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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Jun 05. 2024

28화. 업데이트 청청


여름에 가장 시원한 것은 기능성 소재의 옷. 나일론과 폴리에스터 그리고 브랜드마다 개발하여 광고하는 어쩌고저쩌고 해서 시원한 것들. 시각적으로 시원해 보이는 것은 소재보다도 밝고 고채도 색상의 옷. 청 또한 그렇다. 특히 냉각 효과가 있는 소재에 연한 색상의 연청색 옷은 실질적으로도 시각적으로도 시원한 맛이 있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청의 옷을 찾기란 우주여행과 같아서, 될 듯하지만 전혀 되지 않는다. 우리의 그도 봄과 여름철마다 마음에 드는 청원피스를 애타게 찾았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뭐, 언젠가 어딘가에서 어떻게든 만날 수 있겠지. 아닐 수도 있고. 그런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다치기 전까지는.


척추가 골절되어 반년 넘게 집에서 지냈던 그해. 다시 밖으로 출근하고 생활하려니 제약이 도처에 깔려 있었다. 대표적으로, 바지 입기도 힘들었다. 가지고 있는 옷들로 어떻게 돌려 입을 수야 있었는데, 죽을 것같이 아프고, 아파서 괴로운 상태로 어떻게든 회복하려는 그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어 나는 나대로 무력감 속에 허우적대고 있었다.


원피스는 여기에서 등장한다. 안 그래도 아프고 괴로울 그에게 기분 전환 겸 응원 겸 새 원피스가 있으면 좋겠다. 그가 늘 입고 싶어 했던 청원피스를 찾아내자. 그런 생각을 했고 실행에 옮겼다. 다만, 내게도 시간적 제한이 있어서 틈나는 대로 인터넷을 뒤졌다. 모든 청원피스를 다 보았다고 자부한다. 소재, 기장, 소매 길이, 옷깃, 주머니의 여부와 깊이, 디자인 포인트, 단추, 파인 정도, 팔뚝의 편한 정도, 마감 등등. 벌써 설레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내게 다가와 요런 거면 더 좋지만, 아니어도 상관없다며 수줍게 발언하고 사라지던 그까지. 사실 따지고 보면, 다 쉽지 않았지만, 여전히 옆에 그가 있고 뭐라도 내가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에게는 두 벌의 원피스가 새로 생겼고, 요즘도 입을 때마다 들뜬 얼굴로 내 주변을 워킹한 후에 외출한다. 그의 맑은 웃음. 곧고 단단하게 붙어있는 척추. 잃지 않은 희망과 꿈. 끝은 알 수 없어도 분명히 실존하는 우리의 오늘.


입원해 있던 그의 몫까지 만둣국을 만들어 눈물과 함께 먹었던 신정에, 나는 다짐했었다. 현재에 머물자고. 지나간 시간에 미련 두지 말고, 다가올지 알 수 없는 미래로 미루지도 말자고. 서로의 취향을 이해할 수 없고, 상대의 왕성한 식욕은 두렵고,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싸우다가 즐겁기를 반복하지만, 그저 오늘을 산다. 그런 오늘은, 어쩌면 그 겨울나무에서 새롭게 움튼 새싹일 수도 있겠다. 언제고 돌아오는 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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