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밝음을 증명했던 날
“유년이라는 벗을 수 없는 옷을 입은 채 커버린 사람 곁에 서 있고 싶다.”
<여름과 루비_박연준, 작가의 말 중>
유년/ 옷/ 커버린/ 사람/ 곁/, 유년이라는/ 벗을 수 없는/ 옷을 입은 채/ 커버린 사람 ……. 단어가 흩어지고 모이길 수차례. 엄지와 검지 사이 끼인 얇은 종이 한 장이 느닷없이 무거웠다. 내 시선을 오래도록 붙잡은 이 한 문장이 접어둔 마음에 짙게 내려앉았다. 이유가 뭘까.
유년이 시절이라는 것. 유년은 ‘시절(時節)’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 멈추거나 끝나지 않는다. 돌아온다.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 컸다고 착각하는 틈을 비집고 돌아와 현재를 헤집어놓는다. 사랑에, 이별에, 지속되는 모든 생활에, 지리멸렬과 환멸로 치환되는 그 모든 숨에 유년이 박혀있다. 붉음과 빛남을 흉내 낸 인조보석처럼. 박혀있다. 어른의 행동? 그건 유년의 그림자, 유년의 오장육부에 지나지 않는다. <여름과 루비_박연준, p.86>
불현듯 떠올랐다. 할머니가 휘두르는 빗자루를 피하며 자지러지게 울던 날. 보일러실에 숨어서 우는 엄마의 뒷모습. 안도와 슬픔으로 가득 찼던 내 심장. 맞고 게임 속으로 빨려 들어간 아빠. 막 솟아오르기 시작한 내 가슴을 만지려들 때 올라간 아빠의 입꼬리. (딸의 2차 성징을 기뻐한 아빠의 어설픈 장난이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혼자이고 싶던 날들. 유년의 그림자는 매 순간 모든 숨에 붙어있었다. 모양과 형태를 바꿔 ‘이러면 모르겠지 하는’ 얼굴로. 검고 짙은 그림자를 서랍 깊숙이 밀어 넣었다. 다시는 꺼낼 일이 없을 거라며. 원래부터 없던 거라 믿으며.
시장 골목 안, 2층 주택에서 20년을 살았다. 널찍한 마당에 우뚝 솟은 감나무. 봄이면 빨간 장미 넝쿨이 사다리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장미 넝쿨 아래에 자주 섰다. 그들의 피사체가 되기 위해 정수리에 리본핀을 꽂고 어깨에 한껏 뽕이 들어간 블라우스를 입고 두 손으로 얼굴에 꽃받침을 했다.
사진기와 사진으로 인해 우리는 시시때때로 자기 삶을 살피고, 삶 가운데 이야기가 담긴 지점이 어딘가를 가늠하게 되었다. 삶의 중요한 변곡점이 곧 다가오리라는 예감이 들면 우리는 사진기를 들고 그곳으로 나아간다. 미래에 두고두고 회상할 이야기가 곧 일어나리라는 기대 때문에 우리는 번거로움도 마다 않고 사진을 찍고, 현상하고, 앨범에 끼워 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늘 그렇듯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어느 것이 이야기가 담긴 경험이고, 어느 것이 무료하게 반복되는, 다시 말해 사진기를 들 필요가 없는 경험인지를 구분하게 된다. <이야기하는 법, 양자오>
그렇다. 사람들은 미래에 두고두고 회상할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엄마와 아빠도 그랬다. ‘너에게만큼은 우리가 이렇게나 해줬단다.’란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 화장대 서랍에서 묵직한 까만 사진기를 꺼냈다. 난 그들의 욕망을 대변하기 위해 곱게 키운 귀한 딸이 되었다. 뇌성마비인 첫째 딸을 대신해. 백일 만에 하늘로 떠난 둘째 딸을 대신해. 그들의 한풀이 대상이 되었다. 기꺼이 운명적으로. 누가 봐도 그럴듯하게.
아빠와 엄마는 약속이라 한 듯 집 밖에서만 좋은 사람이었다. 그들은 직장에서든 동네서든 사람 좋다는 얘기를 듣고 살았다. 하지만 내 앞에선 아니었다. 아빠는 엄마를 사사건건 무시했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증오했다. 서로를 향한 불평과 불만, 비난의 말이 고스란히 내게 흘렀다. 10대 땐 엄마의 대변인이었다 20대 땐 모든 사건의 방관자였다. 엄마의 넋두리에 질려 아빠처럼 집 밖을 겉돌았다. 엄마를 내 인생에서 빼내려 안간힘을 썼다. 그 결과 난 그들처럼 안과 밖이 다른 사람으로 진화했다.
“사랑받음을 증명해 보여야 하는 일은 사랑받는 아이는 할 필요가 없는 일이란 걸 몰랐다. 몰랐으므로 나는 공들여 사랑받는 역할을 연기했다.” <여름과 루비_박연준, p.147>
여름과 루비의 여름처럼 꾸준히 밝음을 증명해 보였다. 진짜로 밝은 아이들은 할 필요가 없는 일이란 걸 몰랐기에. 몰랐으므로 난 최선을 다해 밖에서 해맑고 발랄한 척 연기했다. 밖에선 온갖 명량을 내뿜고 돌아와 집에선 죽은 듯 있었다. 크게 웃거나 말하지도 않았다. 자고 먹고 씻고 배출할 때 내는 최소한의 소리만 냈다. 돈을 번다는 핑계를 대면 얼마든지 입을 닫을 수 있었다. ‘피곤해.’ ‘바빠.’ 두 문장은 내게 제일 만만한 가림막이었다. 각자도생. 무소식이 희소식을 내 삶의 표본으로 삼고 그들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시인 박연준은 말한다. 소설을 쓰기까지 멀리 돌아왔다고. 하지만 그건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결국 내가 삶에서 ‘찢어진 페이지’를 쓰고 싶어 한다는 걸 모 편집장님께 덕분에 알게 되었다고. 그녀가 쓴 소설을 읽었기에 나 또한 삶의 찢어진 페이지를 들여다 볼 수있었다. 가끔 서랍 깊숙이 손을 넣어본다. 차마 벗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옷이 제 자리에 있는지 확인한다. 어쩔 땐 그 옷을 입고 문 뒤로 가 숨는다. 그러면 훌쩍 커버린 내가 그 옆을 지킨다. 그리고 고즈넉이 바라본다. 이젠 그럴 수 있다. 그래 줄 수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