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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r 20. 2024

1. 한국계 이탈리아인

(연재소설) 나의 시인 할머니 금자 씨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 곧 착륙합니다. 안전벨트를 꼭 착용해 주세요. 레이디스 앤 젠틀맨~ "


스튜어디스의 안내방송이 끝나자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렸다. 비가 오는지 작은 창에 물이 흘렀다. 지아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는 동주를 바라보았다. 내내 잠을 이루지 못해 피곤해 보이는 동주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지아는 말없이 동주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비행기가 멈추고, 안전벨트 불이 꺼지자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동주 역시 짐칸에 놓인 두 사람 몫의 캐리어를 재빠르게 꺼내 통로 맨 앞쪽으로 가서 섰다. 분주하게 짐을 찾고, 내리는 사람들 틈을 피해 지아 역시 동주 뒤로 붙어 섰다. 비즈니스석 승객들이 먼저 내리는 동안 이코노미석의 통로에 승객들이 줄줄이 서서 기다렸다. 지아는 자본주의가 가장 극명하게 보이는 곳이 비행기 안이라는 생각을 했다. 비싼 좌석을 산 사람과 가장 저렴한 좌석을 산 사람의 기내 서비스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 그것에 대해 컴플레인하는 사람도 없다.

‘몸을 살짝만 돌려도 옆 사람 팔과 부딪혀 ‘죄송합니다’를 말해야 하는 좌석과 다리를 쭈욱 뻗고 몸을 눕혀도 여전히 넉넉한 좌석의 차이는 현대판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아닐까?’

지아는 이렇게 생각하다 피식 웃음이 났다. 수업 시간에 배운 지식을 현재의 삶에 적용해 비교분석하고 비판해야 했던 ‘구두시험’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말이 비교 분석이지, 주장에 대한 근거가 빈약해도 그럴싸하게 잘 꾸며서 말하면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워낙 말하기 좋아하고, 토론하는 걸 즐기는 이탈리아 사람에겐 어렵지 않은 시험이었지만, 지아처럼 내성적인 데다가 전문용어에 약한 이민자 2세들에겐 가장 어려운 시험이었다. 게다가 이 모든 시험은 선생님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점수가 매겨졌다.


“알고 보면 소크라테스는 철학자가 아니라 그냥 말 많은 고집 센 아저씨였는지도 몰라. 소크라테스는 질문에 질문을 계속하면서 상대방이 스스로 결론을 찾도록 했다는데, 그건 토론이 아니라 그저 자기 생각대로 상대방을 이끌어 가기 위한 고도의 수법이 아니었을까?”

한번 회의를 시작하면 결론을 맺지 못한 채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다가 결국엔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이탈리아 사람들을 향해 경석은 비꼬듯 말하곤 했다. 5시간씩 회의를 하면서도 타협을 하는 게 아니라 끝까지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더란다. 이탈리아 회사와 한국 회사 사이에서 통역을 하다 지친 경석은 말할 것도 없고, 결론도 없는 지난한 회의에 나가떨어진 사람은 성격 급한 한국 사람들이었다. 호기롭게 이탈리아에 진출한 한국 회사들이 결국 사업을 접고 들어가는 경우가 왕왕 있었는데 이 모든 게 말은 많지만, 타협은 하지 않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습성 때문일 거라고 경석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지아가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아테네 출신 철학자야. 물론 로마에도 그의 철학이 영향을 끼쳤겠지만, 그렇다고 모두 하나로 묶는 건 일반화의 오류야.”라고 반박했다. “아, 맞다. 너도 이탈리아 사람이지. 깜박했다.”동주와 경석은 애매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리곤 했다.




목을 쭈욱 빼고 통로의 줄이 움직이길 애타게 기다리는 동주를 보니 피식거렸던 게 미안해졌다. 지아는 동주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토닥거렸다. 예전 같았으면 좀 천천히 하라고 타박했을 텐데, 이번엔 지아도 입을 다물었다. 동주의 마음은 이미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을 달려 나가 택시를 타고 할머니가 있는 병원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드디어 움직이는 사람들을 따라 비행기 밖으로 천천히 발을 옮겼다. 이동하는 동안 눈에 들어온 비즈니스석의 풍경을 지아는 동경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퍼스트 클래스는 도대체 얼마나 좋을지 가늠해 보았지만, 쉽게 상상하긴 힘들었다.



이제껏 여러 번 와 본 인천 공항인데 이번엔 느낌이 달랐다. 지아는 이곳이 자신의 고향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론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때 잠깐 한국에 와서 맛있는 걸 실컷 먹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는 건 좋았다. 하지만 그뿐. 지아는 밀라노에 있는 자기 집으로 어서 돌아가고 싶었다. 한국은 편리하고 좋은 나라였지만, 마음을 한없이 불편하게 했다. 그 이유가 언어의 장벽 때문인지, 문화의 장벽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지아는 이탈리아 사람이다. 한국 사람이지만 밀라노에서 나고 자랐다. 한국어보다 이탈리아어가 더 편했다. 게다가 지아는 여전히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다. 3년 전, 한국 국적과 이탈리아 국적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지만, 지아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버렸다. 남자였다면 군대와 직결된 일이기에 지체 없이 국적을 선택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또래 한국 친구들이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어느 나라 국적을 선택하는 것이 더 좋은지 자주 토론을 벌였다. 어른들 중에는 “그래도 군대는 다녀와야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다”라고 보수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군대에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빨리 공부하고 졸업해서 취업을 하는 것이 좋다”라고 현실적인 조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어른들 모두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었다. 이탈리아에서 나고 자란 자신들을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3명의 남자사람친구 중 2명은 이탈리아 국적을, 1명은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


이번엔 이상하게 고향에 오는 기분이 들었다. 지아는 그게 할머니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과 말할 때마다 추임새처럼 따라붙던 "아따~", 몸은 굼뜨지만 손놀림은 재빠르던 할머니의 모습이 물밀듯 밀려왔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동주는 핸드폰을 꺼냈다. 비행기 안에서 미리 한국 심카드로 바꿔 둔 동주의 핸드폰으로 계속해서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동주는 문자메시지는 모두 무시하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나 이제 비행기에서 내렸어. 그래, 응. 응. 공항버스 타고 갈게. 그래. 미안하다, 급히 오느라고 아무것도 못 가져왔어. 아니야, 그래도. 그래. 좀 이따 보자."

"엄마, 할머니는?"

"응, 의식이 없으시대."

지아는 의식이 없다는 말을 머릿속으로 헤아렸다. 그리곤 의식의 두 가지 의미를 곰곰이 생각했다. 어떤 일을 할 때 꼭 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의식과 정신을 의미하는 의식.

“정신이 없다는 말이야?”

"웅, 그래.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야….”

이내 엄마의 두 눈이 붉게 변하더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엄마 미안, 괜히 물어봤네."


한국어를 동주에게 물어보는 건 거의 습관 같은 것이었다. 이탈리아에 살며 이탈리아 말을 하고, 이탈리아 학교를 다녀야 하는 지아에게 한국어는 외국어나 다름없었다. 집에선 주로 한국말을 썼다. 일상의 대화는 아주 간단한 말로도 충분히 통했다. "응, 아니, 몰라." 이 세 단어면 충분했다. 너무 바쁜 엄마와 아빠 아래서 자란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언어를 선택해야 했다. 지아는 무의식적으로 생존을 위해 이탈리아어를 자신의 모국어로 선택했다. 그러니 한국어는 자연스레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아는 단어라 할지라도 한 번 더 확인하는 습관은 이민자 2세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잘 모르는 한국어는 엄마, 동주에게 물어보면 됐다. 반면 동주는 여전히 이탈리아어가 서툴다. 밀라노에서 30년을 살았으면서 아직도 이탈리아어를 어색하게 말하는 동주를 지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렸을 적엔 지아가 통역을 해줘야 했다. 밀라노에선 동주가 지아에게, 한국에선 지아가 동주에게 언어를 의지하는 것이었다. 이미 알던 단어라도 한 번 더 물어본다. 그건 실수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번엔 이 습관을 잠시 내려놔야겠다고 지아는 생각했다.


입국심사를 거친 후 지아와 동주는 빠르게 공항을 빠져나왔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들 어디에 다녀온 걸까? 그러고 보니, 밀라노에서 출발했던 비행기에 남는 좌석 없이 가득 찼던 것이 떠올랐다. 그중엔 이탈리아 사람들도 많았다. 한국으로 여행 가는 이탈리아 사람들이라니......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얼마 전까지도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면 북한인지 남한인지 물어보았다. 그들이 아는 건 겨우 북한과 남한으로 나눠 아직도 전쟁 중인 나라가 전부였다. 그런 나라에 여행을 오다니.... 심지어 한국으로 여행 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다니…. 지아는 알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어디로 가야 되지? 아휴, 여기는 올 때마다 복잡해 죽겠어. 잠깐만...... 어디 보자... 순천 여수로 가는 버스가...... 아 저기 있다. 2시간 후에 출발하네? 잠깐 쉬었다 가야겠다. 아이고, 멀다 멀어. 잠깐, 내 한국 카드가 어딨더라... 지갑에 잘 넣어 두었는데. 왜 안 보이지? 아 찾았다. 자 이제 표를 끊어보자. 우리 두 사람이니까, 이거 누르고, 순천 누르고, 결제 방법은 카드. 아니 카드를 어디에 넣어야 해? 잠깐 만.... 음...... 야 이거 오랜만에 하려니 도통 모르겠네."

동주는 한 손에 카드를 들고 표를 끊는 키오스크 앞에서 한참을 실랑이했다. 뒤에 서 있던 사람이 보다 못해 도와주고 나서야 겨우 버스표 2장을 끊을 수 있었다.

"한국에 오랜만에 오셨나 봐요. 요즘은 핸드폰 어플로 다들 해요."

"아 네. 올 때마다 헷갈리네요."

지아는 갑자기 피곤함을 느꼈다. 13시간의 비행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런 소란함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덕분에 동주의 슬픔이 잠시 뒤로 밀려난 것 같아 다행이었다.

공항에서 2시간을 기다려 드디어 버스를 탔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동주는 잠에 빠져들었다. 할머니가 있는 곳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3시간을 더 가야 했다. 지아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팔짱을 끼고 자고 있는 동주의 모습에서 할머니를 떠올렸다. 쌍꺼풀 없는 눈, 둥그스름한 코, 얇은 입술. 그 주위로 크고 작게 드리워진 주름들.  나이 들수록 엄마는 점점 더 할머니를 닮아갔다. 지아는 엄마의 모습에서 할머니를 찾아보다가 할머니의 젊었을 적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지아가 회상할 수 있는 건 10년 전의 할머니였다. 지아가 15살이었던 그때. 할머니 집에서 3개월을 보냈던 그때.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었던 자신의 삶에 온갖 긍정적인 것들을 끌어당기던 할머니였다.

'진우는 잘 있을까......'

진우를 완전히 잊고 산 건 아니었다. 하늘에 별이 많은 날이면 어김없이 진우가 떠올랐다. 진우의 큰 눈망울과 진한 쌍꺼풀 너머로 흘러나오던 강인함은 웅크리고 앉아있던 지아의 알을 조금씩 깰 수 있게 도와주었다.

‘진우는 어떻게 변했을까….’

3년 전에 마지막으로 할머니 집에 방문했을 때 진우는 군대에 가고 없었다. 지아가 조금만 더 적극적이었다면 진우에게 먼저 연락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아는 그러지 않았다. 조심성이 많은 지아의 성격은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야 원인을 만드는 아이였다. 이민자 2세로 살면서 몸에 밴 습관은 여간해선 사라지지 않았다. 실패할 것 같으면 시작조차 하지 않는 습관은 지아를 신중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건 연애나 인간관계, 학업과 진로 등 여러 영역에 걸쳐 있었다.

“미래의 일을 왜 현재의 나에게 따지려 드냐. 미래의 내가 내릴 결론을 한번 믿어봐”

지아는 할머니의 말을 떠올렸다. 저 말의 의미를 조금 더 빨리 이해했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온통 후회뿐이었다. 할머니에게 조금 더 자주 연락하지 않은 것, 그때 진우에게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도 모두 후회되었다.

지아는 진우를 떠올리다 동주를 따라 스르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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