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쌓인 올 2월 어느날, 아파트 산책길을 걷다가 꼬마 친구를 만났습니다. 눈 뭉치를 이리 저리 굴리더니 갑자기 제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제 눈에는 그냥 눈뭉치인데 자꾸 눈사람이라고 우깁니다. 그래서 눈사람 모양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줬더니, '금방 태어난 아기 눈사람'이라 모양이 둥글지 않다고 합니다. 말도 안돼는 소리라고 저도 우겨 보았습니다. 꼬마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습니다.
"네 살인데요. 네 살 이기면 기분 좋아요?"
전 조금도 이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냥 눈사람을 닮지 않아서 다시 물어본 것 뿐입니다.
그랬습니다. 지금껏 눈사람 몸통과 머리는 둥글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꼬마 아이와의 소통에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고정 관념은 무서운 자기 애착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나치면 고집이 되고, 이 고집이 견고해지면 불통이 됩니다. 고집불통이 되어버린 늙은 아재와 대화를 나누는 네 살 짜리 꼬마의 눈에 저는 얼마나 한심한 모습으로 보였을까요?
처음으로 '금방 태어난 아기 눈사람'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 날 아이와의 만남은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집으로 바라본 눈사람이 아니라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눈사람을 경건한 마음으로 영접해 봅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기 눈사람 군집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