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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Jan 30. 2024

10화. 어긋나도 따뜻한 마음


다자녀 가구의 자녀들은 어쩔 수 없는 역할 분담으로 각자의 분야가 생기는데, 얘는 잘 못 듣고 걔는 냄새를 못 맡고 나는 컵을 잘 깨트린다. 아니, 얘는 물건을 잘 찾고 걔는 인간 공구함이고 나는 우리집 반장이다. 하나 더 있다. 숨겨왔던 나의 특출한 재능, 바로 음식의 주인공 찾기. 그가 만든 음식을 맛보면 그게 누구를 위해 한 것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얘를 위한 것, 걔를 위한 것, 나를 위한 것, 모두를 위한 것은 모두 제각각의 맛을 가지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 나를 위한 맛. 그리고 그는 내가 음식만 했다 하면, 귀가하지 않는다. 그에게 해주려고 요리만 했다 하면 늦게 집에 온다. 다른 데서 부르게 배를 채우고서. 그래서 나는 두 시간 정도 여유를 가지고 음식을 하고, 웬만하면 요리로는 깜짝선물을 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음식의 맛에 감각하게 된 것에는 아무래도 내가 둘째이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위, 아래에 끼여서는 순번으로는 늘 꼴찌. 바로 세도 하나 둘 셋이고, 거꾸로 세도 셋 둘 하나인데. 다자녀 집에서는 하나 셋 둘이거나 셋 하나 둘인 것이다. 꼭 둘째라는 말은 아니고, 셋 중 순번이 밀리는 한 명이 있을 거라는 말이다. 덜 아픈 사람, 덜 손이 가는 사람. 다른 말로 하면, 육아 난이도가 낮은 사람. 그래서 그를 돕게 되는 사람. 덜 말썽 부리게 되고, 믿음직스러워지고 마는 사람. 그렇다 보니 그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다. 건강하고 젊고 희망찬 그는 알고 싶으나 영원히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그와 그 많은 시간을 대화는 못 하고 보냈지만, 대신으로 음식이 남았다. 우리는 음식으로는 교류했다. 음식 맛을 보면, 누구를 먹이려고(보통 누군가 아파서 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건지에 더불어 그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는 까닭도 그래서다. 그가 지치거나 아프거나 급하게 했거나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그런 상태에서 하는 음식들의 맛이 있다. 그러면 나는 식사를 하면서 느낀 것들을 고려해 처방하기도 한다. 대부분은 놀러 가자,로 처방을 내리는데 효과는 늘 최고다. 그의 음식에 대해서는 언제나 할말이 차고 넘친다. 많은 역사가 함께 해서 그렇다. 요즘도 그는 음식을 하고, 나는 그가 해준 음식에 현재와 지난 시간을 함께 공유하며 다음은 없을 맛을 최선을 다해 누린다. 기본 덕목인 감사의 리액션과 사진 촬영은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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