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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수상한 사람들

그들을 본 막심의 눈빛이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by 빅토리야

늘 아침 일찍 집을 나섰던 막심이 오늘은 오후가 다 되어 가는데도 인기척이 없었다.

‘어제 돌아왔으니 피곤해 늦잠을 자는 걸까?’

맞은편 막심의 아파트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난 막심을 깨우려 문을 노크해 보려다 그냥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들린 빵집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365일 문을 여는 삥집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거였다.


공원에 있던 비둘기들이 내 머리 위를 날아갔다. 혹시 늦게라도 문을 열지 않을까 하고 공원 의자에 앉아 문 열기를 기다렸다. 바람이 생각보다 따뜻했다.

20분쯤 지났을까? 시계를 보니 11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평소라면 빵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안드레이와 마주쳤을 시간이었다. 그러나 빵집은 여전히 고요했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난 공원을 사이에 두고 빵집과 마주하고 있는 깔 바 사(햄, 소시지)를 파는 가게로 들어가 빵집이 왜 아직도 문을 열지 않는지 물었다.


들어갔던 깔바사가게에서 난 모스크바에서 만들었다는 고급 깔바사를 두 개나 샀다. 평소에는 비싸서 사 먹지도 못한 거였다. 깔바사를 들고 가게 문을 나서는데 문에 달려 있던 종이 경쾌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나의 기분을 홀가분하게 만들었다. 불어오는 바람도 부드러웠다.


계단을 두 개씩 올라 막심의 아파트 문 앞에 섰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노크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부스스한 얼굴의 막심이 나왔다. 귀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사를 건네고는 방금 산 깔바사를 막심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막심 뒤로 보이는 고양이도 내게 다가왔다.

‘작고 귀여운 이 고양이는 늘 그렇게 막심의 뒤에 있었던 걸까? 예전에는 내가 왜 보지 못한 걸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막심은 고급 깔바사 때문인지 기분이 좋아져 미소를 지었다.

“네가 돌아온 기념 선물이야.” 진심이었다.

막심과 더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아파트 복도에선 더는 이야기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3층에서 내려오는 이삿짐 때문이었다. 막심은 문을 급하게 닫을 수밖에 없었고 나는 복도에 덩그러니 남겨져야 했다.


이사를 할 때 흔히 사용하는 체크무늬의 싸구려 비닐 가방들이 줄줄이 내려왔다. 꽤 큰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내려오는 덩치 큰 사내는 처음 본 사람이었다. 아마도 이사를 돕기 위해 부른 일꾼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내려오는 사람은 바로, 진한 향수의 여자였다.

화장기 없는 모습은 처음으로 본 거였다. 향수 냄새는 여전했다. 좁은 복도 때문에 나는 짐이 지나가는 동안 꼼짝없이 복도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바짝 몸을 벽에 붙이고 짐이 잘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내주었다.

여자는 내려가던 길을 멈추고 막심의 아파트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밖으로 나온 막심과 짧은 작별인사를 했다. 덩치 큰 남자도 가볍게 막심을 향해 인사했다. 짐이 무거웠는지 빨리 내려가고 싶어 자꾸만 뒷걸음치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막심과 이 여자가 아는 사이였나?’ 놀라웠다.

덩치 큰 남자도 막심을 알고 있는 것을 보니 그냥 일꾼은 아니었나 보다. 그들이 다 내려간 후 나는 막심을 향해 물었다.

“누구?”

기차 터미널에서 일하는 여자라는 것이다. 자기가 기차를 타고 고향을 갈 때마다 도와줬다고 했다. 그녀는 불규칙한 출퇴근 시간과 사람들 때문에 늘 피곤하다고 말했지만, 대견하게도 성실히 돈을 모아 더 큰 집으로 이사 간다고 했다.

딸을 시집보내듯 그는 그녀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그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막심은 나를 끌어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사 온 깔바사를 함께 먹자는 것이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고양이를 안고 창가로 갔다.


마을 전체를 볼 수 있는 이 만한 장소는 없었다! 방금 이사를 간 진한 향수의 여자와 덩치 큰 남자가 창을 통해 보였다. 그들은 짐을 들고 공원을 가로질러 걸어가고 있었다. 루스끌로바 130번지 쪽이었다. 그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는 ‘어디일까?’ 그들은 문이 닫힌 빵집을 지나가고 있었다.


막심은 내가 선물한 깔바사와 빵을 가져왔다. 그리고 홍차에 우유를 섞어 만든 우즈베키스탄 차를 내밀었다. 나는 우유가 들어간 홍차를 마시지 않았지만, 건네는 컵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좀 크다 싶은 식칼로 도마도 없이 깔바사를 손바닥에 대고는 익숙하게 썰어냈다. 그가 가져온 빵은 방금 구웠는지 따뜻했다.

‘빵이 어디에서 났을까? 빵집은 닫혔는데.’

내 생각을 읽었는지 그는 아침에 창문을 통해 빵집이 문을 열지 않은 것을 알았고, 이 빵은 자신이 직접 구웠다고 했다. 장사해도 될 만큼 훌륭한 맛이었다.


난 빵집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안드레이 이야기를 이어 갔다. 나는 비밀을 이야기하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밤늦게 빵집 아들이 살인 용의자로 체포됐으며 그래서 빵집은 오늘 문을 열 수 없었다고. 범인이 잡혀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빵에 깔바샤를 얻어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동네 사람들 모두 너와 나를 의심했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억울했다고 말할 뻔했다.


막심은 빵집 아들의 소식을 듣고도 별 반응이 없었다. 무표정한 막심은 창문 밖을 한번 보더니 게걸스럽게 빵과 깔바사를 먹기 시작했다. 나도 막심을 따라 창밖을 다시 봤다.

위층 사람들이 다시 광장을 가로질러 이곳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가져갔던 이삿짐을 어디에 두고 왔는지 두 사람 모두 빈손이었다. 남은 짐을 가지러 다시 돌아오는 길일까?


그들을 본 막심의 눈빛이 달라진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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