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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Jun 28. 2024

34 조각. 무기력과 헤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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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조각



무기력 속에서도

살겠다고 헤엄치다 보면

몸에 흔적이 남는다.

부딪치고 긁히고 꺾이고 때로는

살점이 크게 도려내질 만큼 다치기도 한다.

그럴 때의 상처는 금방 낫지 않고

잘 낫지도 않아서

꼭 흉을 남기고, 그러면 무기력에서 벗어나다가도

도돌이표처럼 돌아가며 악순환이 완성된다.

대개 그런 과정으로 근육을 잃는다.

몸의 근육을 잃고 마음의 근육도 읽고

방치되고 부패하여 언어를 잃고

정신까지 잃으면 끝이다.

더 잃을 게 없으니.

그러니 헤엄칠 때는

헤엄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왜 헤엄쳐야 하는지,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떠올리지 말고 헤엄치는 순간만 생각하는 것이다.

헤엄치고 있다는 과정, 그 사실 하나만 단순하게.

나는 헤엄을 치고 있다.

영양제를 먹었다.

걷고 있다.

헬스장을 등록했다.

책을 한 권 샀다.

상담센터에 전화했다.

끼니를 챙겨 먹었다.

누워있지 않았다.

아르바이트 지원을 했다.

입사지원을 했다.

신발을 신었다.

영화 한 편을 예매했다.

제시간에 잠에 들었다.

씻었다.

옷을 갈아입었다.

근처 공원을 걸었다.

방을 치웠다.

쓰레기를 버렸다.

아직도 내겐 많은 부분이 숙제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죽기 전까지 무엇으로 돈을 벌고

번 돈은 어떻게 모으며 사용할 것이고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도 괜찮지 않은 것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오늘도 나는 멍을 만들며

무수한 헤엄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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