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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조각
김치. 그것은 한국인의 소울.
김치. 그것은 내 식사의 태초.
김치. 그 누가 내게 그것을 앗아갈 수 있을까.
그런데 문득 등골이 오싹했다.
김장 김치 지짐이를 먹다가 든 생각 때문에.
나, 할 줄 아는 김치가 있던가?
엄마의 김치 중 과연 몇 개를 습득할 수 있지?
재료 구입부터 관리까지
비슷하게라도 따라 할 수 있는 김치는?
0개다. 빵. 먹는 빵 말고 제로. 무. 아무것도 없음.
큰일이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다.
김치 없는 삶? 난 그런 거 모른다.
헹군 김치, 열무김치, 깍두기, 김장 김치,
고들빼기, 오이소박이, 여름 김치, 섞박지,
물김치, 백김치, 동치미, 파김치, …….
어디 김치뿐이랴.
김치에서 탄생하는 온갖 음식은 어떻고!
당장 김치볶음밥, 감자탕, 지짐이, 열무국수,
등갈비김치찜, 김치찌개, 김치전, 김치만두, …….
그래도 가장 많이 돕고 관심을 가진 사람이 나인데도
할 줄 안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게 없다니.
거짓말 같은 잔인한 현실.
내가 원하는 건, 엄마 김치.
밖의 김치는 솔직히 모르겠다.
밖의 김치를 먹고 알레르기가 난 게
한두 번이 아닌 것도 그렇다.
어떤 재료가 문제인지 입술도 몸도 벌겋게
붓고 알레르기가 나서 며칠을 고생했었으니.
김치 얘기를 하니까 김치 먹고 싶다.
많고 많은 해야 할 일에 (엄마표)
김치 레시피 훔치기를 상위 랭킹에 올려야겠다.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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