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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Jan 16. 2024

8화. 붙들고 지키는 밤

신년이 되면, 사람들은 으레 운세를 본다. 올해는 어떻게 되는지. 잘 풀리는지, 삼재는 아닌지, 돈방석에 앉는지, 사고는 안 나는지, 건강은 괜찮은지 등등. 운세를 비롯해 타로처럼 가볍고 얕은 것부터 점이나 사주처럼 묵직한 지출이나 깊이가 있는 것까지 방법도 다양하다. 나는 그런 것들을 믿지 않는다. 믿지는 않는다. 귀가 얇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 맹신하지도 한없이 휩쓸리지도 않는다. 우리가 답답할 때 매운 음식을 먹듯 가볍게 한번씩 보는 게 다다. 하지만 그날은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다고 했다. 사주를 보러 갔다가 들은 말. 얘는 죽은 앤데 어떻게 살렸냐. 여기에서 ‘얘’가 바로 나다. 그 말대로라면, 나는 두 번째 생을 사는 셈일까.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밤마다 열병을 앓았던 적이 있다. 아직도 기억난다. 이렇게 죽는 건가, 싶게 숨이 차오르던 순간과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던 느낌이. 밤마다 그가 뜬눈으로 나를 지켜보지 않았더라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도 이유는 알 수 없다. 왜 그랬는지. 그래서 그는 그 모든 밤에 무서웠다고 했다. 오늘 밤을 넘겨도 내일 밤엔 무사할지 확신이 없어서. 혹여나 까무룩 잠든 사이에 내가 영영 떠나갈까 봐 이 악물고 버텨냈다고 했다. 그 말들도 기억난다. 얼굴을 쓰다듬는 다정한 손길과 함께 흐릿한 정신 너머로 들리던 목소리. 잘했다. 잘 버텼어. 오늘 밤도 잘 버텼다. 내일 밤도 이렇게만 버티자. 옆에 꼭 붙어 있을 테니, 너도 내 곁에 꼭 붙어 있어야 해. 그런 생과 사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는 반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리고서, 그런 무서운 밤들이 지나간 뒤에 나는 다한증이 발현되어 그가 살아온 길을 뒤따랐다. 이제 좀 나아졌나 싶어 마음을 놓던 그는 순식간에 잿빛의 얼굴이 되었다. 좋은 게 얼마나 많을 건데 왜, 그걸 가져갔니. 어떡하나, 내 새끼. 아유, 어떡하면 좋아.


그는 나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양약, 한방, 민간요법 모두 가리지 않고. 이유는 단 하나였다. 당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것. 그래서 정말 다양한 시행착오가 있었는데, 그것은 다음에 다루기로 하고 결론적으로 나는 한의원에서 1년간 치료를 받았다. 완치는 아니었지만, 크는 동안에도 진즉 어른이 되고서도 오늘날에도 더욱 호전적인 상태로 지낼 수 있는 것은, 다 그가 애썼기 때문이다. 당신부터가 덥고 힘들면서도 자신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내가 다르게 살아야만 한다고, 좋다는 것을 찾아 먹이고 잘한다는 곳을 찾아 치료받게 했다. 이렇게 말해도 나는 다 헤아리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 이야기를 언젠간 하고 싶었다. 어떻게 시작해서 끝맺어야 하는지가 고민이었는데, 이제야 그 끝을 알 것 같다. 다한증은 아이로서도 어른으로서도 달가운 질환은 아니어서 매 순간 힘들었지만, 나를 바라봐주는 그를 보면서 그처럼 나도 돌파구를 찾아나갔다. 쉽지는 않았지만, 끝내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나만의 삶을 그려 나갔다. 요즘의 나는 몸에 열이 차지 않도록 최대한 덜 먹고 더 운동하기를 노력 중이다. 여전히 땀이 많은 그와 한 번씩 등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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