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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Apr 30. 2024

23화. 싫어도 좋아


우리는 취향이 다르다. ‘네가 좋아하는 건, 정말 별로!’라고 말할 정도. 서로의 취향을 향한 질색팔색은 우리만의 애정 표현. 그중 극단적인 주제로 ‘물’이 있다.


가끔 물속의 그를 보고 있으면, 전생에 고래였을까 싶다. 거침없는 움직임과 주변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면, 덩치 큰 포식자였음이 틀림없다. 소리를 내는 것도 듣는 것도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니, 역시 바다 생물 중에 고래가 제일 가까운 듯싶다. 물놀이라고 하면, 바다나 계곡 같은 야외가 아니면 수영장이 전부고 가끔 그런 마음을 약소하게나마 달랠 수 있는 게 목욕탕인데. 나는 애초에 물 자체를 싫어한다. 몸이 붓는 느낌이 숨 막힌다고 해야 하나. 그와는 아주 상반되는 감상이다.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목욕탕이 아쉽지 않은 건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줄기차게 갔기 때문에. 그가 가고 싶어 하면, 되도록 동행했으니. 그러나 그는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괴로워했다. 뜨끈한 온탕에 시리도록 차가운 냉탕에 아무튼 어디든 몸을 담그고 싶어 했다. 뭐든 다 위험한 시절이 있었다. 되는 것도 안 되는, 모든 게 멈춰졌던 시간.


벼랑 끝까지 몰고 가던 바이러스가 잦아들고, 이전과 같지 않지만 다시 자유를 찾은 뒤에는 목욕탕이 아닌 수영장을 다니고 있다. 그가 중급자 레일에서 고래처럼 수영하는 동안, 나는 걷기 전용 레일에서 열심히 걷는다. 물을 변함없이 싫어하므로, 여태 수영도 할 줄 모르는 상태라 일단 냅다 걷는데, 물속에서는 표현하기 어려웠던 문장들이 잘 지어져서 당황스럽다. 물이 싫지만, 글이 잘 써지는 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다. 수영장에 담가지는 동안은 핸드폰을 할 수 없어서, 열심히 걷고, 걷는 동안 지어진 문장을 외우면서 쓰다 보면, 나의 고래가 실컷 논 뒤에 나를 향해 헤엄쳐 온다. 그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나는 어쩌다 수영장까지 오게 되었나. 물을 싫어하는 내가, 물속에서 실시간으로 불어가며, 나의 고래도 관찰하고, 안 써지던 글도 쓰고. 아, 이것이야말로 정말 사랑에서 빚어진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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