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트 5. 주말 아침, 드립커피 한 잔

먹어대다 떠올린 쓸데없는 생각들, 그 다섯번째

by 어니언수프


우리 집에는 아주 단순한 형태의 원두 핸드밀이 있다.

손잡이가 위에 달려 시계 방향으로 돌리게끔 만들어 둔, 아마 시중에 3만원쯤 할 것 같은 조그만 기계다.

콜롬비아에서 수 년의 회사 생활을 지내다 돌아오신 아빠가 커피의 매력에 빠진 나머지 어디선가 사 오신 것이다. 커피는 좋아하지만 굳이 그걸 집에서 만들기엔 번거로워 수 년 간 단 한번도 돌려 보지 않았던 이 핸드밀에 뒤늦게 푹 빠졌다.


내게 커피는 이제 습관이자 필수품이다. 주말이 되었다고 커피를 못 마시게 하면 내 몸과 정신은 아우성을 친다. 머리 아파, 무기력해, 빨리 카페인을 들이키란 말이야. 딱 한 잔이면 돼.


사실 커피는 먹는 것만 좋지, 내리는 방식, 기계 같은 것에는 지금도 관심이 크게 없다. 이 글을 쓰는 중에도 '핸드밀'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는데, 다른 어떤 글에도 이런 사고방식이 언급돼 있지만 이 집의 부엌은 내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먹는 건 더럽게 좋아하면서 도구에 투자하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그만 핸드밀 기계는, 그리고 세트로 딸린 조그만 서버와 드리퍼는 주말 아침 내 몸과 정신을 깨우는 데 톡톡한 지원군이 돼 가고 있다. 어느 날 호기심에 아빠를 따라 한 번 돌린 게 횟수가 늘어 간다. 기계에서 거칠게 소리를 내며 사라지는 커피콩들, 소복하게 내려앉는 짙은 갈색의 가루, 기계를 돌리기 위해 드는 얼마간의 팔의 노동, 그리고 거실을 가득 채우는 풍부한 커피향, 이 모든것이 주말의 텐션을 살짝 올려준다. 에스프레소를 내린 커피가 입맛에는 더 취향이라면서도 드립 커피 만들어 마시는 시간을 기대하는 건 이런 요소요소들 때문이다.


원두를 직접 갈아 내리는 일은 단순하지만서도 감각의 종합선물세트와 같다. 귀여운 커피콩과 소복이 내려오는 커피 가루, 고소하게 넘치는 커피향, 드르륵 드르륵 귀를 자극하는 소리, 그리고 내 팔과 손이 느끼는 운동감까지.


이쯤 되면 주말 아침에 '커피 마시고 싶어.' 할 게 아니라, '핸드드립 만들어 마시고 싶어.' 라고 표현해야 적절하겠다.

원두는 콜롬비아 출신의 후안발데즈 Macizo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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