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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May 21. 2024

26화. 한과 땀, 한 땀


바느질은 쓰임이 많은 기술이다. 수선집은 옷의 병원. 바느질이 서툰 내게는 없어서는 안 될 곳이다. 하지만, 제대로 배우기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기도 하다. 찢어지고 구멍 난 것, 애매해서 수선이 필요한 것을 어딘가 맡길 필요 없이 뚝딱뚝딱 고치는 일은 굉장히 편리하고 멋있다. 수선이 아닌 쓰임에 맞게 새로 만드는 일도. 몇만 원에서 몇십만 원 하는 값을 앉은 자리에서 대체하는 것은 수선과 결이 다른 멋짐. 그리고 ‘바느질’하면 빼먹을 수 없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유명한 노래.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국민 그룹 god의 어머님께. 내게 그 자장면 같은 것이 바로 바느질이다. 그는 말씀하셨지. 나는 세상에서 바느질이 제일 싫어. 집안일 다 싫지만, 망부석처럼 앉아서 처리해야 하는 바느질은 정말 견디기가 힘들어. 그러니 다치려거든, 옷을 애매하게 찢어 터뜨리지 말고 확 망가뜨려 와. 수선할 필요도 없게. 아, 이건 버릴 수밖에 없구나, 싶게. 물론, 그래서 옷도 찢어 터뜨리지 않고 아니 아예 다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다칠 뻔할 때마다 그의 말이 생각나긴 했다. 어쩌면 그래서 덜 다치고 다녔나 싶기도 하고.


하루는 바느질하는 그의 곁에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대뜸 그가 분노하며 외쳤다. 나는 바느질이고 뜨개질이고 할 줄 모른다! 내게 목도리든 뭐든 해달라고 하지 마!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 사줄게! 뭐라 안 하고 마음에 드는 걸로 사줄게.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아마 범인은 내가 아니라 다른 형제였을 것이다. 친구 부모님이 뭘 만들어줬다며 자랑을 했겠지. 집에 쪼르르 달려와 나도 만들어 달라 요구했을 것이고. 어차피 만들지 않을 거여도, 만들어 달라는 말조차 듣기 싫었는지 그가 선수를 친 것이다. 심지어 그는 갑자기 내게 잘 보이게 방향을 틀어서 누가 봐도 이상한 바느질을 시작하며 덧붙였다. 이거 봐, 바느질 정말 못해! 뜨개질도 똑같아! 나는 만들 수가 없어. 그러니 갖고 싶으면 사줄게, 알았지? 만들어 달라고 하면 안 돼. 약~속~!


그는 설거지, 빨래, 청소, 그게 뭐든 집안일이라면 싫어했고, 그럼에도 싫어하는 마음과 별개로 두며 언제나 척척 해냈다. 밀리지 않고 때에 맞춰서 뚝딱뚝딱 해치웠다. 자녀가 셋이나 되어서 힘들었을 텐데도, 나는 늘 따뜻한 밥을 먹었고 깨끗한 옷을 입었으며 뽀송한 이불에서 잠들었다. 여전히 그는 집안일 중에서 바느질을 제일 싫어한다. 눈이 예전 같지 않아 바늘에 실 꿰기부터 고난이므로 전보다 더 싫어하는 느낌이다. 이제는 나도 바느질할 줄 안다. 단추가 떨어지면 다시 달고 구멍이 나면 메꾸지만, 바지 밑단은 고칠 수 없다. 허리 수선도 할 줄 모른다. 이렇게 뭘 모르는 채로 살아갈 수도 있는데. 그가 모르는 것 없이 살아왔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내 마음은 사랑받았다는 사실에서 그치지 않고, 바늘꽂이처럼 아프고 만다. 그를 대신해 바늘에 실을 꿰면서, 나도 모르게 바늘을 심장에 꽂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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