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복사 Jan 09. 2024

7화. 매력적인 알토란


어떤 음식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유는 무얼까. 오래전 일인데도 바래지 않고 선명하게 남아, 마치 지금 겪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 까닭은. 내게는 토란이 그렇다. 토란은 작고 둥근 모양으로 알감자나 누에고치를 연상시키는 생김새다. 식감은 으깬 감자에 가까운데, 그보다 더 매력적인 재료지만 막상 설명하려니 적합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아쉽다. 아무튼 독성도 있어서 손질하는 과정이 까다롭고 각별히 주의해야 하지만, 입안에서 사르르 부드럽게 녹는 그 맛을 보면 중독되고 만다. 처음 토란을 접했던 것은 학교 급식이다. 생긴 걸로만 보면 호감형은 아닌지라 거부감이 먼저 들었는데, 먹어보니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대체 무슨 맛인가 싶게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어서 이상했다. 그때는 급식으로 받은 음식을 토하든 체하든 무조건 다 먹어야 했고, 그나마 먹을 수 있던 나는 선생님의 눈을 피해 힘들어하는 친구들의 토란을 대신 먹어주면서도 의아함을 떨칠 수 없었다. 감자도 아니고 무도 아니고 마도 아닌 것이 친구들에게 구역질을 일으키는데, 왜 나는 먹을 수 있는지, 이게 정말 이런 아무 맛이 나지 않는 재료인지 궁금했다.


급식 식단표에서 찾아낸 ‘토란’을 달달 외며 하교해서는 인사도 제치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토란! 토란이 뭔지 알아요? 그가 신이 아님을 진즉 깨우친 나이였지만, 그가 토란을 모른다면 영영 알 수 없을 것 같아 제발 제발 안다고 답해주길 간절히 바라던 속마음. 무슨 질문이 그래. 다짜고짜 토란을 아냐니. 토란이야 알지. 근데 갑자기 웬 토란? 급식으로 토란이라는 게 나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맛이 아닐 거 같은데⋯⋯. 진짜 토란은 무슨 맛일지 간절하게 알고 싶었으나, 막상 그를 마주하자 뭘 해달라고 하기 미안해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토란이 무슨 맛인지 궁금해? 토란국 한번 해줄까? 그리고선 정말로 토란국이 눈앞에 나타났다. 학교에서 먹은 것도 토란이라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토란국은 너무 맛있고 입에 잘 맞아서 결국, 그의 제지가 들어오기 전까지 연거푸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화는 흐릿하지만, 먹으면서 토란에 대해 그와 나눈 열띤 토론도. 토란은 그 뒤로 제철 음식보다 더 진한 의미로 김장 김치와 위상을 나란히 한다. 나란히 서서 토란을 다듬을 때마다 그날의 일을 한번씩 꺼내보기도 하고, 우리 사이에 쌓인 토란 같은 것들, 그의 탄생일을 계기로 도입시킨 연잎 같은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보기도 하면서.

이전 06화 6화. 되찾은 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