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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조각
마음에 가압류 빨간딱지가 붙은 기분이다.
계속 내쫓기고 있다.
왜일까.
환절기라 그런가.
일이 바빠 그런가.
배가 고파 그런가.
난데없이 찾아오는 저조한 기분이
놀랍지는 않지만, 반갑지도 않다.
그런 상태로 고사리를 샀다.
나물은 데친 것보단 생이 비싸고,
건나물은 그보다 더 비싸다.
그리고 건 고사리는 건나물 중에서도 비싸다.
잠시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고민했으나
언제나 오늘이 제일 싸고
풍족한 현실을 떠올리며
데친 고사리와 건 고사리를
공평하게 두 팩씩 샀다.
고사리로 고사리밥을 지어 먹을 생각이다.
제일 맛있는 고사리는 아무래도
육개장이나 닭개장에 들어간 고사리.
하지만, 맛있는 쌀과 함께 지은
고사리밥도 아주 맛있다.
입에서 사르르 녹는다.
갓 지은 고사리 밥에 들기름을 붓고
반숙 계란프라이 얹어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고추장도 된장도 간장도 필요 없다.
그건 이미 까만 밤하늘에 물감을 붓는 것과 같다.
이미 그 자체로 완벽하다는 말이다.
그 이상은 과하다.
마치 지금의 나처럼.
과도한 걱정, 고민, 생각, 스트레스.
고사리는 사실, 제일 좋아하는 나물이 아니다.
한데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걸 보니
마음이 쉼 없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양.
밤하늘도 까맣게 별 하나 없고
목성만 우두커니 있다.
이제부터 따뜻해질 때까지 함께할
목성을 벗 삼아 걸으며
머지않아 연시와 홍시를 맛볼 생각 하며
당장의 우울감과 미래의 내 감들을 위해
기운을 차려본다.
by 개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