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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서가 Dec 31. 2023

06.쓰레기 같은 초고도 얻을 게 있더라

[초보 작가입니다]


10월 달력에 핑크색 하트모양 포스트잇을 붙였다.



"미친 듯이 쓰자! 쓰고 또 쓰고 미친 듯이 써라!!"  

굳은 결의를 다지는 메모였다.

달이 바뀌어 한 장을 넘기면 메모부터 떼어 다음 장에 붙였다. 그렇게 삼 개월.


한 해 가기 전에 초고를 완성하자는 목표는 다행히 달성했다. 12월 25일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갈 때 40 꼭지의 글도 마무리되었다. 목표 달성을 기뻐하고, '기특하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넸다. 내용을 떠나 해냈다는 것에 자신감이 솟았다. 힘겨운 초고를 끝냈으니 아무 생각 없이 일주일간 푹 쉴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쉬어지지 않았다.

잔뜩 쓰레기 더미를 쌓아 올린 것 같고, 내가 쓰고자 한 글이 아니었다는 생각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애초 기획부터 잘못된 걸까? 만약, 그렇다면 이 일을 어찌해야 할까? 수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떤 일이든 우리는 쉽게 '불안'에 휩싸인다. 그게 좋든, 싫든, 슬프든, 아프든. '나 여기 있어요'라며 꼭 결정적 순간에 자신의 존재를 알려준다. 불안이 내 마음을 점령하려 할 때는 알아차려 주는 게 먼저다. 그럼, 한결 마음이 편하다. '음~ 그래, 왔군. 올 줄 알았어. 이번에는 좀 늦었네'  불안은 없애려 노력할수록 마음속 에너지를 흡수해 덩치가 커진다. 강한 위력을 갖게 된다. 없애기보다 존재 자체를 인정해 버리는 것이다.         


"다 고치면 될 일!"

불안을 인정하고 마음이 편해지니 앞으로의 할 일이 보였다. 쓰레기 더미에 쓸 만한 물건 하나 없을까? 만약, 없으면 새로 쓰면 될 일이다. 주제와 방향이 꼬였다면 그것 또한 풀면 될 일이다. 미리 불안에 떤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재미 삼아 심리테스트를 종종 한다. 전생부터 향기, 물건, 특정 장소 등으로 결과를 말해주는 방식이 신기하다. 어떤 테스트에서  '소심한 관종'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누나가 관종이라고? 아닌 것 같은데." 동생에게 보내주니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심리, 성격테스트가 100% 맞지는 않는다. 전혀 안 맞는 경우도 있고, 반반 갈리는 경우도 있다. 나는 안 맞는 것 같은데 주위 사람들이 맞게 볼 때도 있다.   


초고를 완성하니 두 가지가 보였다. 하나는,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나의 인생'이었다. 다른 하나는, 수많은 다양한 모습의 '나'였다. 인생의 크고 작은 굴곡을 어떻게 헤쳐 왔고,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고 끊는지.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객관적으로 보였다. 후회와 반성, 격려와 인정의 시간이었다. 책 쓰기를 통해 비로소 진정한 자아를 마주한 것 같았다. '진짜 나'는 각종 테스트에서 의아하고, 수긍할 수 없다고 고개를 갸웃했던 '나'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생각과 감정을 텍스트로 쏟아냈기에 글은 곧, '자기 자신'이다. 한 편의 글이 순간의 나라면, 한 권의 책은 과거부터 현재의 온전한 자기 자신이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정리하기 위해 책을 쓰기 시작했다는 사람이 많다.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초고를 쓰고 두 가지를 크게 깨달았다.  

  

  첫째, 진정한 나와 조우하기에 글만큼 좋은 도구는 없다는 것

  둘째, 인생 다음 단계를 위해 정리 작업이 한 번씩 필요하다는 것      


이제 초고를 썼을 뿐이다. 거대한 퇴고의 산은 오르지도 않은 상태다. 봉우리 몇 개를 지나야 정상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알지 못한다. 산 높이도 모른다. 그러나, 든든한 만능 장비 하나는 지니고 있다. "다 고치면 될 일이다." 인생도 마찬가지. 다시 뛰면 되고, 다시 잘하면 된다.    




#초고 #글쓰기 #자신을찾는좋은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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