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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Oct 07. 2024

66 조각. 밤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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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조각



해가 다시 짧아졌다.

무섭게 덥다가 어리둥절하게 가을.

햇밤과 연시를 먹기 시작했다.

해가 짧아진 건 아쉽지만, 긴 밤도 좋다.

먹을 수 있는 밤도 먹을 수 없는 밤도 다 좋다.

가열차게 달리는 시간보다

그 사이사이의 느슨한 준비 시간이 더 좋지만,

터널 같은 밤은 달갑지 않다.  

벌써 한 달 넘게 복싱 수업을 못 가고 있다.

환기 없이 갇힌 사물함 속 운동화는,

어떤 냄새를 담고 있을까. 두렵다.

글러브는 챙겨와 내내 널어두었는데,

운동화는 깜빡 잊었다.

사물함을 결제해 두고 다니면서

3~4주에 한 번씩 빨아 깨끗했던 나의 운동화.

복싱하러 다닐 때는 몰랐는데,

쉬고 보니 아주 그립다.

꿉꿉한 복싱장 냄새도 아른거리고,

복싱 수업을 가던 요일은

어리둥절한 채로 밤을 보낸다.

이쯤 헐떡이며 스쿼트를 해야 하는데,

처음 짝꿍 된 회원님과 어색한 공감을 나누며,

서로에게 펀치를 나눠야 하는데.

헬스장은 어떻게 해도 복싱을 대신하지 못하고

밖에서 러닝을 해도 해소되지 않는다.

몸만이 해방되어 마음껏 널뛴다.

달과 다르게 주기 없이 부었다가 쪘다가

결국에는 부은 건지 찐 건지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빛 한 줄기를 찾아 헤매며

긴 밤을 지나는 중이다.

달빛을 받으며 달리는 사람은 두 경우다.

미치도록 러닝을 좋아하거나

미치겠는 절박한 마음이거나

아마도 나는 둘 다일 것이다.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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