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조각
무기력 속에서도
살겠다고 헤엄치다 보면
몸에 흔적이 남는다.
부딪치고 긁히고 꺾이고 때로는
살점이 크게 도려내질 만큼 다치기도 한다.
그럴 때의 상처는 금방 낫지 않고
잘 낫지도 않아서
꼭 흉을 남기고, 그러면 무기력에서 벗어나다가도
도돌이표처럼 돌아가며 악순환이 완성된다.
대개 그런 과정으로 근육을 잃는다.
몸의 근육을 잃고 마음의 근육도 읽고
방치되고 부패하여 언어를 잃고
정신까지 잃으면 끝이다.
더 잃을 게 없으니.
그러니 헤엄칠 때는
헤엄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왜 헤엄쳐야 하는지,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떠올리지 말고 헤엄치는 순간만 생각하는 것이다.
헤엄치고 있다는 과정, 그 사실 하나만 단순하게.
나는 헤엄을 치고 있다.
영양제를 먹었다.
걷고 있다.
헬스장을 등록했다.
책을 한 권 샀다.
상담센터에 전화했다.
끼니를 챙겨 먹었다.
누워있지 않았다.
아르바이트 지원을 했다.
입사지원을 했다.
신발을 신었다.
영화 한 편을 예매했다.
제시간에 잠에 들었다.
씻었다.
옷을 갈아입었다.
근처 공원을 걸었다.
방을 치웠다.
쓰레기를 버렸다.
아직도 내겐 많은 부분이 숙제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죽기 전까지 무엇으로 돈을 벌고
번 돈은 어떻게 모으며 사용할 것이고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도 괜찮지 않은 것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오늘도 나는 멍을 만들며
무수한 헤엄을 치고 있다.
by 개복사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