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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May 07. 2024

24화. ‘그’의 어버이날


그는 한 단어로 말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는 게 참 좋다. 어떤 수식어도 붙지 않는 ‘그’라고 부를 수 있어서. 여기에서의 그는 자유롭고 제한 없고 끝없이 희생하는 인물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존재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사랑도 의무도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 책임진다는 말에 무게가 실리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하나도 둘도 아닌 셋을 사랑으로 책임지는 일을 그는 해냈고 여전히 해내는 중이다. 그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던 삼남매는, 나이를 합산하면 그보다 더 많을 만큼 시간이 지났다. 그러니 내내 주기만 하던 그가 이제는 받기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에게 내가 숙제였던 만큼, 나에게는 그가 숙제였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계시지 않아, 누군가의 배우자, 누군가의 부모, 회사에서의 직함을 제외한 하나의 이름만 있던 그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우리의 탄생으로 저물어 간 그의 한 시절에 대해, 무엇을 바라고 꿈꾸었는지.


하루는 등교 전에 그가 머리를 땋아주고 있었는데, 그날의 컨셉은 양갈래였다. 따뜻한 손이 다정한 손길로 쓱쓱 머리를 만져주면 언제나 마음이 간질거렸고, 해서 아프지 않아도 아야, 아야, 아픈 척 떼를 쓰곤 했다. 그날도 마음이 간지러울 때마다 심심할 때마다 아야, 아야, 외쳤는데, 그의 반응이 평소와 달랐다. 나도 너처럼, 아프지도 않으면서 아프다고 떼쓰고 싶다. 그때 처음 마음의 방향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닿을 곳이 끊어진 마음에 대해서. 내가 그를 사랑하고 그가 나를 사랑한다 해도, 저편에는 어디에도 닿을 수 없는 마음이 모여 있다고. 누구에게나 그런 마음이 있기 마련이라고.


마음을 전할 수 있을 때, 열렬히 표현하려고 노력하게 된 건 그래서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탄생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뭐든 하나의 개념이 있을 때 그 반대의 개념도 존재한다. 어버이가 계신 어버이날을 맞이한다는 건, 언젠가는 그 반대의 날도 온다는 것.


1년 365일 중에는 기념일보다 기념일이 아닌 날이 더 많다. 무언가를 기다리기에는 우리의 삶이 짧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주 편지를 쓰고 특별한 날까지 기다릴 것 없이 선물도 종종 드린다. 올해의 어버이날도 평소와 같다. 감사 인사와 함께 식사와 꽃과 선물. 드시고 싶어 하시던 것을 만들어 같이 먹고, 어버이날 내내 꽃을 보며 생각하실 수 있게 미리 카네이션을 드렸다. 카네이션꽃을 좋아하시는 건 아니지만, 꽃 자체를 좋아하셔서 예쁜 색으로 골라왔다. 어버이날 본선물 이전에는 그가 배우고 싶어 하던 악기가 있어 학원을 찾아 등록해드렸다. 악보 공부를 열심히 하시는데, 이게 맞냐며 가져온 종이에는 ‘도레미파솔라시도’라고 적혀 있어 ‘도시라솔파미레도’로 맞게 정정해 드렸다. 본선물은 다자녀 가구의 장점을 힘껏 활용해 돈을 모아서 사드릴 예정이다. 시간이 참으로 속절없이 흐른다. 우리가 함께인 동안은 아프지 않고 건강하고 즐겁기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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