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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과여름 Jan 27. 2022

우리 같은 책 읽어볼까?

조금 비슷하고 많이 다른 우리들의 취향, <읽는 사이>를 읽다가

학교에서 만난 오랜 친구들과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 남편 등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더 알맞게 표현하자면 나만큼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작년에 남편과 책 한 권을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어보자며 권했는데, 기꺼이 응했던 그는 일 년이 가도 그 한 권을 다 읽지 않았다. 나와 취향이 다르나 아예 책을 안 보는 사람은 아니라  『6도의 멸종』, 『이토록 뜻밖의 뇌 과학』과 같은 책은 재밌게 읽고 소설과 에세이, 인문학 책은 들여다볼 기색이 없을 뿐이다. 그 모습을 보자니 내가 종종 선물했던 책도 누구에게는 부담이자 짐이 아니었을까 의구심이 생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책을 선물하는데 상대방이 자신의 취향이 아닌 책을 받는다면, 고마운 마음에 읽긴 해도 꾸역꾸역 읽을까 봐, 몇 장 넘기지 못하고 그대로 책장에 꽂아 버릴까 봐, 지난날 선물했던 책들이 정말 선물이긴 했을까 의심이 드는 거다.

책을 선물하는 마음은 ‘이 책이 정말 좋아서 당신과 함께 감동과 재미를 나누고 싶어. 거기서 우리들 각자 읽은 이야기도 나누면 좋을 텐데. 의미 있는 책이 된다면 우리 사이도 더 깊어질 것 같아서.’ 대강 이런 마음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책을 선물했지만, 더 친밀해지고 싶은 이유로 책을 건네기도 했다. 작년엔 책 선물이 뜸했다(무급휴직도 한몫했습니다만). 아이에게도 가끔 단행본은 사주지만 대부분은 도서관에서 대출하거나 전집은 업체에서 대여한다. 내 아이의 확실한 취향은 ‘먹을 것’이라 내용 불문 먹는 장면이나 밥상이 나오면 일단 책을 펼쳐 든다. 유아 전집 ‘이야기꽃할망’의 『노루가 된 동생』에는 밥 먹는 할머니가 나온다는 이유로, 『방귀 시합』에선 방귀보단 고구마와 보리밥이 나오기 때문에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한다.


지난주에 새로운 요리책을 보고 반찬을 몇 가지 만들었다. 섬초 무침, 황탯국, 메추리알 장조림을 만들어 며칠은 걱정 없겠다고 뿌듯해하다 혼자 사는 친구가 생각났다. 20대 중반에 만나 친해진 뒤, 메모를 붙여가며 서너 번 책을 선물했는데 잘 읽었다고 한 번도 응답하지 않았던 친구다. 나와 아이의 기념일에 정성이 담긴 선물, 넉넉한 현금 선물도 챙겨준 고마운 친구이기도 하다. 반찬을 전해주고 모스카토 와인에 치킨을 곁들이며 친구가 추천한 영화를 봤다. 어쩌면 내가 평생 보지 못했을 영화(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별로 안 본다)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을 보며 알코올에 취약한 둘이 한낮의 술을 마신 그날, 나는 그 영화를 잘 봤지만 친구가 좋아한 만큼 좋지는 않아 조금은 슬퍼서, 친구 책장에 자리한 책을 가리키며 잘 읽었냐고 여전히 물어볼 수 없었다. 내가 가져간 와인은 순했지만 너무 달았고, 먹기로 한 치킨은 가게가 문을 안 열어서 계획에 없던 종류로 대체되었으며, 내가 만든 반찬은 친구 입맛에 맞지 않을지도 몰랐다(시금치를 싫어한다거나).


『읽는 사이』는 아무튼 시리즈를 쓴 두 작가의 독서 교환일기로, 메모를 붙여 책을 추천하는 이유나 책을 읽고 해 봄직한 일들을 미션으로 제시해 서로에게 권한 기록이 담겨 있다. 둘 다 책을 사랑하고 글쓰기를 업으로 삼지만 두 작가의 독서 취향은 사뭇 다르다. 손발 오그라드는 일본 소설을 추천하겠다는 지수 작가에게 그렇다면 ‘전쟁과 평화’를 권하겠다고 응수하는 구달 작가. 책을 매개로 ‘육아’, ‘반려동물’, ‘비건’, ‘성소수자’, ‘영화’ 등 여러 주제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들은 취향의 접점을 찾기도 하고, 다른 점을 확실히 느끼기도 한다. 공통점에 반가워하고 차이점을 통해 시야의 폭을 넓혀가는 관계다.


독서 에세이를 읽고 나면 사고 싶은 책 목록이 늘어났는데, 이상하게도 이 책을 읽은 뒤엔 두 작가가 읽고 나도 읽은 책을 다시 한번 읽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나는 수다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 거고, 내 가까운 사람들은 왜 책을 좋아하지 않을까 같은 비뚤어진 울분(?)과 내가 맺고 있는 관계를 더 두텁게 만들고 싶은 욕구가 고개를 드는 거다. 어쩌면 남편과 나는, 친구들과 나는 영영 책을 같이 읽는 사이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한번 더 제안해볼 용기를 이 책을 통해 얻었다. 당신이 추천하는 과학책을 읽을 테니, 당신도 올해는 꼭 내가 작년에 추천했던 그 책을 읽어 보자(아이를 위해서라도), 파울로 코엘료는 내 취향이 아니지만 친구 따라 연금술사 다시 한번 읽어볼게. 와 같은 말을 할 용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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