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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Sep 29. 2020

내 삶을 이끄는 것은 무엇일까?

선을 긋다, 마음을 잇다.

1998년. 수능 점수가 나왔다. 태어날 때부터 지지리 운이 없었던 1980년생들은 고3 때 IMF를 격였는데 수능까지도 운이 없었다. 물론 똑똑한 친구들은 수능이 어려우나 쉬우나 좋은 점수를 받았겠지만, 난 평소 모의고사나 내신점수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받았다.


수능이 끝났지만, 논술 준비를 해야 했다. 논술반만 따로 남아 공부를 해야 했다. 그게 왜 그렇게 하기가 싫던지…


어느 날 복도를 지나가다 대학교 소개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간호대학이었다.


단 한 번도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크게 아파본 적도 없었고, 병원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었다. 간호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병원이 어떤 곳인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데 간호대학 포스터를 보자마자 결심을 하고야 말았다. 논술 준비를 하지 않기로.


그 날 바로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다. 간호대학에 원서를 쓸 테니, 논술반에서 빠지겠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별 다른 반응도 없이 그러라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간호대학에 가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나 미래에 대한 고민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뭔가 눈에 보이는 것 중에 끌리는 것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선택했다. 선택을 하면 후회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건 대학교를 선택했을 때뿐만이 아니었다. 첫 병원을 선택했을 때도, 병원을 그만둘 때도, 영어도 현지어도 못하면서 네팔로 봉사단원이 되어 떠났을 때도, 두 번째 직장을 선택했을 때도, 남편과 결혼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항상 고민을 오래 하지 않았고, 한번 선택하면 뒤돌아 보지 않았다.

그런 연속적인 선택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은 인도에서 살고 있다. 무엇이 나를 이끌었던 것일까?



해가 뜨고 지는 길을 따라 해바라기도 고개를 돌린다. 해바라기의 삶을 이끄는 것은 태양이고, 그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꽃을 피우고, 씨를 만든다.


얼마전 몸이 많이 아파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는 분에게 영양제를 놔주었다. 일을 그만둔지 몇년이 지났지만, 혈관을 찾아 바늘을 꽂는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내가 간호사였다는 과거를 거의 잊어버리고 살지만, 주위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어김없이 손과 머리의 감각이 되살아 난다.



한 번씩 내가 바라보고 있는 태양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지금껏 내 스스로 이 길을 선택했고 홀로 이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모든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있다. 난 내 직감대로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영감대로 움직여진 것 같다.



©️goodness  선량





모든 우주 만물이 정해진 규칙에 의해 움직인다. 지구가 한번 자전을 하면 하루가 지나가고,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돌면 한 달이 지나간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면 1년이 되고, 그러면 나는 나이를 먹는다.


태양 빛으로 자라나는 식물, 그 식물을 먹고사는 동물, 그 동물을 먹고사는 나.

해바라기가 태양의 영향을 받으며 살 듯, 나 역시 그러하다. 내가 선택하며 살아온 줄 알았는데,  내가 선택함을 받아 이렇게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 삶을 이끄는 것은 무엇일까?



과거의 일들을 글로 적으며 그날의 기억이 아직 남아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드는 나는,


인도에서의 시간들도 잊히지 않도록 모든 감정과 경험과 느낌들을 적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해바라기가 태양에 온 몸을 맡기며 살아가듯, 나 역시 그렇게 삶을 맡기며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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