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석 달린 훌라후프. 그것은 운동에 대한 첫인상. 어릴 적, 하교하면 어김없이 그가 훌라후프를 돌리고 있었다. 요즘 다이소에서 파는 그런 말랑하고 매끈하며 조그만 자석 말고, 생동감이 살아있던 옛날 도자기 자석을 달고서. 안방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동생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창으로 쏟아지던 햇살, 방울방울 떨어지던 그의 땀, 테이프에 감겨 위협적으로 돌아가던 도자기 자석. 밟으면, 레고보다 백배는 더 아팠던 자석.
지금도 한참 멀었으니, 그때는 더 심했다. 산후조리는 팔자 좋은 신선놀음 취급을 받았다. 밥 차리는 게 뭐 별거라고 그거 하기 싫어서 대는 핑계 취급. 밥하는 거, 빨래하는 거, 장보고, 청소하고, 집 가꾸고……. 그런 걸 안 하기 위해서 그런다고들 했고, 게으름피우지 말라고들 했고, 생명과 목숨이 직결된 일인데도 가볍게 무시당하고 가스라이팅 당했다. 나는 태어난 셋 중 가운데고, 동생과 나이 차가 있기 때문에 선명하게 기억한다.
하교할 때면,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집안일의 굴레에서 더 늦기 전에 운동을 시작한 그가 조급한 마음으로 훌라후프를 돌리다 나를 맞이해 주었다. 반겨주면서도 당혹스러워하던 눈. 나를 보물이라고 부르던 그가 내 하교 시간을 몰랐을 리는 없고,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흐른 것에 대한 당혹감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나’와 나의 ‘부모’ 사이에서의 고민이었겠지. 나를 챙겨주어야 하는데, 그러면 자신을 챙길 수 없으니까. 슬프고 감사하게도 그는 둘 다 놓지 않았다. 훌라후프를 돌리며 말을 건네주었으니. 왔니? 오늘은 학교에서 어땠어? 엄마가 지금 운동하는 중이어서 위험하니까, 여기 오지 말고 말해 줄래? 다 듣고 있어. 들을 수 있어. 거기 앉아서 얘기해줘. 듣고 싶어.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그리고 미안. 엄마가 이거 꼭 해야 해서. 조금만 기다려주면, 맛있는 간식 줄게!
그는 다양한 방법을 탐구하고 찾아내면서 계속 무언가를 했다. 알았을 텐데. 그런다고 해서 예전으로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음을. 내 보호자였고 양육자였던 만큼, 지금의 내가 모르는 것들까지 그는 알았을 텐데도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도 내려놓지 않았고 우리도 내려놓지 않았다. 언제나 고개를 돌리면, 거기에 그가 있었다. 늘 곁에 있었다. 어떤 일이, 고난이 있어도.
그렇게 정말 많은 걸 해냈고, 가장 최근에는 암벽 등반을 다녔다. 걱정할 것을 미리 알고, 조금이든 크든 다치는 족족 숨기면서. 그런 그는 정말 앙큼하다. 그때는 그 나름으로 조심히 다니라며 잔소리를 많이 했는데, 막상 허리를 다치고 못 하게 되니 아찔한 취미였음에도 마음이 좋지 않다. 대신으로, 등산 스틱 말고 드럼 스틱을 들게 되었지만, 가끔 생각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번에 복싱이라는 운동을 배우는 중인데, 어쩔 수 없이 그를 생각한다. 그에 대해서. 조금씩 나이를 먹는 만큼, 딱 그만큼 그를 더 헤아리게 되면서 잊을 수가 없어 글로 남긴다. 그의 훌라후프를. 그의 훌라후프가 충분히 돌아 멈출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던 나도 같이. 지금과 별반 다를 것 없지만, 아주 다른 우리의 한 시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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