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문 안 쪽에서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봉인된다. 잘 닫아둔 잼 병처럼. 뚜껑을 단단히 닫아두면 안이 보존된다. 그런데 너무 오래 열지 않으면 안에 뭐가 들었는지를 잊는다. 어느 날 찬장 뒤편에서 발견했을 때, 뚜껑을 여는 것이 무섭다. 상해있을 것만 같아서. 그러나 오래된 것이 반드시 상한 것은 아니다. 그냥 오래된 것의 냄새가 나는 것이다. 그 냄새를 맡을 용기. 그것이 필요한 것이다.
스물한 번째 세션. 루이가 오래 침묵했다. 들어와서 앉은 뒤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기다렸다. 이 종류의 침묵을 나는 안다.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득 찬 침묵. 말이 오기 직전의 침묵. 마치 반죽이 발효되기 직전의 그 팽팽한 시간처럼.
루이가 말했다.
"어릴 때 그 다락방 안에서... 저는 늘 생각했어요."
"뭘요?"
"나는 여기 있었다, 고. 이상하죠?"
"이상하지 않아요. 전혀."
나는 여기 있었다. 어린 아이가 어두운 다락방 안에서 스스로에게 한 말. 그것은 주문이었다. 무서움을 견디기 위한 가장 작은 주문.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기 있다. 소리를 내지 않아도, 아무도 찾지 않아도. 그 말이 그 아이를 그 밤들 속에서 붙잡아두었다. 없어지지 않게.
루이는 계속 말했다.
다락방 문을 열고 나오면 다시 달라져야 했다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밥 먹고, 학교 가고, 웃고. 다락방 안에서 있었던 일은 그 안에 남겨두고 나왔다고. 그것이 습관이 되었다고.
두 개의 세계를 살았던 것이다. 다락방 안의 세계와 다락방 밖의 세계. 안에서는 숨죽이고, 밖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 간격을 혼자 메워오면서 어느 쪽이 진짜 자신인지를 루이는 오래전에 잃어버렸다. 아니, 더 정확히는 진짜 자신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상황에 맞는 자신이 되는 것.
다락방 안에서는 조용히, 밖에서는 괜찮게. 그것이 루이의 오래된 생존 기술이었다.
매우 효과적이었고 매우 외로운 기술.
"그 아이가... 아직 거기 있는 것 같아요, 가끔. 다락방 안에."
"어떨 때요?"
"감당이 안 될 것 같을 때요. 그냥 어딘가 좁은 곳으로 들어가고 싶어져요."
"그 아이가 아직 거기 있다는 게, 나쁜 건 아니에요."
"..."
"그 아이가 루이씨를 여기까지 데려왔잖아요."
루이는 그 말을 받았다. 오래. 반박하지 않고, 넘어가지도 않고 그냥 받아서 안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오늘 어쩌면 1부의 끝이다. 루이는 이제 다락방 안의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가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것을 들었다. 그것이 이제는 다음으로 가는 길이다.
반죽은 어두운 곳에서 발효된다. 빛 없이, 조용히, 혼자서.
그 시간이 없으면 빵은 완성되지 않는다.
다락방 안의 시간이 루이를 망가뜨린 것만은 아니었다.
그 안에서 루이는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이제 필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 말고 다른 것도 배우는 것이다.
기록: 스물한 번째 세션
나는 여기 있었다는 말을 받아 적으면서, 손이 잠깐 멈추었다. 그 문장이 루이의 것이기도 하지만 나의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이커리를 닫던 날, 마지막으로 오븐을 켜고 혼자 앉아 있었을 때. 나도 속으로 그 말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여기 있었다.' 오래된 말들은 이렇게 살아남아서, 생각지 못한 곳에서 다시 나타난다. 루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내 이야기도 함께 듣고 있었다.
참고 문헌 · 10
¹² Frankl, V. E. (1946). Man's search for meaning. Beacon Press.
프랭클은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확인하는 방식으로 생존한다고 보았다. 어린 루이의 "나는 여기 있었다"는 말은 통제 불가능한 환경 안에서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 ,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을 붙잡은 것이다. 이것은 약함이 아니다. 살아남으려는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