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의 뜨거운 햇살과 대지를 적시던 비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초록'의 향연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초록이 지나면 식물들은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종족 복제를 마치면 스스로 잎을 떨어뜨리고 기나긴 겨울 나기를 준비합니다. 흰 눈이 대지를 덮어버린 계절에는 모든 것이 획일화되어 보이지만, 초록은 보는 높이와 시각에 따라 우리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합니다.
한 줄기 소나기가 지나간 뒤, 두 장의 연잎에 눈망울같은 빗물이 모여 있었습니다. 물방울 모양과 크기는 달라도 자신 크기만큼 하늘을 담고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또르륵 굴러 하늘을 풀어 놓고는 하나로 뭉칠 것만 같았습니다. 연못 정자에 앉아 두 물방울이 모이기를 기다려 보았습니다. 살랑거리며 바람이 지나가도 수은 방울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언제 한 곳으로 모일까 한참을 기다렸지만 끝내 모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30분 이상 지나갔습니다. 긴 막대로 살짝 건드려 한 곳에서 만나게 해 주고 싶은 욕심이 끓어 올랐습니다. 그러다 다시 소나기가 내리자 물방울은 점점 커지더니 연잎을 굴러 낮은 잎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자연은 간섭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되어지는 존재입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제 생각이나 의도를 드러내는 관습을 깨달은 순간, 부덕한 제 인격에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만의 이름과 의미로 존재할 때 가장 빛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