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모두 자연스러운 일이야. 처음에 나는 어른이 된 뒤 12년 동안 일을 하면서 나만의 인생을 살았어. 그리고 결혼했지. 처음 임신한 순간부터 나는, 말하자면 나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어. 아이들에게. 그 후 12년 동안 나는 단 한순간도 혼자였던 적이 없어. 나만의 시간이 없었어. 그러니까 이제 다시 나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해, 그뿐이야.”
<도리스 레싱, 19호실로 가다 p.290>
이십 대 때 난, 어디든 흘러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르바이트도 공부도, 직장도 내가 원하는 걸 찾으려 노력했고 거기에 몰두했다. 돈을 벌고 제앞가림을 해내며 진정한 자유와 해방도 느꼈다. 선택에 책임지는 일도 버겁지 않았다. 선택을 후회하는 것도 할 만했다. '나'만 털고 돌아서면 되는 일이니. 무엇이든 그 중심에는 '내'가 있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원하는 사랑과 믿음을 보여준 사람이었고 내 선택에 의해 결혼을 하고 아이도 가졌다. 철저히 '내가' 중심이던 인생에서축을 옮겼다. 집안의 가장인 '남편'과 책임지고 돌봐야 할 '아이들'에게로. 인생의 축을 옮긴 건 삶을 뒤흔드는 꽤나 큰 일이었다.
아내와 엄마 노릇을 아무렇지 않게 해 낼 줄 알았다. 그게 당연한 거니까. 당연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게 얼마나 고도의 정신수양이 필요한 일인지 그땐몰랐다.
'엄만 좋겠다. 학교도 회사도 안 가니깐.'
아이가 뱉은 말에분통이 터져도 별 수 없었다. 아이와 남편이 없는 평일 6~7시간 동안, 내자유가 얼마나 보장되는지일일이 따져볼 수 없었다. 내가 바라는 공감을 해 주지도 않을뿐더러,궁금해하지도않을 거란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매일 일곱 시간씩 주어지는 자유가 실제로는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분노에 휩싸였다. 수전은 시간의 압박으로부터 잊지 말고 이런저런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단 한순간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녀는 결코 무아의 경지에 빠질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잊고 자신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
분노가 그녀를 잠식했다. 그녀는 포로였다. 매슈에게 반드시 말해야 했다. 하지만 뭘? 수전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감정, 그녀 스스로 경멸하는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감정들이 너무나 강렬해서 떨쳐버릴 수 없었다. <도리스 레싱, 19호실로 가다 p.295-296>
꼭 내 맘과 같은 구절을 반복해 읽고 또 읽었다. 알 수 없는 이 억울함도 분노에서 비롯된 것일까. 자유와 해방을 상실한 데에 따른 분노는 어디서부터 날 옭아매고 있을까. 난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수전처럼 오래된 호텔방을 빌려 한 없이 창밖을 바라봐야 할까. 질문이 계속될수록 쓰고 싶었다. 아니, 써야만 했다.
글을 쓴다는 핑계로 화장대와 식탁을 오가며 내 공간을 찾는다. 그것도 아주 필사적으로. 아이와 남편이 있어도 10분이든 1시간 이든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읽고 쓴다. 그렇게라도 내 영역, 내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일 테니까.
올봄, 창고 방 한쪽에 긴 책상을 갖다 놓았다. 원래는 내 작업실로 쓰려고 했지만 둘째의 키보드와 남편이 애지중지 아끼는 어항이 갈 곳을 잃어 그곳에 올려두었다. 커다란 창문이 액자처럼 걸린 방. 언젠가는 이 방이 나만의 공간이 되어주길소망한다.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공간에서 내 시간을 보내야지. 즐겁게, 어둡게, 달콤하게. 그리고 아주아주 부드럽게.
어두운 강물로 떠나갈 마음 같은 건 들지 않도록.
남편과 아이의 물건들로 가득한 책상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약 네 시간이었다. 그녀는 즐겁게, 어둡게, 달콤하게 그 시간을 보내며 아주아주 부드럽게 강변을 향해 미끄러졌다.
...
그렇게 누워서 가스가 작게 쉭쉭거리며 방 안으로, 그녀의 허파 안으로, 뇌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꽤나 만족스러웠다. 그녀는 어두운 강물로 떠갔다. <도리스 레싱, 19호실로 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