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는 것과 숨기는 것의 차이
3.
“양념 한 마리요. 고구마튀김 많이 주세요.”
화영이 입맛을 다시며 통닭집 앞에 서 있다. 빨간 양념으로 코팅된 치킨이 우르르 쏟아진다. 아줌마가 고무장갑을 벗고 노란 고무줄을 벌려 닫히지 않아 올려두기만 한 뚜껑에 끼운다. 그리ᅟ곡 통닭과 절인 무, 콜라, 젓가락 세 개를 까만 봉지에 넣고 화영에게 건넨다. 화영은 진하와 엄마가 기다리는 가게로 빠르게 걷는다.
굵다란 금반지를 낀 손님이 오면 꼭 찾는 게 있었다. 부지런히 집을 드나들며 ‘뻐꾹, 뻐꾹.’ 정시를 알리는 시계. 뻐꾸기시계가 팔린 날은 화영이 통닭을 먹는 날이기도 했다. 가게의 자랑거리 겸 구경거리인 뻐꾸기 소리가 화영은 지겹다 못해 싫었다. 뻐꾸기가 울 때마다 시간을 자꾸 잃어버리는 것 같아서. 한 시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하루는 너저분하게 길기만 해서. 조화롭지 못한 시공간 뚫고 불쑥 찾아오는 외로움이 두려웠다. 다행히 통닭을 먹을 때마다 메아리처럼 울리는 소리가 점점 옅어졌다. 마지막 뻐꾸기시계가 팔리자 시간마다 보채는 소리도 함께 사라졌다. 화영의 시간도 균형을 이뤄갔다. 하지만 더 이상 통닭을 먹을 일도 없었다.
‘부우-웅-’
하얀 연기를 뿜어내는 소독차 뒤로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여 뛰어간다. 화영은 별 걸 다 즐거워한다는 눈빛으로 아이들을 쳐다본다. 그런 눈으로 바라보면 단숨에 스물다섯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화영은 빨리 스물다섯이 되고 싶었다. 이십 대의 중심에서 어디든 자유롭게 흘러갈 자신의 미래를 기대했다. 누렇게 빛바랜 선풍기가 요란한 소리를 낸다. 달달 날개가 떨리는 소리가 째깍 소리를 집어삼킨다. 화영의 엄마는 커다란 부채를 잡고 모기를 쫓는다. 연기 탓일까. 부채에 치여 생을 마감하는 모기가 수두룩하다. 진하가 양손에 수박바를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둘은 나란히 아이스크림을 물고 노란 커튼 안으로 들어간다. 화영이 티브이 앞으로가 전원 버튼을 꾹 누른다.
“아직 시작 안 했지? 다행이다. 근데 이거 보고 가도 돼?”
“티브이가 맛이 갔는지 9번만 나오더라고. 오는 길에 할머니한테 들러서 늦는다고 말했어.”
“근데 수요일에서 화요일로 요일 바뀌니까 이상하다. 안 그래?”
“난 뮤직뱅크가 더 이상해. 음악 은행… 이건 좀 아니지 않아?”
분홍색 입술 사이로 초록색 혓바닥을 내밀며 둘은 생긋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