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인천공항에서 근무 중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사색한 조각들을 쏟아 내고 싶었다. 난생처음 해보는 스케줄 근무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오랜 직장생활의 후유증으로 사무실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생동적인 현장에 뛰어들고 싶어 공항을 선택했다. 매일이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생물체 같았다. 그러나,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일 하며 틈틈이 핸드폰 메모장에 한 줄을 썼다.
빨강 점퍼를 맞춰 입은 외국인 가족의 인상을 놓치기 전에 담았다. 핑크 빛 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설레는 표정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남자의 모습도 남겼다. 휴식시간에, 점심식사 후 한 줄을 더 보태고, 덜컹거리는 퇴근버스 안에서 글을 수정했다. 한 편의 글 안에는 다양한 시간과 장소가 존재했다. 매력이 되기도, 혼란함 이기도 했다. 핸드폰에 써 둔 글을 컴퓨터로 옮겨 보면 다른 느낌이 들었다. 형편없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화면 크기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줄이라도 매일 쓰는 시간을 보냈다. 다양한 글쓰기 활동을 했다. 100일 쓰기, 다양한 오감을 활용하기, 주어진 첫 문장을 활용한 글. 몇 줄 안 되는 날도 많았지만 꾸준히 했다. 퇴근 후 옷을 갈아입고 주저앉아 핸드폰을 열어 글을 고치기도 하고, 새벽 첫차를 기다리며 보완하기도 했다. 주로, 피곤한 상태로 쓴 글이라 앞 뒤 맥락이 안 맞았다. 그럼에도, 글 마감만큼은 꼭 지켰다.
코로나를 눈앞으로 목격한 곳도 공항이다. 그날의기억이아직도생생하다.공항은방학을맞아해외로가는사람, 한국을찾아관광객들로인산인해였다. 근무경력이오래된언니들은말했다. 다음달부터는지금보다서너 배는더바빠지니힘들 거라고. 1월도매일상대하는사람이 300명이될정도로많은데더많아진다니. 상상초과의인원을상대해본적없어걱정도되고, 다양한사람들을접할수있어살짝설레기도했다.
그러나, 공항은하루가다르게변해갔다. 하루평균 300명의사람이 100명, 50명.. 기하급수적으로줄어갔다. 사람으로가득차바닥을드러내지않던공항이반짝이는맨바닥을훤히드러냈다. 3월이되자, 공항은올스톱상태가됐다. 비행기, 리무진버스. 마치도미노게임처럼멈추기시작했다. 공정상점가가횡했다. 오가는사람을손으로셀수있을정도였다. 공황상태의공항이었다.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는 것도 글로 남겨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기간을 보내며 깨달은 바가 있다.
‘무슨 일이든 방법은 있다. 찾지 못하고 있을 뿐.’
쓰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장소, 시간, 상황은 문제 될 게 없구나. 찾으면 방법은 다 있구나.
써야 하는구나. 붙잡아 둬야 하는구나.
쓴 글을 낭독하는 날이면 마음이 힘들었다. 처음엔 글벗 님들의 잘 쓴 글에 감탄했다. 부러워하고 배울 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일 년이 지나니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매일 같은 자리만 뱅뱅 도는 것 같은 회의감이 들었다. 정신과 육체 모두 휴식을 갈구했다.
오랜 휴식을 끝냈다. 다시 글을 쓴다. 초고에 도움이 될 만한 옛 추억을 샅샅이 찾아야 했다. 과거에 써 둔 글이 도움이 되었다. 한 줄이 아쉬울 만큼.
오늘 하루는 내일의 과거다. 과거는 흘러가고, 흐릿한 추억으로 존재한다. 꺼내고 싶을 때 생생하게 기억되지 않는다. 텍스트로 담아야 보물이 된다. 그날의 감정과 기분, 온도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된다.
초고에게는 짝꿍이 있다. 바로 기록이다. 각자 편한 방식으로 매일을 기록해 둬야 한다. 나의 기록 저장소는 블로그다. 책 소개, 사색 가득한 글, 이런저런 삶의 이야기를 쓴다. 물론, 초고를 작성하며 블로그, 브런치 글까지 쓰느라 힘들다. 그러나, 기록을 하다 글 아이디어를 얻어 초고에 단락을 추가한 경우가 종종 있다. 많이 쓸수록 글 실력이 향상된다. 글쓰기 연습이 된다. 추억을 붙잡아 둬야 다음 작업 시 꺼내 쓸 재료가 많아지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방법은 있다. 찾으려 하지 않을 뿐.’
쓰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장소, 시간, 상황은 문제 될 게 없다. 방법은 다 있다. 추억을 보물로 붙잡아 둬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