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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의향기 Oct 11. 2024

드디어 , 한라산

어디든 한걸음부터


등산을 해볼까?





재작년 겨울, 단조로운 일상이 주는 심심함이 극에 달했을 쯤에 뭔가 좀 새롭고 재밌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나는 거창한 준비나 배움이 필요 없다는 장점에 이끌려 선뜻 등산을 떠올렸다.


어디 가서 내세울만한 “백만 불짜리 다리”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려서부터 걷는 거 하나는 자신 있었고

그렇다면 몇 년째 신발장 안에 방치 중인 등산화 하나만 꺼내 신어도 당장 이번 주말에 바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무릇 아무것도 모르면 용감한 법,

앞뒤 잴 거 없이 일단은 저지르고 볼 일이었다.








이름하여 "고만고만한 산 도장깨기"라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나선 첫 행선지는 광교산 형제봉.


그러나 내 미천한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주섬주섬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좀 잘 못 됐구나 싶은 자각이 몰려들면서

2월의 차가운 날씨가 무색하도록

얼굴에선 땀방울이 뚝뚝, 호흡은 할딱할딱,

종아리부터 당겨오는 통증이 무릎에 이르러

마침내 불꽃처럼 터지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이거 망했는데.



하아..


이러다가 술 한 방울 안 마시고 토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과 함께 멈춰서 숨을 고르고 쉬어가야 하는 텀이 점점 짧아졌으므로 그날 등산로에서 내 옆을 쓱쓱 추월해 가야 했던 사람들이 보기에  

어쩌면 나는 도로 위의 불필요한 정체를 유발하는

"쌩" 초보운전자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유턴할 수는 없지 않나.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기어이 형제봉에 도착하고 보니 그제야 주변 경관이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 내린 눈을 아직 머금고 있는 나뭇가지들,

질서 정연하게 늘어 선, 산 아래 아파트 단지까지.

올라갈 때는 휘청이는 발 끝과 땅만 보고 가기 급급했던 나머지 고개를 들 여유조차 없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됐는데 형제봉은 단지 광교산의 여러 봉우리 중 하나였을 뿐,

시루봉이라는 이름의 정상은 따로 있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래도 꼭대기에 올랐다는 성취감에 잠시 들떴던 건 사실은 틀렸었다는 얘기. ㅋ


(*그 일이 하다 만 숙제처럼 기억에 남아 지난 9월에 다시 광교산을 찾았고 이번에는 조금 더 가벼워진 걸음으로 형제봉에서 시루봉까지 완주했다.)





형제봉 표시석
광교산 정상 - 시루봉









그날 저녁, 동네 중국집에서 뜨거운 짬뽕 국물을 들이키며 바람 빠진 풍선같이 축 쳐진 두 다리를 바라보자니 나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만성적인 운동 부족에 시달리는 배 나온 중년 아저씨에게 고만고만한 산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던 거였다.

어쩌면 다치지 않고 무사히 오르내린 것만으로도

첫 산행의 성과이지 않을까.

찌릿찌릿한 종아리를 주무르며 풀 죽은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 후로 차근차근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는 주변의 산행지부터 물색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해 봄에서 여름을 지나 가을이 시들 때까지 짬나는 주말마다 나는 등산 배낭을 짊어지고 꿋꿋이 집을 나섰다.





한라산? 한번 가보지 뭐





산행의 횟수만큼 자신감과 경험치가 쌓여가자,

처음엔 언감생심 올려다보지도 못했던 이른바 명산들의 면면이 하나둘 시야에 들어왔다.

이름만 들어도 웅장해지던 그곳들 중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는 해발 1947m의 한라산을 첫번째 목표로 삼았다.


등산할 때 꼭 그 산의 정상에 올라야 하거나 상대적으로 높은 곳을 찾는 것만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왕 시작한 김에 뭔가 좀 상징성 있는 곳을 올라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꾸준히 7, 8시간 정도의 산행이 가능할 만큼 몸이 만들어진다면

주저 없이 제주도행 비행 티켓을 끊으리라,

나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칼(?)을 갈았다.






그렇게 나의 등반 도전기는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속리산 신선대를 지난 하산길에.
7시 방향의 폭포가 한 눈에 들어온다면 당신은 착한 사람 ㅋ
두타산 용추폭포
설악산 육담폭포









그리고 지난 10월 8일.

비록 짙은 구름에 가려 백록담을 만나진 못했으나

기어이 나는 한라산 정상을 밟고

목표했던 하나의 챕터를 완성했다.

(으쓱.)


신비한 숲속길을 따라 총 9시간 반이 걸린 산행은

정말이지 오래도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백록담 표시석에서 인증사진을 찍기 위한 대기 줄.






......

한라산 도장깨기는 성공리에 마무리했고

다음엔 어디로 갈까.

지리산 천왕봉? 설악의 공룡능선?


나는 다시 꿈을 꾸기로 한다.




* 구름 속 신비로운 백록담이 궁금하시다면 ⬇️

https://youtu.be/CDaH0xqzH4Q?si=Ny5QNdVB4nIwNa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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