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직서가 Dec 21. 2023

03.때로는 역진이 답이야

[초보 작가입니다]

퇴직하기로 마음을 굳혔을 때다. 세 달 조금 안 되는 육아휴직이 남아있는 걸 알았다. 천안 생활을 접고 인천으로 이사 갈 일정을 세 달 뒤로 잡았다. 우연히 발견한 거액의 비상금처럼 휴직의 발견이 반가웠다.


'해볼까?'


앞으로 있을 자유 시간을 알차게 사용할 계획들을 빼곡히 세웠다. 제일 하고 싶은 건, '매일 자전거로 돌아다니기'였다. 얼굴로 맞는 바람은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가슴이 뻥 뚫리고 자유인이 된 것 같아 일본 간사이 여행 시 나라지역을 대여한 자전거로 골목골목을 돌아다닐 정도였다.  계획만으로도 페달 굴리 듯 발이 들썩였다.


두 달 조금 넘고, 세 달은 안 되는. 기간이 참 애매했다. 이곳저곳 강의를 찾다  달 수업을 찾았다. '정리수납전문가 과정.' 지금은 흔히 사용하는 단어, TV프로그램에방영돼 익숙하다. 그때는 그렇않았다. 일하랴 애들 키우랴 어수선한 집 상태가 신경 쓰이던 참에 잘됐다 싶었다. 곧 이사도 예정되어 있으니 시점도 적정했다.


첫날, 밝고 깔끔한 톤으로 맞춰 입고 스카프로 멋을 낸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단아한 자태와 나긋나긋한 말투가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과정 설명을 했다. 이왕 하는 거 자격증 반으로 신청해 두 달간 들어야 했다. 잠시 후, 빔 프로젝트로 여러 장의 사진이 띄어졌다. 화면 가득 집안 곳곳 너저분한 상태가 가감 없이 노출되어 있었다. '악!' 간간히 탄식도 새어 나왔다. 놀란 가슴이 가라앉을 때쯤, 이번에는 정신까지 맑아질 듯한 단정하게 정리 정돈 된 사진들이었다.



"저희도 변경 후를 목표로 합니다."

"네?!"

나를 포함해 학생들이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집을 저렇게 인테리어 화보에서나 봤을 법한 모습으로 탈바꿈으로 시켜야 한다고? 불가능해 보였다. '아! 과정 잘못 신청했구나' 싶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2개월 후 우리 집은 완전히 탈바꿈되었다. 냉장고부터 주방 서랍장 칸마다. 집안의 온갖 옷장과 책장, 신발 장까지. 불필요 한 건 없애고 최소한의 물건으로만 가지런히 각 잡아 정리돼 있었다.



첫날 불가능이라 생각한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선생님이 보여준 사진은 정리 정돈 된 집안 전체였다. 초보단계에서 거대한 양에 놀라 뒷걸음을 친 것이다.

하지만 실전은 달랐다. 구역을 세분화하여 진행한다. 하루는 아이방 서랍장만 정리한다. 다른 날은 화장대 한 칸만 정리하고, 어떤 날은 일회용품만 정리한다. 작게 쪼개어 한 부분에만 집중했다. 작은 부분을 정리, 정돈, 수납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주어진 하루에만 집중했다. 달이 지나 각자의 결과물을 봤을 때 우린 놀란 토끼눈을 하고 감탄했다.

             




넓은 평야를 꽃밭으로 가꾸어야 한다고 상상해 보자. 꽃밭을 꾸밀 모종을 한가득 준비해 평야를 바라본다. '언제다 심나'라는 생각이 든다. 전진하며 꽃을 심다 보면 아무것도 심지 않은 황무지를 보지만, 황무지를 등지고 뒤로 걷는 역진의 방법으로 꽃을 심으면 내가 지금까지 심어온 꽃을 보게 된다.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 , 고명환 -



책 쓰기도 마찬가지다. 작성할 총개수를 하나씩 지워가는 방법도 좋지만, 때론 역진이 답이다. 앞을 안 보는 것이다. 자세를 휙 돌려 뒤로 걷는다. 총 개수, 남은 개수를 신경 쓰지 않는다. 대신, 오늘 써야 할 한 개를 신경 쓰고, 지금까지 쓴 개수에 만족해한다. 내겐 전자의 방식 보다 후자가 맞았다. 그렇게 하나하나 뒤를 보며 걸었다.


10월부터 초고를 다. 처음엔 앞에 놓인 마흔 개의 목차를 보고 우두커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끝내는 날이 안 보여 막막했다. 그렇다고 한숨만 쉬고 있을 순 없었다. 역진을 생각하며 오늘 글 한편 써낸 것에 날 칭찬했다. 물론, 의기소침해지곤 했지만, 내용을 떠나 한 편 마무리 지은 걸 크게 생각했다. 오늘로 딱 네 꼭지 남았다. '12월까지 다 써봐?'라는 목표가 무모한 계획 같았는데 달성이 머지않았다.



때로는 뒤로 걷는 것이 앞으로 나가는 길을 뚜렷하게 한다. 어려움을 극복할 무기가 된다.

때론, 역진의 지혜를 활용해 보도록 하자.




#초고 쓰기 #초보작가 #글쓰기

이전 02화 02.초고를 쓰는 마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