 용도는 무엇일까요? 지금 다 먹지 않으면 맛이 없어질 거라는 걱정을 붙들어 두는 용도입니다.


비스킷 한 봉지를 열어서 먹다가 이제 더는 먹고 싶지 않은 시점이 왔는데 하필 딱 하나가 남았다고 가정해 보지요. 이때, 고작 하나 남은 걸 남기자니 어딘가 좀스럽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저도 예전에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남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버리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남겼다가 내일 먹으면 됩니다.


마지막 남은 비스킷 한 조각일지라도 남기는 것이 소식 습관을 들이는 데는 상당히 유의미한 행동입니다. 식욕과 식욕이 없는 상태를 구별하고 스스로의 욕구를 존중하는 연습을 하는 것도 소식의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이에요. 비스킷 한 조각을 남길 수 있으면 다음번에는 두 조각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소식에 한 걸음 다가갑니다.


과자도 빵도 초코바도 아이스크림도 집게만 있으면 내일 또 행복할 수 있습니다.  깔끔하게 집게로 집어서 보관했다가 내일 또 맛있게 드세요!


세 번째는 작은 그릇입니다.

평소 식사를 할 때 쓰는 밥그릇을 작은 사이즈로 바꾸시길 권합니다. 저는 소식을 결심했을 때 기존의 밥그릇을 그것의 절반 정도 되는 접시로 바꾸었습니다.

액체가 담길 만큼 오목하면서도 얕은 앞접시였는데요. 같은 양의 음식이라도 큰 그릇에 담고 위쪽이 비었을 때보다, 작은 그릇에 가득 차 있을 때 심리적으로 포만감이 있습니다.

큰 그릇에 담아서 먹으면 식사를 마치고도 추가로 음식을 찾기 쉬우니, 소식을 시도하신다면 그릇 크기, 꼭 바꿔보시길 권합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소식을 할 때 준비물은 이렇게 간단합니다. 이 방법으로 소식을 하루 이틀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어 보입니다. 한 그릇 먹던 밥을 반으로 줄이고 간식도 절반으로 줄였다고 해보지요.


자, 그렇다면 이제 내 삶에서 먹는 즐거움은 아예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과연 계속해서 소식을 이어갈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실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지 않습니다. 소식을 해도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답니다. 저 역시도 소식을 하기 전에는 먹는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그렇지 않았어요.

그 이유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건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제가 만든 그래프입니다.





제가 여러 가지 상황에서 저의 만족감을 솔직하게 들여다봤을 때, 다행히도 음식은 처음 한 입이 가장 맛있고, 먹다 보면 조금씩 그 만족도가 줄어듭니다. 위 그래프처럼요.


혹시 음식이 맛있어서 먹는 다기보다 눈앞에 있어서 먹고 있는 경험, 해보신 적 있지 않나요?  식사를 시작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먹는 음식의 양이 늘어나더라도 미각적 만족감이 계속 올라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줄어들고, 나중에는 변화가 없지요. 내가 지금 뭘 먹고 있는지 이 음식이 무슨 맛인지도 잘 모르고 먹고 있는 순간이 옵니다. 결국 고만고만한 만족감이라는 거죠. 잃어도 크게 아쉽지 않습니다.
 

음식을 먹으면 먹을수록 먹는 즐거움도 점점 커진다면 저는 아마 소식에 실패했을 거예요. 즐거움을 놓쳤다는 공허함을 견디지 못했겠지요. 그런데 신기하고,  다행스럽게도 소식을 해도 먹는 즐거움의 양이 그전과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먹는 즐거움, 적게 먹으면서도 누릴  있습니다.


#소식하는방법 #소식하기 #소식 #적게먹기 #적게먹는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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